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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재혼하기 '딱' 좋은 나이는?

[the L] [조혜정 변호사의 가정상담소]

편집자주외부 기고는 머니투데이 the L의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기고문은 원작자의 취지를 최대한 살리기 위해 가급적 원문 그대로 게재함을 알려드립니다.
그래픽=이지혜 기자

2005년 독립사무실을 내면서 가사소송을 처음 시작했으니 올해까지 햇수로 14년째다. 10년이면 강산이 변한다는 속담이 있는데 요새 세상에 10년이면 강산만 변하지 않는다. 그 안에 살고 있는 사람들도 변한다. 그것도 많이 변한다. 황혼이혼을 생각하는 중년여성들을 만날 때 10년 만에 세상 참 많이 변했다는 생각을 하지 않을 수 없다.

변화는 숫자에서 먼저 드러난다. 2016년 이혼부부 10쌍 중 3쌍이 황혼이혼. 20년 이상 결혼생활을 유지하다 이혼을 선택한 부부가 2016년 3만 2594쌍으로 총 이혼건수의 30.4%, 2017년 31.2%. 그야말로 급증추세다. 처음으로 전체 이혼건수 대비 황혼이혼율이 20%를 넘은 것이 2007년이라고 하니 지난 10년간 비율로만 보면 50% 넘게 증가한 셈이다. 건수만 늘어난 건 아니다. 현장에서의 느낌도 확 다르다. 결혼과 이혼, 재혼에 대한 내담자들의 태도가 10여년 전과는 천양지차다.

10여년 전 사무실을 찾아오는 중년 여성들에게 이혼은 절대 해서는 안되는, 집안망신을 시키는 남부끄러운 일이었다. 결혼 초부터 시작된 문제를 기본 20년 이상 참아내기는 정말 어려운 일. ‘도대체 어떻게 참고 살았냐’고 물어보면 다들 비슷한 대답이다. ‘아이들 때문에요. 아이들한테 아빠가 없으면 안되니까 나 하나 희생하면 된다 하고 살았죠. 친정 부모님이 너는 시집 가면 그 집 귀신이니 절대 다시 돌아오지 말라고 하세요. 동네 챙피하다고.’

이 분들에게 결혼생활에서 나의 행복은 중요하지 않았다. 아빠없는 아이들을 만들 수 없다는 일념과 친정부모의 체면이 나보다 중요했다. 나 아닌 가족을 위해 끝까지 참고 이혼 안해야 하는데 더 이상 못 참고 이혼하는 건 잘못이요, 이혼하는 자신은 인생의 실패자였다.

난 가끔 상담 끝에 그 분들에게 넌지시 물어보곤 했다. 이번에 다 정리하시면 좋은 사람 만나서 행복하게 사셔야죠? 10년 전의 상담자들은 ‘어디 그런 소리를’ 하면서 손사래를 쳤다. ‘한 번 실패했으면 됐지 두 번씩이나. 어디 가서 이혼했다 말도 못하는데 재혼은 무슨... 남부끄럽게.’ 이것이 그 분들의 공통적인 반응이었다. 인생의 실패자인 자신을 드러내고 싶지 않으니 은둔의 삶을 살아야한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한동안은 이런 분들이 대부분이었다. 

그러던 것이 2010년을 넘기면서 조금씩 상담자들의 태도가 변하는 게 느껴졌다. 일단, 찾아오는 중년여성들의 외모부터 달라지기 시작했다. 대학생 자녀를 둔 엄마라고는 믿기지 않을 정도로 젊은 느낌의, 패션감각 좋고 자기를 잘 가꾼 분들이 많아졌다. ‘헉, 정말 그 나이 맞아?’하는 생각이 절로 드는 젊은 언니(?)들이 한둘이 아니다.

