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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불질러 버릴거야"… 화려한 '아이돌'의 그늘

[the L 레터] 소속사가 계약 이행 안 해도 대책 없어…데뷔 후 지원 없어 속으로만 우는 아이돌

/사진=뉴스1

"짐 싹 빼고 집으로 가라. 안 빼면 불질러 버리겠다."


조직폭력배의 말이 아니다. 한 소속사 대표가 아이돌 멤버에게 한 말이다. 방탄소년단으로 대표되는 K팝 아이돌이 세계적으로 한류를 주도하며 화려한 조명을 받고 있지만, 그 이면의 그늘은 비교적 덜 알려져 있다. 소속사의 계약 불이행과 폭언, 열악한 처우 등에 속으로 우는 아이돌들이 적지 않다.


남성 5인조 아이돌 그룹 '인엑스'(본국·상호·준용·지남·윈)는 2016년 8월 디지털 싱글 '오나'로 데뷔한 뒤 지난해 4월에도 앨범을 내고 활동했다. 계약서에 따르면 이들은 2015년부터 7년 동안 디지털 싱글 3장 등을 낸 후 수익은 비용을 제하고 기획사 측이 최소 70%를 가져가기로 했다. 하지만 실제 정산은 한번도 이뤄지지 않았다.


소속사 대표 A씨는 멤버들, 멤버의 부모들과 만난 자리에서 "막말로 일본 안 보내고 국내에서 돌렸어도 팬덤이 쌓였지 않았냐고 하겠지만, 그 팬덤은 진짜 무의미하고 해외 팬들을 먼저 확실하게 해놓고 가자"고 했다. 이런 전략으로 A씨는 계약 기간 내내 해외 공연을 통한 수익에만 신경을 썼다. 일본과 대만 공연을 가면서도 소속사 측의 지원은 없었다. 일본에선 약 한달반 동안 매니저도 없이 공연해야 했다. 해외 측과 계약할 땐 번역도 없이 일방적으로 서명을 강요당했다.

A씨는 수시로 멤버들을 향해 “한끼 먹는다고 안 죽는다”는 등의 폭언과 협박을 했다. 한 멤버는 “정신적 고통이 심해 더 이상 있기 힘들다”고 했고, 다른 멤버도 말이 줄고 혼자 있으려 하며 “죽고 싶다”고 가족들에게 털어놓기도 했다.

노래나 안무 연습을 포함해 기본적인 지원도 이뤄지지 않았다. 숙소와 연습실 사용료, 밥값은 늘 밀려 있었다. 한 멤버는 어머니에게 “식사도 하루에 두 끼를 눈치를 봐가면서 혼나지 않게 먹었다”고 했다. 


A씨는 멤버들이 집에서 생필품을 가져다 쓰게 하기도 했다. 데뷔곡의 안무를 맡았던 안무가에 따르면 보통 아이돌 그룹이 1년이나 최소 3~4개월은 연습을 하고 데뷔하는 반면 인엑스의 경우 데뷔 전 단 한달만 레슨을 받았다. 한 멤버는 일본 공연 중 성대결절이었지만 보호가 이뤄지지 않았다. 뮤직비디오를 찍을 때도 허리가 좋지 않았지만 병원 치료를 받지 못했다.

소속사와 신인 아이돌은 철저한 갑을 관계다. 소속사가 계약을 제대로 이행하지 않는 경우 아이돌 측이 택할 수 있는 방법은 사실상 소송 밖에 없다. 인엑스 멤버들은 결국 소송으로 갔다.


서울중앙지방법원 민사합의25부는 20일 인엑스 멤버들이 소속사 대표 A씨를 상대로 낸 전속계약부존재확인 청구 소송에서 원고 승소 판결을 내렸다. 


상급심에서 판결이 이대로 확정될 경우 인엑스 멤버들은 자유의 몸이 된다. 하지만 이미 멤버들은 활동 기간 중 출석 불량으로 학교에서 유급을 당하기도 했고, 다른 오디션 프로그램에도 참여하지 못하는 등의 불이익을 겪었다. 손해액을 특정하기 어려워 손해배상 청구 등 다른 법적 대응도 어려운 터다.


인엑스와 달리 대외적 이미지와 소속사와의 관계 등을 걱정해 소송조차 하지 못하는 아이돌도 많다. 소속사에서 계약 후 나몰라라하는 바람에 결국 다시 오디션·경연 프로그램에 도전하는 아이돌도 있다. 인엑스를 대리한 송혜미 변호사(법률사무소 현율)은 "소속사에서 방치하거나 술집에서 일하도록 시켰다는 내용 등의 상담이 많지만 승소를 확신할 수 없고 대부분 소속사와 관계가 나쁘질까봐 소송을 망설인다"고 전했다.


소속사들도 할 말이 없는 건 아니다. 한 아이돌을 키워내기까진 생각보다 많은 시간과 돈이 들어간다. 그럼에도 국내 연예계 소속사들은 메이저 몇몇을 제외하고 대개 영세해 지원 여력이 충분하지 않은 게 사실이다. 데뷔한다고 해도 신인 아이돌이 자리를 잡기까진 상당한 시간과 노력이 필요하다. 기존 아이돌의 팬덤이 워낙 강력해서다.


그렇다고 소속사가 계약을 위반하고 약속을 지키지 않아도 되는 건 아니다. 결국 소송까지 가서 계약이 무효화되면 손해보는 건 소속사와 아이돌 양쪽 모두다. 방탄소년단의 성공비결이 자율에 있다고 하지만, 그게 방치를 말하는 건 아니다. '약속은 지켜져야 한다'는 뜻의 라틴어 격언 'Pact sund servanda'를 들먹일 필요도 없다. 계약서는 지키라고 있는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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