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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법원, 이젠 분쟁 해결 넘어 치유까지"

[the L] [머투초대석] 성백현 서울가정법원장

성백현 서울가정법원장 / 사진=이기범 기자

한국은 이미 늙은 나라다. 인구 7명 가운데 1명이 만 65세 이상 고령자다. 고령화사회(65세 이상 인구 7% 이상)을 넘어 고령사회(65세 이상 인구 14% 이상)에 이미 들어섰다. 

늙어가는 속도도 빠르다. 출산율 하락과 무관치 않다. 지난해 1.05명이었던 합계출산율은 올해 0.9명대로 떨어질 게 유력시된다. 14세 이하 유소년 인구 100명당 만 65세 이상 고령 인구의 비율을 나타내는 노령화지수는 2009년 62.9에서 올해 110.5로 급등했다.

그렇다면 우리나라의 사법시스템은 고령사회에 걸맞게 갖춰져 있을까? 성백현 서울가정법원장(사진·59·사법연수원 13기)의 답은 아쉽게도 "아직 아니오"이다.

◇"후견이 필요한 분들 도와줘야 하는데…"

"급속한 고령화로 법원에도 상속 관련 분쟁과 치매 등으로 인한 후견사건 등의 늘어날 것으로 예상됩니다. 인원 보강이 절실합니다. 후견제도만 하더라도 충분한 인원을 확보해 후견인들을 상시적이고 심층적으로 감독할 수 없다면 제대로 운영되기 힘듭니다." 성 원장의 진단이다. 

후견제도란 질병·장애나 노령 등의 이유로 합리적인 의사결정이 어려운 이들이라도 한 명의 인격체로서 온전한 활동을 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것을 말한다. 국내에서는 2013년 7월부터 개정 민법이 시행되면서 본격화됐다. 과거의 금치산·한정치산 제도는 '행위 무능력자'의 행위를 제한하는 데 방점을 뒀다. 반면 후견제도는 일정한 보조를 통해 행위능력이 제한된 이들도 큰 어려움 없이 활동하도록 돕는 데 무게중심이 있다.

문제는 후견인들에게 적절한 보수를 지급할 능력이 되지 않는 사람들이 적지 않다는 점이다. 그나마 발달장애인들에 대해서는 특별법을 통해 공공후견인제도가 시행되고 있어 국비로 후견서비스가 제공된다. 올해 9월부터는 치매환자에 대해서도 공공후견이 시행된다. 

그러나 발달장애인이나 치매환자를 제외한 나머지 경우에는 이런 지원이 없다. 자비로 후견인 비용을 부담해야 한다. 심지어 친족에 의한 학대·방임의 우려가 있는 미성년자 등도 마찬가지다. 전문가들에게 '재능기부' 형태로 돈이 없는 이들의 후견자로 나서줄 것을 요청할 수밖에 없는 형편이다.

서울가정법원은 올 7월부터 시범적으로 '국선 후견인제'를 운영하고 있다. 형사 피고인에 대한 국선 변호인 지정과 비슷하게 빈곤층이 법원을 통해 후견 서비스를 이용하도록 하자는 취지다. 그나마도 정식으로 예산이 편성된 것이 아니다. 법원 예산을 일부 쪼개 후견인에게 지급하는 수준이다.

성 원장은 "후견이 필요한 이들을 도와줘야 하는데, 법령이나 예산은 뒷받침되지 않은 상황이었다"며 "소송이 아닌 비송사건에 대한 비용보조 등 절차구조 예산으로 대법원에서 1억원을 편성받아 월 20만원씩 7명의 국선후견인에게 비용을 대고 있다"고 했다.

또 "아직 월 140만원에 불과해 적은 금액이라고 볼 수도 있지만 피후견인에 따라서 사망 전까지 최장 수십년까지 예산이 집행돼야 할 수도 있어 무리하게 지원 대상을 확대하기가 어렵다"며 "국선 후견인제의 안정적인 운영을 위해선 법령을 통해 충분한 예산이 보장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고령시대를 맞아 가정법원의 주된 역할도 과거 이혼사건에서 상속 또는 후견 문제로 옮겨가고 있다. 성 원장은 "이혼사건의 접수 건수는 줄어드는 추세인 데 반해 상속 관련 분쟁과 후견사건의 접수 건수는 증가 추세에 있다"며 "특히 후견 사건이 매년 큰 폭으로 늘어나고 있다"고 했다. 그러면서 "올해 2월 후견사건 담당 재판부를 2개에서 3개로 증설했고, 앞으로도 후견사건의 접수가 계속 늘어날 경우 재판부를 추가로 증설할 여지도 있다"고 말했다.

