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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L 리포트

"말은 삼성이 사서 빌려주기로 돼 있었다"

[the L] [비선실록(秘線實錄)-승마지원 ④] "박원오가 최순실이 VIP와 친자매처럼 가깝다고 했다" vs "박상진에게 최순실 이야기 한 적 없다"

편집자주박근혜정부 국정농단 사건의 진실은 뭘까? 우리가 알고 있는 게 과연 다일까? 수많은 진실들이 검찰과 특검의 피의자 신문조서 등 수사기록 속에 아직 숨어있다. 그 무수한 비밀을 품은 수사기록을 머니투데이 법률미디어 '더엘'(the L)이 단독 입수했다. "그때 정말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그 해답을 방대한 자료 더미 속에서 하나 하나 건져올려 차례로 연재한다. '비선실세'에 대한 '수사기록'을 재구성한 '비선실록'(秘線實錄)이다.


2015년 7월 29일 독일 프랑크푸르트, 강가에 있는 한 프랑스 식당. 당시 대한승마협회장이었던 박상진 전 삼성전자 대외담당 사장(65)과 대한승마협회 전무 출신의 박원오씨(68)가 마주앉았다. 당시 박씨는 독일에서 최순실씨(62)의 딸 정유라씨(22)의 승마 훈련을 돕고 있었다.

박근혜정부 국정농단 사건에서 ‘정유라’란 이름이 처음으로 거론된 게 바로 이 순간이다. 앞서 박근혜 전 대통령(66)은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50)에게 올림픽을 대비한 승마 지원을 두 차례나 요청하면서도 정씨의 이름은 입에 올리지 않았다. 그러나 이날 만남을 기점으로 정씨의 이름이 수면 위로 오르게 된다. 여기서 두 사람은 어떤 대화를 나눴을까?

◇"박원오가 최순실이 VIP와 친자매처럼 가깝다고 했다"

박 전 사장은 당시 박씨가 박 전 대통령과 최씨의 관계 등을 언급하면서 정씨에 대한 지원을 요청했다고 했다. 그 이야기를 듣고 어쩔 수 없이 지원을 결정하게 됐다는 것이다. 박 전 사장이 2016년 12월 18일 박영수 특검팀에서 한 진술을 보자.

“그때 박원오는 저에게 ‘왜 이제야 왔냐, 최 회장(최순실)이 삼성에서 찾아올 거라고 미리 이야기했다’고 하면서 ‘최순실은 최태민의 딸인데 박 대통령이 야인시절, 어렵고 힘들었을 때 최순실이 계속 옆에 있으면서 친자매처럼 돌봐줬고 대통령이 된 이후 최순실은 청와대에 수시로 드나들면서 박통의 옷, 귀걸이 등 여성용품 등을 개인 수발 들면서 현재까지 매우 절친한 관계다. 최순실은 VIP(박근혜 대통령)와 친자매처럼 무척 가깝게 지내면서 큰 영향력을 미치고 있기 때문에 최순실의 말 한마디가 바로 VIP에게 전달된다. (중략)

최순실은 딸을 생명처럼 매우 소중히 생각하는데, 엄마(최순실)가 정유라를 이기기 어렵다. 그래서 정유라를 독일로 보냈고, 내가 독일에서 밥해 먹이고 식료품 사다 주고 하는 등 수발을 다 하고 있다. 정유라가 마음을 잡을 수 있는 것은 승마밖에 없다. 정유라의 승마훈련을 지원해 달라. 최순실의 생명과도 같은 정유라가 지금 독일에 있으니 삼성이 도와달라’고 했다.

박원오는 이같이 최순실과 자신과의 관계를 설명하고, 정유라에 대한 지원을 직접적으로 요청하면서 2018년 자카르타 아시안게임 및 2020년 도쿄 올림픽에 대비한 장기 지원 방안으로 2014년 아시안게임 금메달리스트를 포함해 해외 전지훈련을 지원해 달라고 했다. (중략) 이에 저는 박원오의 말을 듣고 ‘알았다. 중요한 일이니 구체적인 것을 상의하기 위해 황성수 당시 삼성전자 전무(66)를 보내겠다’고 답하고 황성수에게 전화해 독일로 와서 박원오를 만나 프로젝트에 관한 구체적인 협의를 진행하라고 지시했다.”

박 전 사장은 박씨를 만나고 이튿날 귀국했다. 황 전 전무는 박씨를 만나기 위해 그 다음날 독일로 출국했는데, 출국 직전 박 전 사장을 잠시 만났다고 한다.

