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픽=이지혜 디자인기자

산업재해보상보험법 제52조의 휴업급여를 받을 권리는 같은 법 제88조 제2항에 의하여 압류가 금지되는 채권으로서 강제집행면탈죄의 객체에 해당하지 않는다(대법원 2017도6229 판결).

형법은 강제집행을 면할 목적으로 재산을 은닉, 손괴, 허위양도 또는 허위의 채무를 부담해 채권자를 해한 자를 강제집행면탈죄로 처벌하는 규정을 마련해두고 있다. 그렇다면 휴업급여 통장을 압류당한 채무자가 채권자 몰래 수령계좌를 변경하는 행위가 강제집행면탈죄에 해당할까? 이 질문에 대답해줄 대법원 판례를 소개한다.

이 사건의 채무자는 채권자로부터 8000만 원의 돈을 차용했으나 기한 내에 갚지 못했다. 그러자 채권자는 채무자의 당시 주 수입이었던 휴업급여가 들어오는 A은행의 계좌를 압류했고, 이후 위 계좌로 입금된 채무자의 휴업급여 중 일부를 추심했다. 이에 채권자는 다른 은행인 B 은행에 새로운 계좌를 개설하고 이 계좌로 휴업급여를 수령하도록 변경했다가 강제집행면탈혐의로 기소됐다.

대법원은 일관되게 강제집행면탈죄의 객체는 채무자의 재산 중에서 채권자가 민사집행법상 강제집행 또는 보전처분의 대상으로 삼을 수 있어야 한다고 보고 있다. 이 법리를 휴업급여에 적용했을 경우, 산업재해보상보험법 제52조의 휴업급여를 받을 권리는 동법 제88조 제2항에 의하여 압류가 금지됨이 명확하므로 강제집행 면탈죄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보아 수급권자의 강제집행면탈 혐의에 대해 무죄를 선고했다.

물론 채무자가 계속해서 계좌를 신설, 변경하는 것이 일반인의 법 감정으로는 납득되지 않을 것이나, 대상판결은 압류금지채권의 취지를 고려했을 때 타당한 판례이다.

[법무법인 로고스의 나정은 변호사는 노동, 산업재해, 의료, 보험, 교육행정 관련 사건을 다루며 송무 등으로 활발히 활동 중이다. 머니투데이 더엘(the L)에 관련 칼럼을 연재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