사연은 각각 다르지만, 오랫동안 불행한 결혼생활을 했던 점은 10여년 전이나 지금이나 똑같다. 하지만, 이 분들은 남보기 부끄러워 이혼 안 한 건 아니고 아이들이 클 때까지만 참기로 결정하고 참아왔다고들 한다. 아이들이 크면 내 의무는 다한 셈이니 그 때 이혼하겠다고 결심했던 것을 때가 되었으니 실천에 옮긴다 했다. 그 시점은 빠르면 자녀들의 대학진학이고 늦으면 자녀들의 결혼이다.

이혼하는 이유를 물으면 ‘아이들도 다 컸는데 더 이상 이 사람과 살 이유가 없어요. 앞으로도 30년은 더 살아야 할텐데 이 사람하고 그 시간을 같이 보낸다고 생각하면 끔찍해요. 이제는 행복하게 살 거예요’라고 답한다. 내 의무를 다했으니 나도 내 행복을 위해서 살 권리가 있지 않냐고 한다. 이처럼 내 행복을 위해서 능동적으로 이혼을 선택하고, 이혼을 ‘실패’가 아니라 ‘해방’이라고 인식한다는 점이 10년 전과는 확실히 달라진 것이다.

이뿐만이 아니다. 새로운 상대를 만나는 것에 대한 거부감이 없고 개방적이다. ‘이 남자랑 사는 동안 행복한 적이 없었어요. 다 정리하고 나면 이젠 정말 좋은 남자 만나서 행복하게 살고 싶어요.’, ‘이제부터라도 멋진 남자 만나서 보란 듯이 연애하고 싶어요.’라는 얘기를 하는 분들이 적지 않다. 필자가 꼭 그렇게 되기를 바란다고 얘기하면 이 분들은 ‘내 맘을 알아줘서 고맙다’면서 눈물을 흘린다. 그만큼 이 분들의 새로운 행복에 대한 기대는 간절하다.

늘상 이런 변화를 목격하다보니 ‘시집가면 그 집안 귀신이 되어라’는 전통적인결혼관은 사멸단계에 들어선 거 아닌가 싶다. 영원히 건재할 것 같았던 그 관념이 불과 10여년 만에 어떻게 이렇게까지 변할 수 있었을까? 아무래도 이제 곧 기대수명 100세가 되는 평균수명연장이 가장 중요한 원인이라 할 수 있다. 검은 머리는 이미 파뿌리가 되었는데 앞으로도 살 날이 40년 더 남아있다면 누군들 싫은 사람과 같이 살고 싶겠는가. 앞으로도 길게 남은 인생을 나와 함께 보내줄 새로운 파트너를 구하는 것이 자연스럽지 않을까?

「2030빅뱅퓨처」라는 책에 따르면 최근 유럽에는 노년층을 타깃으로 한 온라인데이트서비스가 인기를 끌고 있다 한다. 네덜란드에서 시작된 '50plusmatch.nl'사이트는 독일, 노르웨이 등에도 진출할 만큼 인기가 높다고 하는데, 이건 이제 유럽사회만의 일이 아닐 듯하다. 곧 우리 곁에도 닥쳐올 변화인 것이다. 한국사회에서도 50대가 1차 결혼생활을 마무리하고 노년을 함께 보낼 새로운 파트너를 찾기 시작하는 나이로 규정될 날이 멀지 않은 듯 하다.


[2005년부터 10여년 간 가사소송을 수행하면서 우리 사회의 가족이 급격하게 해체되어가고 있음을 현장에서 실감했습니다. 가족해체가 너무 급작스러운 탓에 삶의 위안과 기쁨이 되어야 할 가족이 반대로 고통을 주는 존재가 되어버린 분들이 너무나 많습니다. 이런 분들을 위해 10여년간의 가사소송 수행에서 깨달은 법률적인 지식과 삶의 지혜를 ‘가정상담소’를 통해서 나누려합니다. 가족 때문에 고통받는 분들에게 위로가 되고 해결책을 찾는 단초가 되었으면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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