황 전 전무는 2017년 1월 20일 특검에서 “박상진 사장이 독일에 가서 박원오를 만나서 독일 전지훈련 프로그램에 대한 설명을 자세하게 듣고 와서 보고를 하라고 이야기를 했던 것 같다. 그리고 박원오 뒤에는 최순실이라고 하는 실세가 있어서 박원오가 추진하는 프로그램을 안 할 수는 없으니 가서 자세히 설명을 듣고 오라고 했던 것 같다”며 “당시 박상진 사장의 설명을 들을 때 최순실이 대통령과 친분이 있는 실세라는 정도로 이해를 했던 것으로 생각이 되고, 그때 박상진 사장이 대통령을 직접 언급을 했는지 하는 부분은 자신이 없다”고 진술했다.


최순실씨의 딸 정유라씨

◇"박상진에게 최순실 이야기 한 적 없다"

그러나 박씨의 진술은 조금 다르다. 자신이 먼저 박 전 대통령과 최씨의 관계에 대해 말한 적이 없다는 것이다. 다음은 박씨가 2017년 1월 8일 특검에서 검사와 주고받은 문답이다.

검사: “당시 박상진 사장을 만나게 된 경위가 어떻게 되나.”
박씨: “박상진 사장이 독일에 도착해서 저에게 직접 전화를 해서 만나자고 했고, 만날 장소는 수행비서를 통해 전해 들었는데 당시 프랑크푸르트 강가에 있는 프랑스 식당에서 만났다. 당시 박상진 사장은 ‘승마 종목을 올림픽까지 지원을 할 것이니 ‘정유연’(개명 전 이름 정유라)을 포함한 계획을 한번 만들어 봐 주십시오’라고 부탁을 했다. 그러면서 구체적인 내용은 황성수 삼성전자 전무와 상의를 하라고 했고, 갑자기 그 자리에서 황성수 전무에게 전화해 바로 다음날 독일로 들어오라고 지시를 했다.”

검사: “진술인은 당시 박상진 사장에게 최순실과 대통령의 친분, 그에 따른 최순실의 영향력 등에 대해 이야기를 한 적 있는가.”
박씨: “전혀 이야기를 하지 않았다. 최순실 이야기 자체를 한 적이 없다.”

검사: “진술인은 박상진 사장에게 정유연을 올림픽 때까지 지원해 달라고 요청은 했나.”
박씨: “말도 안 된다. 박상진 사장은 대기업인 삼성전자의 사장인데 제가 어떻게 밑도 끝도 없이 정유연을 지원해 달라고 할 수 있단 말인가. 정말 말도 안 된다. 명시적으로 이야기를 하지는 않았지만 박상진 사장이 이미 최순실의 존재나 힘에 대해 다 알고 저한테 말을 하는 눈치였다.”

또 박씨는 앞선 2015년 7월 23일 독일에서 한국으로 건너간 최씨가 자신에게 전화를 걸어 “대한승마협회장 박상진 사장이 정유연 승마 지원을 위해 연락을 할 것이니 만나라”고 했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당시는 박 전 대통령과 이 부회장의 ‘2차 독대’가 있기 이틀 전이다. 이 말이 사실이라면 최씨는 어떻게 삼성에서 먼저 연락해 올 것이라는 걸 알았던 걸까?

박씨의 이 같은 주장은 이 부회장이 2차 독대 당시 승마 지원을 제대로 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박 전 대통령에게서 강한 질책을 받았다는 사실과 배치되는 것으로, 추후 재판과정에서 치열한 공방의 대상이 됐다.

박 전 대통령은 2017년 3월 21일 검찰에서 이와 관련한 대화를 최씨와 한 적이 있는지에 대한 질문을 받고 “전혀 사실이 아니다”라고 답했다. 박 전 대통령은 ‘2차 독대 직후인 7월 27일 삼성전자 사장 박상진은 독일까지 가서 최순실의 측근인 박원오를 만났고 이후 최순실이 운영하는 코어스포츠에 약 78억원을 지급했다. 이런 사실을 알고 있느냐’는 질문에는 “이번에 사건이 있고 나서 알게 됐다”며 “왜 그렇게 했을까 의아했다”고 진술했다.

한편 같은 만남을 두고 다른 진술을 한 두 사람, 박 전 사장과 박씨의 진실공방은 법정으로까지 이어졌다.

