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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L 리포트

"네가 했다고 해라"…제자를 팔아먹은 교수들

[the L] [비선실록(秘線實錄) 제20화-정유라 이대 학사비리] 최경희 총장, 최순실에 "그때 박근혜 대통령 지키신 분 아니세요?"


/그래픽=김지영 디자인기자

"교수 같지도 않은 사람이 네가 뭔데 우리 딸을 어떻게 한다는 거야"

2016년 3월말, 정유라의 지도교수인 이화여대 함정혜 교수의 연구실. 최순실이 교수를 면전에 대고 언성을 높였다. 훗날 신문에 자주 등장하는 모자에 선글라스 차림이었다. 교수가 "어머니께서 오해를 하셨다"며 진정시키려 했으나 최순실은 듣지 않았다. "우리 딸의 목표는 이화여대 졸업이 아니라 올림픽 금메달인데, 교수라는 사람이 학생을 격려하고 챙겨줘야지 왜 제적이니 어쩌니 이야기를 해?"라고 윽박질렀다. 교수도 참다 못해 "어제 통화 때 고소한다고 하셨죠. 저도 명예훼손으로 맞고소하겠습니다"라고 맞받았다. 최순실은 분을 이기지 못하고 자리를 박차고 나갔다.

정유라는 2015년 1학기에 학점 0.11점으로 학사경고를 받은 터였다. 임신 중이었던 2학기에 휴학하고 2016년 1학기에 복학했는데, 개강 후 한달이 지났는데도 한 번도 강의실에 나오지 않았다. 함 교수는 정유라의 측근에게 전화를 걸어 "이번 학기도 이런 식으로 출석하지 않으면 다시 학사경고를 받을 수 있다"고 설명했다. 그러자 바로 다음날 최순실이 찾아와 말다툼을 벌인 것이다.

최순실이 딸의 학점을 주는 교수에게 폭언을 퍼부을 수 있었던 건 믿는 구석이 있어서였다. 최순실은 당시 이대 체육대학장이었던 김경숙 전 학장은 물론 최경희 전 이대 총장과도 가까운 사이였다. 학교는 정유라의 학점을 올려주고, 그 대가로 최순실은 각종 특혜를 제공하는 공생 관계였다. 단순한 학부모와 학교의 관계가 아니었다.

"능력 없으면 너네 부모를 원망해. 돈도 실력이야."(2014년 12월3일 페이스북) 정유라의 말은 현실이었다. '이화여대 15학번' 정유라는 시험을 보지 않아도 시험지가 저절로 만들어졌다. 수업에 나가지 않아도 출석점수가 나왔다. 교칙대로라면 낙제였지만 정유라는 예외였다.

양심을 버린 교수들은 정유라의 학점을 조작했다. 죽으라면 죽는 시늉도 하는 조교들이 있으니 자기 손을 더럽힐 필요가 없었다. "무조건 패스시켜" 한 마디면 끝이었다. 조교들은 잘못된 일임을 알면서도 논문 통과를 생각하며 지시를 따랐다. 비리가 세상에 드러나자 교수들은 조교들에게 책임을 떠넘겼다. "교수님이 정말 그렇게 말씀하셨어요?" 박영수 특별검사팀에 불려가 '교수가 당신을 공범으로 찍었다'는 말을 전해들은 조교들은 배신감에 울먹였다.

최경희 전 이화여대 총장/ 사진=홍봉진 기자

◇"혹시 그때 박근혜 대통령 지키신 분 아니세요?"

최순실과 최 전 총장 사이에 다리를 놓은 건 김 전 학장이었다. 정유라의 이대 입시에 관여하면서 김종 당시 문화체육관광부 2차관을 통해 이미 최순실 쪽과 연이 닿아있던 터다. 2015년 7~8월쯤의 일이다. 김 전 학장의 특검 진술에 따르면 2015년 1학기 학교 운영에 대해 보고받던 중 최 전 총장이 "승마로 들어온 학생이 어떻게 지내는지 아느냐. 알아보라"고 지시했다. 이때 김 전 학장은 최 전 총장으로부터 "최순실이 500억대 자산가래요"라는 말도 들었다고 진술했다. 김 전 학장은 '총장이 기부금을 받고 싶은가 보다' 정도로 생각했다고 한다. 그러나 최 전 총장은 이런 말을 한 적이 없다고 주장했다.

김 전 학장은 최 전 총장의 지시를 받고 바로 행정실에서 학부형 연락처를 받아 최순실과 통화했다. 김 전 학장에 따르면 그가 김 전 차관을 거치지 않고 최순실과 직접 접촉한 건 이때가 처음이었다. 마침 최순실도 정유라의 독일 승마훈련을 위한 휴학과 학점 문제로 학교에 연락을 하려던 참이었다. 최순실은 "조만간 한 번 뵙겠다"고 말했고, 실제로 그해 9월쯤 학교로 찾아와 정유라에 관해 이야기를 나눈 뒤 학과장인 이원준 교수 등을 만나고 돌아갔다.

