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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제가 대신 할테니 그냥 가만히 계세요"

[the L] 딜레마에 빠진 성년후견제

편집자주외부 기고는 머니투데이 the L의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기고문은 원작자의 취지를 최대한 살리기 위해 가급적 원문 그대로 게재함을 알려드립니다.

임종철 디자이너

다리가 불편한 할아버지가 힘겹게 언덕길을 올라가고 있다. 이 때 할아버지에게 지팡이를 쥐어지면 더 쉽게 올라갈 수 있다. 이렇게 신체 능력이 떨어질 경우 부족한 부분을 메꾸어 주면 된다. 지팡이로 안 되면 휠체어로, 아니면 아예 의족을 착용해서 돌아다닐 수 있다.

신체 능력이 아니라 정신 능력이 부족한 경우도 있다. 대표적으로 치매, 발달․정신 장애인이다. 이 때도 마찬가지로 부족한 정신 능력 부분을 보조해 주면 사회생활을 할 수 있다. 이런 취지로 2013년부터 민법에 도입된 것이 ‘성년후견제’이다. 과거의 금치산자 제도처럼 무조건 ‘할 수 없다’라고만 하지 말고, 남아 있는 정신 능력을 도와줘서 사회생활을 할 수 있도록 하는 제도다.

그러나 어려움에 부딪히다

그런데 문제가 있다. 정신 능력은 신체 능력과 달리 어느 부분이, 얼마나 부족한지를 평가하기가 어렵다는 점이다. 즉, 지팡이 만큼 도와주면 되는 정신 능력인지, 아니면 휠체어 만큼 도와 주어야 할 정신 능력인지 알기 어렵다.

거기다 부족한 모습도 다양하고, 능력이 떨어지는 시기도 왔다 갔다 한다. 그러다 보니 보조해 주는 것이 더 어렵다. 반면 현재의 후견제도는 4가지 기성품(성년, 한정, 특정, 임의)만 마련되어 있어서 몸에 잘 맞지도 않는다.

더 큰 문제는 거래의 안전에 대한 상대방의 거부감이다. 정신 능력이 떨어지는 사람과 거래했다가 행여 나중에 탈이 날까 봐 아예 거래를 거절한다. 예를 들어 은행 창구에서는 후견인을 선임한 후에 다시 오라면서 거래를 거절한다.

둘 간의 이해관계를 조정하는 곳이 법원이다. 법원은 후견인을 선임해야 할지, 행여 그 과정에서 거래의 안전이 깨질 위험이 없는지를 살펴본다. 그러나 가뜩이나 온갖 민형사 사건으로 바쁜 판사들이 별로 티도 나지 않는 후견소송을 꼼꼼히 보기 힘들다. 후견소송이 당초의 취지에 맞게 운영되려면 4가지 기성품 중 특정후견인이 많이 선임되어야 하는데, 법원은 복잡하다고 꺼려한다. 후견소송이 성과를 내기에는 법원의 문턱이 너무 높다.

“대신 해 줄께”가 해답일까

법원의 조정역할이 부족한 상황에서 후견소송을 바라보는 시각은 제각기 다르다. 한편에서는 후견소송을 홀로 서는데 도움이 되도록 운영해야 한다 라고 하고, 다른 한편에서는 혼자 사회생활을 하다가 큰 봉변을 당할 수 있으니 “대신 해 줄 테니까 그냥 가만히 계세요”의 수단으로 후견소송을 활용하려고 한다. 전자는 주로 장애인단체의 입장이고, 후자는 주로 사고가 나는 것을 꺼려하는 사회복지계나 가족들의 입장이다.

성년후견제를 보면 과연 도와준다는 것이 무엇일까를 생각하게 된다. 힘들지만 혼자 올라 가려는 사람을, 그러다가 사고 난다면서 대신 등에 업어 매치면서 오르는 것은 도와주는 것이 아니다. 그렇다고 죽이 되든 밥이 되든 혼자 해 보라고 지켜만 보는 것은 무책임한 방임이다. 물론 제일 좋은 것은 지켜보면서 도와주다가(지원), 도저히 안 될 때 대신 해 주는 것(대체)이지만 그게 말처럼 쉽지 않다.

모두 도와주는 것이라고 한다. 그러나 피해 예방과 자기결정권의 보호가 충돌하면서 성년후견제는 지금 딜레마에 빠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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