박 전 사장은 2017년 7월31일 자신을 비롯한 이 부회장 등 삼성 전·현직 임원들에 대한 1심 재판의 피고인 신문에서 “박원오가 최순실과 (승마 지원 전반을) 주도한 사람인데 재판받는 과정에서는 본인의 관여도를 줄이려고 본인이 관여한 부분에 대해서는 쏙 빼고 이야기를 한 것이 아닌가 그런 생각이 든다”고 말했다. 실제 박씨는 승마 지원에 깊숙이 관여했지만 기소되지 않았다.

반면 박씨는 2017년 9월 29일 최씨 등의 재판에 증인으로 출석해 박 전 사장의 진술과 관련해 “(최씨가) 박 전 대통령의 옷을 사줬다는 것 자체를 몰랐다”며 “최씨가 박 전 대통령과 직접 만나는 것은 근래 언론을 통해 알았지, 그 시절에는 그런 이야기를 전혀 한 일이 없고 전혀 모르는 사실이었다”고 증언했다.


◇"최순실, 노출 되면 안 된다며 계약 현장에 안 나와"

황 전 전무는 박 전 사장의 지시에 따라 2015년 7월 31일 독일로 출국해 박씨를 만났다. 박씨는 2017년 1월 8일 특검에서 황 전 전무와 만났을 당시의 상황을 이렇게 회상했다.

“당시 가장 중요한 것은 정유연을 (지원 대상에) 포함 시키는 것이었다. 원래대로라면 삼성에서 대한승마협회에 후원하고 대한승마협회에서 정유연 훈련을 지원하는 것이 맞는데, 그 구조의 단점이 정유연이 지원 대상 선수로 뽑힌다는 보장이 없다는 것이다. 그래서 제가 ‘삼성에서 승마단을 만들어 삼성이 원하는 선수를 승마단 소속으로 전부 받아라, 그렇지 않고 대한승마협회에서 지원하는 형식이면 정유연이 포함된다는 보장이 없다’고 했다. 그러자 황 전 전무도 제 말에 공감했고 구체적인 방법으로 삼성이 승마 훈련을 지원할 컨설팅 회사와 용역 계약을 체결하고, 그 컨설팅 회사를 통해 정유연 훈련을 지원하는 방법을 추진하기로 했다.”

이후 황 전 전무는 귀국해 구체적인 승마 지원을 어떻게 할 것인지 박씨와 협의하기 시작했다. 협의는 주로 이메일을 통해 이뤄졌다. 이를 통해 도출된 최종안을 토대로 그해 8월 26일 계약이 체결됐다.

계약서 서명은 독일 프랑크푸르트의 한 호텔에서 이뤄졌다. 박 전 사장과 황 전 전무, 삼성 법무팀 변호사와 코어스포츠의 박모 변호사, 독일 헤센주 승마협회장 쿠이퍼스, 박씨, 노승일 부장 등이 참석했다. 코어스포츠는 최씨와 정씨가 지분 100%를 보유한 회사다.

그러나 계약 체결 당시 최씨는 호텔에 있으면서도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고 한다. 박씨는 2017년 1월 8일 특검에서 “최순실은 ‘노출이 되면 안 된다’며 계약 현장에 참석하지 않았다”며 “삼성이 정유연을 지원하는 것이 드러날 수 있어 조심을 한 것 같다”고 진술했다.

계약 내용은 코어스포츠에서 삼성전자로부터 용역비를 받아 삼성전자에서 선발해 보내는 승마 선수 6명의 독일 전지훈련 업무 등을 대행해 주고 그 대가로 컨설팅 비용을 받는 것이었다. 코어스포츠가 승마 훈련 지원, 마필 등 구매 대행 등의 용역 업무를 수행하면 삼성전자에서 그 대가로 마필 구입 비용의 5%, 각종 훈련비 등 수수료의 15%를 분기마다 코어스포츠에 지급하는 것이었다.

구체적으로 삼성전자는 2015년 8월 1일부터 2018년 12월 31일까지 41개월간 용역료 총 213억원을 지급하기로 계약했다. 이후 삼성전자는 2015년 9월 14일부터 2016년 7월 26일까지 4회에 걸쳐 코어스포츠에 총 36억여 원을 송금한다. 또 마필과 마필에 대한 보험료, 마필 운송차량 구입 명목 등으로 총 36억여 원 상당을 지출했다.

박 전 사장은 2016년 12월 18일 특검에서 ‘삼성에서는 코어스포츠와 6명의 승마 선수를 지원하는 내용의 용역 계약을 체결했지만 사실은 용역 계약이 정유라 지원을 위한 목적이 아니었느냐’는 질문에 “정유라를 포함한 6명의 선수를 지원할 목적이 있었다”며 “정유라 지원이 아니었으면 코어스포츠와 계약을 할 이유가 없었을 것”이라고 답했다.  