김 전 학장이 이를 보고하자 최 전 학장은 "나도 만나보고 싶다"며 최순실과 약속을 잡아달라고 했다. 김 전 학장은 최순실에게 전화를 걸어 9월21일 총장실에서 만나기로 약속을 잡았다. 첫 만남에서 최 전 총장은 최순실과 20~30분 간 독일 승마훈련, 대회 성과, 학교 기숙사 공사 등에 대해 이야기하다 저녁식사를 제안했다.

최순실과 최 전 총장, 김 전 학장은 10월7일 총장 공관에서 다시 만났다. 김 전 학장의 특검 진술에 따르면 최 전 총장은 저녁식사 전 체어맨 관용차를 불러 두 사람을 태우고 함께 '캠퍼스 투어'를 했다. 학교 뒤편 테니스장까지 올라가 최순실과 기숙사 현장을 내려다보면서 설명하기도 했다. 김 전 학장은 "총장님이 최순실씨에 대해 공을 많이 들이는구나 라는 생각이 들기는 했다"고 특검에 진술했다.

최 전 총장과 최순실은 공관으로 돌아와 선물을 교환했다. 최순실은 쿠키를, 최 전 총장은 이대 학교 점퍼 두 벌을 건넸다. 독일에 있던 정유라와 통화하면서 안부를 묻기도 했다. "최 전 총장이 '박근혜 대통령이 얼굴에 칼 테러를 당해 병원에 있을 때 박 대통령을 지키셨던 분 아니냐'고 묻자 최순실이 '나는 아니다'라고 대답했던 기억도 있다"고 김 전 학장은 진술했다. 그러나 최 전 총장은 이날 두 사람을 만나지 않았고, 언젠가 최순실에게 이런 질문을 한 것은 맞지만 의미를 둔 것은 아니었다고 특검에서 주장했다. 김 전 학장은 조사실에서 이 말을 전해듣고 "(최 전 총장이) 왜 그러실까요"라고 되물었다.

최 전 총장과 최순실은 그해 12월 4일과 31일 두차례 더 만났다. 장소는 서울 여의도 63빌딩 내 중식당. 최순실을 등에 업고 '문화계 황태자' 자리에 오른 차은택, 미르재단에서 실무를 담당한 김성현 사무부총장과 함께였다. 최순실은 미르재단을 통해 프랑스 요리학교 '에콜페랑디'의 분교를 국내에 설립하려 했고, 학교 부지로 이대를 점찍어둔 상태였다. 최 전 총장도 에콜페랑디 유치에 적극적이었다. 공간부족·임대료 문제로 에콜페랑디 사업이 흐지부지되긴 했지만 최 전 총장은 최씨와 꾸준히 연락했다. 특검은 최 전 총장에게 최순실과 만나면서 정유라 학점관리를 부탁받은 것 아니냐고 물었지만 그는 강하게 부인했다.

다음은 최 전 총장이 2017년 1월18일 특검 조사에서 검사와 주고 받은 문답이다.

검찰(이하 검): 김경숙은 피의자가 '승마로 들어온 학생이 어떻게 지내는지 한번 챙겨보라'고 해서 최순실에게 연락했고, 피의자가 한번 만나보고 싶다고 해서 피의자와 최순실이 만난 것이라고 하는데 어떤가요.

최 전 총장(이하 최): 저는 김경숙 학장에게 승마학생 챙겨보라고 한 적은 없는 것 같습니다.

(중략)

검: 피의자는 2015년 9월 최순실을 만나고 10월에 공관에서 최순실과 저녁식사를 한 사실이 있지요.

최: 그런 사실은 없습니다. 저는 그 부분은 기억이 나지 않습니다.

검: 최순실을 초대해서 공관에서 저녁을 먹은 사실이 알려지면 최순실과 가까운 관계가 드러날 것을 염려해 기억이 나지 않는다고 하는 것 아닌가요.

최: 아닙니다. 그 부분은 기억이 나지 않습니다.

(중략)

검: 2016년 4월 최순실이 학교에 찾아왔을 때 정유라 학사 관리에 대해 부탁받은 사실이 있나요.

최: 그런 사실 없습니다. 최순실이 제게 무엇을 부탁한 사실이 없습니다.

검: A씨는 최순실이 피의자의 제자 번호를 알려주며 "이 분이 유라 학사관리에 도움을 줄 것이니 모르는 것이 있으면 멘토 언니에게 물어보라"고 한 사실이 있다는데, 이 제자가 정유라의 전반적인 학사관리를 해주기로 한 것 아닌가요

최: 최순실이 학교생활에 대해 의논할 사람이 있으면 좋겠다고 해서 연락이 오면 도와주라고 한 것이지 전반적인 학사관리를 해주라고 한 것은 아닙니다.

