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승태 대법원장 시절 법원행정처의 법관 사찰·재판 거래 의혹에 대한 검찰 수사가 임박했다. 검찰은 수사 착수와 동시에 사법농단 관련 문건이 발견된 행정처 PC에 대한 임의제출을 사법부에 요구할 것으로 보인다.

17일 검찰에 따르면 서울중앙지검은 18일 관련 고발 사건들을 공공형사수사부(부장검사 김성훈)에서 다른 부서로 배당하고 수사에 들어갈 예정이다. 현재 검찰에는 양 전 대법원장 등 사법행정권 남용 의혹과 관련한 고발장이 10여건 접수돼 있다. 공공형사부가 삼성전자서비스 노조 관련 수사를 진행하고 있어 사법부에 대한 대형 수사를 동시에 진행하기 버겁다는 이유에서다. 법조계 안팎에서는 특별수사부가 맡아 수사하게 될 가능성이 높다는 관측이 나온다.

검찰은 김명수 대법원장이 지난 15일 “법과 원칙에 따라 이루어지는 수사에 대해 사법부라고 하여 예외가 될 수 없다. 법원 조직이나 구성원에 대한 수사라고 하여 이를 거부하거나 회피할 수 없다”며 “사법행정의 영역에서 필요한 협조를 마다하지 않겠다”고 천명함에 따라 수사 시작에 한결 부담을 덜게 됐다.

검찰이 그 동안 판사 개개인의 비위를 비롯한 법조비리 사건에 대해 수사한 적은 많았지만 전직 대법원장까지 포함된 사법부의 조직적 범죄 의혹에 대한 수사는 헌정사상 처음이다. 검찰 관계자는 “여기까지 온 이상 어쩔 수 없다. 퇴로가 없는 수사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본격적인 수사는 이번주 초로 예정된 검찰 검사장급 이상 인사가 마무리된 뒤 시작될 것으로 보인다. 수사 대상자는 고등법원 부장판사 4명, 법원행정처를 거친 판사 등 법원의 징계 대상자들을 비롯해 양 전 대법원장까지 포괄한다. 양 전 대법관 등 이미 법원을 떠난 판사들에 대해서는 대법원의 자체 조사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다.

수사 범위는 법원 내 조사단들이 해결하지 못한 의혹들이다. 크게는 △법원행정처의 법관 사찰 및 그에 대한 인사불이익 여부 △‘정부 운영에 대한 사법부의 협력 사례’ 문건 등 사법부가 행정부와 재판 결과를 협의했다는 의혹 등이다.

검찰은 조만간 고발인 조사를 마친 후 대법원 법원행정처에 대해 ‘사법행정권 남용 의혹 특별조사단(단장 안철상 대법관)’의 조사 대상이 된 파일들과 해당 PC들에 대해 임의제출을 요구할 것으로 보인다. 조사단이 PC에서 밝혀내지 못한 문건이 더 있을 수 있다는 의심에서다. 실제로 법원 내 2차, 3차 조사단은 4대의 법원행정처 PC에서 몇 개의 키워드를 검색하는 방식으로 문건 대상을 선정했지만 조사 대상이 됐던 키워드는 불과 49개였다.

한 전관 출신 변호사는 “이번 특별조사단의 경우 2차 조사 결과에 이판사판, 이사야, 유스티티아, 원세훈, 국정원, 국가정보원 등 키워드 6개를 추가해 문건을 검색하는 데 그쳤다”면서 “재판 거래 의혹와 관련해 KIKO(키코), 세월호, KTX, 통진당 등 다른 검색어를 포함시켜 검색할 경우 조사 대상에 포함되지 않았던 파일이 나올 개연성은 있다”고 내다봤다.

그러나 대법원이 순순히 이 PC들을 내줄지는 미지수다. 김 대법원장은 15일 퇴근길에 기자들과 만나 “일단 특별조사단이 획득한 인적·물적 자료를 절차에 따라 제공할 생각이고 비공개 문건도 경우에 따라 포함될 수 있다”고 밝혔다. PC는 물론 비공개 문건마저 경우에 따라 제공하지 않을 수 있다는 것이다.

이 경우 검찰은 추가 의혹을 밝혀내기 위해 대법원장 PC를 포함한 법원행정처 PC에 대해 압수수색영장 등을 청구할 가능성도 있다. 영장 발부 권한을 가진 법원이 이를 허가할지도 관심이 쏠린다. 2017년 사법연감상 압수수색·검증영장 발부율은 89.2%에 이른다.

앞서 대법원은 지난 5일 양 전 대법원장 시절 작성된 법원행정처 문건 98건을 공개했다. 이 문건들에는 법원행정처가 상고법원 도입에 반대하는 판사들의 활동과 재산 내역 등까지 사찰하고 반대 의견 표출을 억누르려 한 정황이 담겨 있다.

또 사법부가 상고법원 도입에 청와대의 도움을 받기 위해 “직간접적으로 대통령과 청와대에 힘을 보태 온 사례”라며 △KTX 승무원 정리해고△철도노조 파업 △과거사 국가배상 제한 △이석기·원세훈·김기종 사건 △통상임금 △국공립대학 기성회비 반환 △키코 사건 등을 적시한 문건도 들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