박상진 전 삼성전자 대외담당 사장

◇"말은 삼성이 사서 빌려주기로 돼 있었다"

코어스포츠와의 계약이 체결된 뒤 삼성전자는 2015년 10월 ‘살시도’, 2016년 2월 ‘비타나’와 ‘라우싱’이라는 이름의 마필을 각각 구입했다. 계약서에 따라 마필과 마필 운송차량 등은 모두 삼성전자 소유로 뒀고, 마필은 코어스포츠를 통해 승마 훈련에 제공됐다.

그러다 문제가 발생했다. 살시도를 구입할 당시 말의 신분증 격인 ‘패스포트’(passport)에 마주를 ‘삼성’이라고 기재했는데 이를 알게 된 최씨가 화를 낸 것이다. 당시 상황에 대해 박씨는 2017년 1월 8일 특검에서 “용역 계약서를 보면 마필과 마필 운송차량 등은 삼성이 구입해 선수에게 임대해 주는 것으로 돼 있다”며 “계약서대로 일을 진행한 것”이라고 했다. 당초 말은 삼성이 소유하는 것으로 약속돼 있었다는 얘기다.

최씨가 화를 낸 데 대해 박씨는 “그 부분이 너무 이상했다”며 “최씨가 흥분하면서 ‘이재룡(최씨는 이 부회장을 항상 ’이재룡‘이라고 칭함)이 VIP를 만났을 때 말 사준다고 했지 언제 빌려준다고 했냐’고 했고 박상진 사장한테 연락해서 독일로 당장 들어오라고 하라고 했다”고 진술했다.

이 같은 소식을 전해 들은 박 전 사장은 박씨에게 문자메시지를 보낸다. ‘기본적으로 원하시는 대로 해드리겠다는 것’ ‘결정하시는 대로 지원해드리겠다는 것이 우리 입장’이라는 내용이었다. 패스포트에서 삼성의 이름을 빼줄 수 있다는 뜻이었다. 황 전 전무는 2016년 11월 25일 검찰에서 “박 전 사장이 박씨와 전화로 연락을 해 (패스포트 상의) 마주를 삼성에서 최씨가 원하는 사람으로 바꾸는 것에 동의해 주고 상황이 종결된 것으로 안다”고 진술했다.

박 전 사장은 2017년 2월 13일 특검에서 ‘최씨가 화를 내 그 이후에 구입한 비타나와 라우싱은 삼성전자 소유로 패스포트에 등록하지 않고 삼성전자의 자산관리대장에도 등록하지 않은 것 아니냐’는 질문에 “패스포트는 최씨 요구 때문에 그렇게 한 것이 맞고 자산관리대장에 등록하지 않은 것은 황 전 전무의 실수”라고 답했다.

이 말에 대한 소유권 문제는 추후 법정에서 핵심 쟁점이 된다. 박 전 대통령과 최씨, 이 부회장 재판에서는 비타나 등 말 3필의 소유권이 삼성과 최씨 가운데 누구에게 있었다고 보느냐에 따라 뇌물로 인정된 액수와 형량이 크게 달라졌다.

이 부회장의 1심 재판부, 박 전 대통령과 최씨의 1심 재판부는 최씨가 “말을 사준다고 했지 언제 빌려준다고 했냐”며 화를 낸 점 등을 근거로 말의 소유권이 최씨에게 있다고 판단했다. 그 결과, 삼성전자가 코어스포츠에 지급한 용역대금 36억여원과 말 구입비 및 보험료 36억여원이 모두 뇌물로 판단됐다. 이를 근거로 1심 재판부는 이 부회장에게 징역 5년의 실형을 선고했다.

그러나 이 부회장의 항소심 재판부는 “화를 낸 것은 소유권 이전 요구가 아니라 정씨가 타는 말을 삼성 명의로 등록하지 말라는 취지”라고 해석해 말의 소유권이 삼성에 있다고 보고 말 구입비 등 36억원은 뇌물로 판단하지 않았다. 이에 따라 이 부회장은 징역 2년 6개월에 집행유예로 감형을 선고받고 풀려났다. 결과적으로 뇌물을 준 쪽은 36억을 줬는데 받은 쪽은 약 72억원을 받았다는 모순이 생겼다. 이 문제는 대법원에서 최종적으로 정리될 전망이다.

(다음 편에 계속)

최순실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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