'비선실세' 최순실씨

◇"'망할 새끼'는 '망아지 새끼'의 오타로 생각된다"

최순실이 최 전 총장과 친분을 쌓는 동안 정유라의 학점은 수직 상승했다. 2016년 1학기에 2.27점, 여름학기엔 3.30점을 받았다. 출입국기록에 따르면 1학기 개강부터 여름계절 학기까지 정유라가 국내에 머무른 시간은 한 달 정도밖에 되지 않았다. 학점 상승은 교수들의 '뒷바라지'가 있었기에 가능했다.

교수들은 수강신청 때부터 정유라를 챙겼다. 김 전 학장은 수강신청 기간에 이원준 교수에게 전화해 "정유라 학생이 교수님 강의를 수강하면 어때요"라고 말했다. 이원준 교수는 특검에서 "김경숙 학장은 은근히 정유라의 학점관리를 해달라는 투로 부탁했다. 그후로도 제게 '정유라 같이 운동 열심히 하는 특기자 애들을 체육학과에서 안 챙기면 누가 챙겨'라고 여러 번 말했다"고 진술했다. 1학기 중반쯤엔 최 전 총장의 직속 제자가 정유라의 멘토로 붙어 학사관리를 도왔다.

정유라의 학사비리 가운데 대표적인 사례가 이른바 '망할 새끼' 리포트다. 정유라는 이경옥 교수의 '코칭론' 수업에서 "해도 해도 않되는 망할 새끼들에게 쓰는 수법. 왠만하면 비추함" 등 비속어와 오타가 뒤섞인 수준 이하의 리포트를 제출했다. 이경옥 교수는 이런 리포트를 받고도 정유라에게 C+ 학점을 줬다. 이경옥 교수는 나중에 검찰에 제출한 진술서에서 "D나 F를 주면 이 학생은 교육의 기회를 잃게 되고 평생 마음의 상처가 될 수 있다"고 했다. 그러면서 "문제 된 '망할 새끼'는 '망아지 새끼'의 오타로 생각된다"며 해명했다.

'컬러플래닝과 디자인' 수업을 맡았던 강사 유모씨는 2015년 연말쯤 이인성 교수로부터 "정유연이라는 학생이 네 수업 들어간다"는 통보와 함께 '학점은 B 정도 주라'는 지시를 받았다고 특검에서 진술했다. 유씨는 강의실에서 정유라의 출석조차 부르지 않았고, 이 일로 학교에 정유라가 공짜로 학점을 챙긴다는 대자보가 붙기도 했다. 유씨는 양심의 가책을 느끼면서도 정유라에게 F 대신 C학점을 줬다.

이인성 교수는 2016년 여름학기 때 정유라를 수강생으로 받아 학점을 조작했다. 이때 이인성 교수는 '글로벌융합문화체험 및 디자인 연구'를 강의했는데, 수강생들은 중국에서 열린 '한중 패션 문화 컬렉션' 패션쇼에 참가해 평가를 받아야 했다. 정유라는 현지까지 오긴 했지만 패션쇼에 나타나지 않았다. 이인성 교수는 "정유라가 패닉 상태다. 갑자기 주저앉았다"며 패션쇼를 진행시켰다. 이후 이인성 교수는 강사 유씨를 시켜 정유라의 보고서와 파워포인트 평가 자료를 위조하고 학점을 부여했다.

류철균 교수는 시험장에 오지도 않은 정유라의 시험지를 만들어냈다. 류 교수는 4월쯤 조교 김모씨에게 전화해 "정유라라는 학생이 있는데 체육학과 요청이 있다. 체육특기생이니까 무조건 패스시키라"고 지시했다. 이후 교육부 감사를 받게 되자 류 교수는 김씨에게 "정유라에게 성적을 준 근거가 없으니 채워 넣어야겠다"고 했다. 지시에 따라 김씨는 일부 문항만 정답을 적고 나머지는 오답을 적거나 비우는 식으로 정유라의 가짜 시험지를 만들어냈다.

