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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 여름 서초동 법조타운은 덥기는 커녕 써늘합니다. 사법부가 전 정권과 짜고 재판 과정과 결과에 개입했다는 사상 초유의 의혹을 두고 검찰이 전력을 다해 수사에 나서면서입니다. 이 의혹은 올해 법원행정처 PC에서 '원세훈 전 국정원장 판결 선고 관련 각계 동향'이라는 이름의 문건이 발견되면서 불거졌습니다. 내용을 요약하면 법원행정처가 박근혜정부의 정통성이 걸려 있던 국가정보원 댓글 사건을 비롯해 각종 재판을 두고 청와대와 부적절한 거래를 했다는 겁니다.
의혹이 사실이라면 범죄행위 성립은 물론, 반헌법적 행위이자 나라의 존립을 뒤흔드는 문제로 비화됩니다. 사법부의 필요에 따라 그 국민이 누구든 '재판을 거래당할 수 있다'는 이야기이기 때문입니다. 대한민국 헌법 제103조는 '법관은 헌법과 법률에 의하여 그 양심에 따라 독립하여 심판한다'고 규정하고 있습니다.
안타깝게도 '정의의 마지막 보루'라는 대법원을 바라보는 서초동 변호사들의 눈길엔 신뢰보다 불신이 좀더 섞여 있습니다. 한 변호사는 이달들어 변호사 커뮤니티 게시글에서 "의혹이 파헤쳐지는 과정에서 나온 대법원의 태도과 변명이 사법부의 신뢰를 더 실추시키고 있다"고 적었습니다.
앞서 대법원은 재판거래란 말을 입에 담기조차 불경스럽다는 반응이었습니다. 재판거래 의혹이 본격적으로 제기된 6월, 고영한 선임대법관 등 대법관 13명은 공동 입장문을 통해 "재판의 본질을 훼손하는 재판거래 의혹에 대해 근거 없는 것임을 분명히 밝힌다"며 "대법원 재판에서는 그 누구도 특정 사건에 관하여 자신이 의도한 방향으로 판결이 선고되도록 영향을 미치려 한다는 것은 있을 수 없다"고 주장했습니다.
그런데 검찰 수사 과정에서 공개된 자료들은 대법관들의 해명과 정면으로 배치됩니다. 박근혜정부 김기춘 전 대통령 비서실장이 2013년 12월 차성안 당시 대법관을 자신의 공관으로 불러 윤병세 외교부장관과 일제 강제징용 피해자들의 민사소송을 두고 '대책회의'를 연 사실이 밝혀졌습니다. 행정, 입법, 사법이 분리돼 있는 삼권분립 체계상 사법부의 최고위 직급인 대법관이, 행정부 소속 청와대 비서실장 공관에 찾아가 재판에 대한 회의를 한 겁니다. 심지어 김 전 실장은 이달 중순 검찰에 출석해 해당 소송과 관련해 박 전 대통령의 지시가 있었다는 진술까지 했습니다. 행정부 수반이 사법부의 재판개입 의혹에 연루된 정황이 확인된 겁니다.
검찰은 당시 정부와 대법원이 짜고 일제 강제징용 피해자들의 '대일 청구권'을 무력화시키기 위한 논의를 한 게 아닌지 의심하고 있습니다. 실제로 이 소송은 해결되지 않은 채 대법원에 5년째 계류돼 있습니다. 그 사이 상당수 원고들이 노령과 지병으로 세상을 떠났습니다. 남은 원고는 손가락으로 꼽을 정도입니다.
게다가 법원은 이상하게도 검찰 수사에 대해 비협조로 일관하고 있습니다. 검찰이 자료 임의제출 요구를 대부분 거절한 건 물론, 의혹 확인을 위한 압수수색 영장 청구도 이례적으로 무더기 기각한 겁니다. 통상 압수수색 영장의 경우 유죄를 입증해야 하는 것이 아니고 수사의 단서를 확보하기 위한 것이어서 이른바 범죄의 의심이 있을 경우 쉽게 발부되는 편입니다. 그러나 재판개입 의혹과 관련해 검찰이 청구한 압수수색영장의 발부율은 50% 이하입니다. 특히 대법원 법원행정처 윤리감사관실, 사법정책실, 전산정보국 등에 대해 검찰이 청구한 압수수색영장은 모조리 기각됐습니다. 법원의 발부율은 통상 90% 내외에 이릅니다.
영장 기각사유 역시 지금까지 한 번도 구경해보지 못한 문구들로 가득합니다. 영장전담판사들은 "일개 심의관이 작성한 문건에 따라 대법관이 재판한다고 보기 어렵다, (대법원의) 임의제출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며 대법원에 대한 압수수색 영장 청구를 기각했습니다. 변호사들이 이상하다고 느끼는 건 물론이고, 법원 내부서도 "우리 법원(서울중앙지법)의 압수수색영장 발부율은 99%에 가깝다. 강도 사건의 핵심증거를 범인이 창고에 숨겨버렸는데 식칼을 임의제출할 거라며 압수수색을 못하게 하는 것이나 마찬가지"라며 영장기각을 비판하는 글이 올라올 정도입니다.
무엇이 그리 두려운 것일까요. 한 전관 출신 변호사는 "의혹이 사실이라면 국민에게 숨기지 않고 자복하고 책임을 지면 될 일이고, 사실이 아니라면 한 점 부끄럼없이 수사에 응해 당당하게 해명을 할 일"이라며 "법원의 태도는 도대체 무엇을 숨기는 것인지 더 의심이 들게 만든다"고 말했습니다.
대한변호사협회는 17일 대법원 앞 기자회견에서 "대법원은 뼈를 깎는 개혁을 통해 다시 새롭게 태어나야 한다"며 철저한 수사와 진상규명을 촉구했고, 소속 변호사 2051명은 지지 서명을 냈습니다. 대법원은 과연 재판에 대한 신뢰를 회복할 수 있을까요? 법원 스스로의 손에 달려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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