성백현 서울가정법원장 / 사진=이기범 기자

◇"법원에도 예산편성권·법안제출권 줘야"

현재 국회에 계류된 가사소송법 개정안이 통과되면 가정법원이 해결해야 할 사건은 더욱 늘어날 전망이다. 개정안은 출생부터 가족관계의 구성, 가족들 사이에 발생하는 재산 분쟁 등 신분·재산 관계에 대한 사건을 모두 가정법원이 관할토록 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성 원장은 "지금까지는 부모의 사망 등으로 남겨진 가족들 사이에 상속재산 관련 분쟁이 발생할 경우 상속재산 분할사건은 가정법원이, 상속 채무로 인한 구상권 사건이나 유류분 사건은 일반 민사법원이 담당해왔다"며 "가사소송법 전면 개정안이 국회를 통과해 시행되면 가정법원의 전속 관할에 속하는 사건과 관련한 일정한 민사사건을 가정법원이 한꺼번에 다룰 수 있게 돼 국민들의 불편이 크게 줄어들 것"이라고 설명했다.

성 원장은 가정법원의 치유적 기능을 강조했다. 그는 "가정법원의 주 업무는 단순히 하나의 사건을 처리하는 게 아니라 한 가정이나 소년의 삶 전체의 문제를 종합적이고 근본적으로 해결하는 것"이라며 "근원적 갈등과 원인을 그대로 둔 채 판결 등으로 사건만 종결하는 것은 임시적 조치에 불과해 곧바로 또 다른 문제의 원인으로 작용할 가능성이 높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최근에는 가정 문제나 분쟁이 복잡하고 다양해질 뿐 아니라 세대를 거쳐 지속적으로 영향을 미치는 사례가 종종 발생한다. 경제난 등으로 서로에게 증오만 남은 채 이별한 부모의 자녀가 그 후유증을 심각하게 겪는 게 대표적"이라며 "가정법원이 한 가정이나 소년의 삶 전체를 종합적·근본적으로 해결하기 위한 방편으로 적극적인 후견과 복지 기능을 강조하는 게 바로 이같은 특성 때문"이라고 했다.

이어 "과거의 가정법원이 단순히 가족 구성원 사이의 분쟁을 해결하는 데 중점을 뒀다면 이제는 가정법원이 적극적으로 분쟁의 근원적 요인을 치유하는 데 집중해야 한다"고 성 원장은 강조했다. 가정법원이 가정의 분쟁이나 문제를 통합적으로 관리하면서 다양한 이유로 야기될 수 있는 문제를 미연에 방지하는 사전예방 기능도 수행할 수 있어야 한다는 얘기다.

한편 검찰이 수사 중인 양승태 전 대법원장 시절 사법농단 의혹에 대해 성 원장은 "당혹스럽다"면서도 "적어도 내가 아는 법관들 중에는 한명도 재판에 대해 개입이나 외압을 받은 적이 없다"고 했다.

그는 사법부가 독립적으로 예산을 편성하거나 법안을 제출할 권한이 없고 행정부에 의존할 수 밖에 없다는 점이 사법농단 의혹 사태의 근본적인 원인 가운데 하나라고 지적했다. 성 원장은 "사법부가 국선 후견인제처럼 좋은 정책을 펼치려 해도 행정부와 국회를 통해서만 예산을 받거나 법률안을 제안할 수 있다"며 "그렇다보니 사법부가 국회에 가서 로비를 하고 행정부를 찾아가 아쉬운 소리를 해야 하는 게 현실"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사법부에도 위상에 걸맞게 독자적 예산 편성권과 법안 제출권을 부여할 필요가 있다"고 덧붙였다. 

성백현 서울가정법원장 / 사진=이기범 기자

■성백현 서울가정법원장 프로필

경북 상주 출신인 성백현 서울가정법원장은 용산고, 서울대 법학과를 졸업했다. 사법연수원을 13기로 수료하고 1986년 9월 서울지법 남부지원 판사로 임관한 뒤 30년간 대법원 재판연구관, 서울고법 부장판사, 제주지법원장, 서울북부지법원장 등을 역임했다. 2017년 2월부터 서울가정법원장으로 재직 중이다. 합리적이고 공정한 재판업무 수행능력을 갖췄을 뿐 아니라 법원 구성원 및 재판 당사자들과의 긴밀한 소통을 통해 법원에 대한 신뢰를 높이기 위한 노력을 기울여왔다는 평가를 받는다.

시민들로 구성된 사법모니터 요원들의 모니터링 등을 통해 판사들의 법정 언행을 개선하기 위한 방안을 추진하기도 했다. 서울가정법원에 부임한 이후에는 한국성년후견학회, 한국가족법학회와 공동으로 성년후견 관련 국제 학술대회를 개최하는 등 '한국형 후견제도'의 정착방안을 소개하는 데도 힘써왔다. 

2010년 4월 서울고법 부장판사로 재직하던 중에는 동료 법관들과 함께 '음악사랑 동호회'를 만들어 매년 정기 연주회를 여는 등 밴드 활동을 하기도 했다. 성 원장은 이 모임에서 드럼을 쳤다. 

△1959년 경북 상주 △1977년 서울 용산고 △1982년 서울대 법학과 △1981년 제23회 사법시험 합격 △1983년 제13기 사법연수원 수료 △1986년 서울지법 남부지원 판사 △1991년 청주지법 판사 △1997년 대법원 재판연구관 △1999년 춘천지법 강릉지원장 △2002년 서울행정법원 부장판사 △2006년 대전고법 부장판사 △2007년 서울고법 부장판사 △2013년 제주지법원장 △2014년 서울북부지법원장 △2017년 서울가정법원장(현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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