그렇다면 이대는 이런 특혜의 대가로 무엇을 받았을까? 여기엔 박 전 대통령도 등장한다. 최순실은 입학부터 학사관리까지 정유라를 적극적으로 도운 김 전 학장의 남편 김천제 건국대 축산식품공학과 교수를 국가과학기술자문회의 위원으로 위촉되게 했다. 박근혜정부 청와대의 정호성 전 비서관과 조신 전 미래전략수석의 진술을 종합하면 박 전 대통령이 직접 "대통령 직속 위원회 중 김 교수가 역량을 발휘할 곳을 알아보라"고 지시했다. 또 김 전 학장은 김 전 차관의 지시로 교육부에서 6000만원짜리 연구용역을 수주하기도 했다. 최순실은 김 전 학장으로부터 후배 교수 2명을 추천받아 그 중 1명을 K스포츠재단 이사 자리에 앉히기도 했다. 최순실은 "굉장히 맑다"고 덕담할 정도로 김 전 학장에게 상당한 호의를 보였다고 한다.

김경숙 전 이화여대 체육대학장/ 사진=홍봉진 기자

◇"당신들 보호하려고 이러는 거다"

정유라의 이대 입시·학사비리는 교육부 감사부터 특검 수사, 재판까지 수차례 다뤄졌다. 그러나 비리가 드러난 이후의 상황은 별로 알려지지 않았다. 사건이 터진 뒤 교수들은 제 살길 찾기에 급급했다. 그들은 자신이 저지른 비리를 제자인 조교들에게 덮어씌웠다.

이인성 교수는 조교 유씨에게 "나는 정유라를 몰랐고 너를 통해 알게 된 것으로 해달라"며 수차례 거짓말을 요구했다. 또 받지도 않은 과제를 받은 것처럼 꾸며내기 위해 정유라의 매니저 역할을 한 설모씨와 말을 맞추라고 지시했다. 그리곤 특검 조사에서 "유씨가 자기가 만들어 넣겠다고 해서 그렇게 하라고 한 것일 뿐이다" "유씨가 자기가 설씨를 만나러 가겠다고 했다"며 발뺌했다. 그는 조서 말미에 자필로 "이 일로 저희 제자가 잘못되거나 하는 걸 원하지 않았다"고 적었다. 유씨는 2017년에 이대 겸임교수 직에서 해촉됐다.

한편 이인성 교수는 최 전 총장 등 윗선은 필사적으로 보호하려는 듯한 태도를 보였다. 유씨의 진술에 따르면 교육부 감사를 앞두고 유씨가 누가 정유라 학점 조작을 지시했느냐고 묻자 이인성 교수는 "일 커지면 안 돼"라며 몸을 부르르 떨었다. 특검팀은 이인성 교수가 최 전 총장에게 정유라의 수강 상황을 직접 보고한 모바일 메시지를 제시하고 최 전 총장이 지시한 일 아니냐고 추궁했다. 이인성 교수는 "저도 왜 보냈는지 모르겠다"며 부인했다.

류 교수는 교육부 감사 때까지만해도 사태의 심각성을 인식하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 조교 김씨는 2016년 11월말 작성한 일기에 "(류 교수가) 처음에는 '걸리지 않으면 되지 뭐' 라고 말하면서 다그닥(정유라를 가리킨다)의 시험지를 나보고 쓰라고 지시했다. 교육부 감사가 들어왔을 때 모든 건 자신이 책임질 테니 무조건 부인하라고 말했다"고 적었다.

그러나 검찰 수사가 시작되자 류 교수는 태도를 바꿨다. 류 교수는 "당신들 보호하려고 이러는 거다"라며 조교들에게 거짓말을 강요했다. 당시 김씨는 일기에 "(류 교수가) 나를 공범으로 만들고 있다. 내가 답안지를 만들었고, 지금까지 모른다고 했기 때문에 업무방해로 고소될 수 있다고 말했다. 특검 이야기까지 나오니 나에게 덮어씌우려고 하시나 보다"라며 두려움에 떨었다. 그러면서 "나는 검사장 출신 친구도 없고 비싼 변호사도 못 구한다. 무슨 일이 벌어질지 무서워서 집중도 안 된다"고도 썼다. 

김씨는 특검 조사에서도 "교수님이 법조계 인맥을 자랑하면서 자신은 절대 처벌받지 않을 거라고 했는데 걱정된다"고 말했다. 류 교수는 "정유라에게 특혜를 준 적이 없다"고 발뺌하다 조교들이 사실을 모두 털어놨다는 걸 알고서야 범행을 자백했다.

이대 입시·학사비리 사건은 국정농단 사건 가운데 가장 먼저 대법원에서 확정 판결을 받았다. 최순실은 징역 3년, 최 전 총장은 징역 2년에 처해졌다. 정유라의 입시 때부터 비리에 관여한 김 전 학장과 남궁곤 전 입학처장은 각각 징역 2년과 징역 1년6월을 확정받았다. 이원준 교수는 징역 10월에 집행유예 2년, 이인성·류철균 교수는 징역 1년에 집행유예 2년을 확정받았다. 이경옥 교수는 벌금 800만원을 선고받았다. 비뚤어진 모정에서 시작된 명문 사립의 비극이다.

(다음 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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