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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L 리포트

살인해도 끄떡없는 철밥통 '의사 면허'

[the L 리포트] 日, 형사처벌시 최대 면허취소…"진료 중 성범죄 땐 면허취소" 의료법 개정안 발의

김현정디자이너

다음 중 보건복지부 장관이 의사의 면허를 취소해야 하는 경우를 고르시오.

가. 의사가 환자가 자신에게 맡긴 귀중품을 바꿔치기해 절취한 경우
나. 의사가 업무상 중대한 과실로 환자가 사망하자 그 시체를 유기한 경우 
다. 의사가 수면 내시경 치료를 받던 다수의 환자를 강간한 경우
라. 의사가 환자의 정신이 혼미한 틈을 타 속옷을 벗기고 몸을 만지는 등 추행한 경우

① 가  ② 나  ③ 다  ④ 라  ⑤ 답 없음

답은 ⑤번이다. 현행법상 우리나라 의사들은 환자를 상대로 살인, 사체유기, 절도, 강간, 성추행 등의 죄를 지어도 면허가 취소되지 않는다.

◇살인·시체유기에도 취소 안돼…의사 '종신면허'

의료법 제8조는 보건복지부장관이 의사 면허를 반드시 취소해야 하는 사유를 규정하고 있다. 그 사유로는 △정신질환자 △마약중독자 △금치산자 △'형법상 허위진단서 작성, 위조사문서행사, 낙태, 업무상비밀누설, 사기(허위진료비청구에 한함) 및 특정 의료법령 관련 법률' 위반으로 금고 이상의 형을 받아 집행 중인 경우다.

이 밖에 △자격 정지 처분 기간 중에 의료행위를 하거나 3회 이상 자격 정지 처분을 받은 경우 △면허 조건을 이행하지 않은 경우 △의사 면허증을 빌려준 경우 △일회용 주사 의료용품을 재사용해 사람의 생명 또는 신체에 중대한 위해를 발생하게 한 경우에도 보건복지부 장관이 임의로 의사 면허를 취소할 수 있다.

그러나 이 외엔 현행법상 의사 면허의 취소 사유는 없다. 고 신해철씨의 의료사고 소송에서 해당 의사가 유죄 판결을 받았지만 의사 면허는 그대로 유지된 것도 업무상과실치사가 면허 취소 대상 범죄가 아니어서다.

지난달 27일 국회의원회관서 열린 '의사의 형사범죄와 면허 규제의 문제점 및 개선방향' 심포지엄에서는 이 같은 현행 의료법의 문제점이 지적됐다.

이날 박호균 변호사(대한변협 인권위원회 위원)는 "현행 의료법대로라면 의사가 의도적으로 환자를 살해하거나 횡령, 배임, 절도, 강간, 업무상과실치사 등 일반 형사범죄 등으로 금고 이상의 형이 확정되더라도 의사 면허가 취소되지 않는다"고 말했다. 설령 면허취소 대상 범죄에 해당해 처벌받는다 해도 형 집행이 종료되거나 집행을 받지 않기로 확정될 경우 일정기간 후 면허 재교부가 가능하다. 의사면허가 사실상 '종신 면허'로 불리는 이유다. 

의료인의 품위를 심하게 손상시킨 경우 자격정지가 가능하지만 정작 '품위 손상행위의 범위'를 규정한 시행령 제32조에는 형사 처벌 규정이 없다. 형사 처벌로 면허가 영구 박탈될 가능성은 거의 없는 셈이다. 아동·청소년의 성보호에 관한 법률에서 의사가 성범죄 유죄 선고를 받을 경우 일정 기간 취업제한을 두고 있지만 역시 면허에는 영향이 없다.

