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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살아있는데…" 살아도 죽은 '유령' 국민들

[the L] 서울사회복지공익법센터와 함께 하는 세상 바라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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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픽=이지혜 기자

법원으로부터 실종선고 받은 황씨

1960년생인 황씨는 1993년경 가족들과의 잦은 불화 후 집을 나와 각처를 전전하며 오랫동안 가족 및 친척들과 소식을 끊고 지냈다. 황씨는 주로 막노동을 하였고 도중에 신안군에 팔려가 염전에서 일하다가 탈출하는 등 하루하루를 근근이 이어가는 생활을 하였다.

그 사이 가족들은 황씨에 대해 법원에 실종선고 신청을 하였고, 1998년 6월 실종기간이 만료돼 법원은 실종선고를 하였다. 이에 황씨는 1998년 6월 기준으로 공식적으로 사망자로 분류됐고, 이후부터 현실에서는 멀거니 살아있지만 서류상으로는 구천을 떠도는 유령이 되었다.

서류상 사망자를 상대로 한 형사 판결

기가 막힌 것은 실종기간이 만료된 날 이후에도 황씨는 여러 차례 형사 재판을 받았다는 점이다. 법원도 서류상 사망자인 황씨를 상대로 재판을 하고 선고까지 하였다.

이러한 사실이 밝혀진 것은 황씨가 서울북부 보호관찰소로부터 보호처분 대상으로 관리되던 중, 서울시에 있는 사례관리 담당 복지사들로부터 발견되면서 부터이다.

황씨는 사망자로 처리되어 모든 행정문서에 말소자로 분류되어 있었기에, 극심한 생활고에 시달리고 있음에도 국민기초생활보장법에 의한 수급자 신청도 하지 못했다. 그래서 황씨는 조그만 교회의 도움으로 고시원에서 임시로 거주하고 있었는데, 이러한 사실을 서울시 복지사들이 발견하여 필자가 있는 서울사회복지공익법센터에 도움을 요청하였다.

다양한 유형의 유령 국민들

대부분의 구비서류에 주민등록등본이나 기본증명서를 요구한다. 요즘은 인터넷으로도 쉽게 뗄 수 있는 이들 기본 서류가 누구에게는 엄청난 장애물이다. 멀쩡히 맥박이 뛰고 있지만 서류상으로는 존재하지 않는 사람들, 그들을 우리는 ‘유령국민’이라고 한다.

유형은 여러 가지다. 처음부터 아예 주민등록증이나 가족관계 등록부가 없는 사람들, 황씨처럼 처음에는 있었지만 중간에 사라진 사람들, 여기에 엄마나 아빠의 개인적인 사정으로 출생신고도 못하고 있는 아이들까지 있다.

이들의 삶은 희한하다. 어느 때는 산 사람 취급을 받고, 어느 때는 죽은 사람 취급을 받는다. 황씨 뿐만 아니라 현재 필자가 진행하는 소송의 당사자인 홈리스는 주민등록증도 없는 무적자(無籍者)임에도 교도소에 4번이나 갔다 왔다. 다른 한편에서는 출생신고를 못해서 아이의 취학 연령이 다가오는 것이 두렵기만 부모도 있다.

이러한 유령 국민들이 예상외로 상당하다. 주민등록등본이 있다고 행복하진 않겠지만, 없으면 불편하기 이를 데 없다. 이런 사람들에게 주민등록등본 좀 만들어 주면 어떨까.


[이상훈 변호사는 서울시복지재단 내에 있는 서울사회복지공익법센터에서 일하고 있다. 재벌개혁을 하려고 시민단체 활동을 시작한 후, 노동사회, 언론개혁, 정보공개, 탈핵, 사법개혁, 사회책임투자, 소액주주, 과거사 등 남부럽지 않은 여러 시민운동을 경험하였고, 현재는 복지 분야에서 일을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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