◇다른 전문직은? 금고형 이상 유죄 확정땐 자동 자격상실

다른 전문직들은 어떨까? 변호사나 공인회계사, 세무사, 변리사, 국립대학 및 사립대학 교수, 공무원 등의 경우에는 금고 이상의 형의 선고를 받는 경우 전문직과 관련한 등록·자격이 취소되는 법률 규정이 있다. 예컨대 '금고 이상의 형을 선고받고 그 집행이 끝나거나 그 집행을 받지 아니하기로 확정된 후 5년이 지나지 아니한 자, 집행유예를 선고받고 그 유예기간이 지난 후 2년이 지나지 아니한 자, 선고유예를 받고 그 유예기간 중에 있는 자는 OOO가 될 수 없다'(변호사법 제5조, 법무사법 제6조, 공인회계사법 제4조, 세무사법 제4조 등)는 식이다.

의료법이 원래 이랬던 것은 아니다. 의료법도 지난 1999년 개정 이전까지는 다른 직업과 마찬가지로 '금고 이상의 형의 선고를 받고 그 형의 집행이 종료되지 아니하거나 집행을 받지 아니하기로 확정되지 아니한 자'의 경우 의사가 될 수 없도록 면허 결격 사유로 규정하고 있었다. 의료행위 중 업무상 과실로 환자를 사망하게 하거나 일반 형사범죄로 금고 이상의 형사처벌을 받을 경우 면허를 취소하는 게 가능했다. 그러나 의료법 개정 이후 이 규정은 삭제됐다.

◇독일선 의사 형사처벌 땐 의사업무 영구 금지

상당수 선진국들은 의사가 형사범죄를 저지를 경우 면허를 취소 또는 정지토록 하고 있다. 강태언 의료소비자연대 사무총장은 "일본에서는 의사가 벌금형 이상의 형사처벌을 받을 경우 면허취소 혹은 3년 이내의 의료업 정지 처분을 받을 수 있다"고 말했다. 

미국은 형사사건 유죄 전력이 있을 경우 의사 면허의 교부 자체가 불허될 수 있다. 유죄 판결의 근거가 된 범죄가 의료행위와 관련이 있는지는 고려되지 않는다.

독일은 형법에서 '직무수행과 관련된 위법한 범행이 있는 경우 일반 형사처벌과 별도로 1년 이상 5년 이하의 기간으로 직업수행을 정지하거나 영구히 금지할 수 있다'고 규정하고 있다. 이석배 단국대 법대 교수는 "전문직의 경우 특히 그 직무의 지속적 수행이 재범의 위험성을 징표한다면 그 직무를 제한하는 것은 특히 공공을 범죄로부터 보호하는 데 합리적인 형사정책일 수 있다"고 말했다.

◇"범죄 땐 의사 면허 취소"…의료법 개정안 잇따라 발의

김상희 더불어민주당 의원(경기 부천 소사)은 지난달 범죄를 저지른 의사를 퇴출하는 내용의 의료법 개정안을 대표발의했다. 의료인이 대리수술, 진료 중 성범죄, 무허가 주사제 사용 등의 행위를 한 경우를 면허를 취소하고, 의료행위와 관련한 업무상과실로 형의 선고를 받은 경우 그 정도에 따라 면허 취소 또는 자격정지 대상이 되도록 하는 내용이다.

남인순 민주당 의원(서울 송파구병) 역시 조만간 관련 법안을 발의할 예정이다. 남 의원실 관계자는 "의사 결격사유를 규정한 제8조를 최소한 1999년 개정 이전처럼 되돌리는 내용을 검토 중"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이 같은 개정안이 국회를 통과할지는 미지수다. 지난 2007년 강기정 민주당 의원이 성폭력 범죄를 저지른 의사의 면허취소와 면허재교부 제한을 골자로 한 법안을 발의했고, 2012년 산부인과 의사의 시신유기 사건 직후 이언주 민주통합당 의원이 살인과 사체 은닉을 저지른 의사의 경우 면허를 취소하자는 법안을 발의했지만 의료계의 반발에 결국 폐기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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