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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동주의 PPL] 변협 반칙에 말도 못하는 대법원

[the L] 대법원규칙 위반하며 대법관 후보자 '공개 천거' 반복하는 변협… 대법원은 위반 알면서도 '모른 척'

편집자주People Politics Law…'국민'이 원하는 건 좋은 '정치'와 바른 '법'일 겁니다. 정치권·법조계에 'PPL'처럼 스며들 이야기를 전합니다.

김명수 대법원장이 18일 서울 서초구 대법원에서 열린 김소영 대법관 후임 후보자 추천을 위한 대법관후보추천위원회 회의에 앞서 참석자들과 대화를 나누고 있다. /사진=뉴스1

대한변호사협회가 대법원 규칙을 정면으로 위반해 대법관 후보를 ‘공개 천거(薦擧)’하고 있다. 그럼에도 대법원은 계속되는 변협의 규칙 위반을 사실상 방치하고 있고 있다. 개인 또는 단체가 의도를 갖고 대법관 선발에 영향을 미치는 행위를 막는 규정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고 있다는 지적이다.

5일 법조계에 따르면 김명수 대법원장은 지난 2일 문재인 대통령에게 임기만료로 퇴임 예정인 김소영 대법관 후임으로 김상환 서울중앙지법 민사제1수석부장판사(52·20기)를 임명제청했다.

앞서 대법관후보추천위원회(이하 후보추천위)는 대법관 후보자 심사에 동의한 법관 16명, 변호사 2명, 교수 1명 등 19명을 대상으로 심사를 거쳐 김 후보자를 포함해 김주영 법무법인 한누리 변호사(53·사법연수원 18기), 문형배 부산고법 부장판사(52·18기) 등 3명으로 압축한 바 있다.

그런데 3명의 압축 후보 중 김주영 변호사는 변협에서 지난 8월 10일 공개적으로 추천한 바 있다. 변협은 당시 김주영 변호사 외에도 성낙송 사법연수원장 그리고 판사출신 이선희 성균관대 로스쿨 교수를 추천한다고 보도자료를 통해 밝혔다.

◇대법원, 변협의 규칙위반 눈 감아

변협의 이런 '공개 천거'는 대법원 규칙 위반이다. 대법원규칙 제2793호인 후보추천위 규칙 제6조엔 대법관 제청대상 후보자 추천(위원회가 대법원장에게 3배수 이상의 후보자를 추천하는 과정)을 위한 ‘천거'(일반 국민 혹은 기관 등이 다수의 후보군을 위원회에 추천하는 과정)는 ‘비공개’로 하도록 돼 있다. 제8조는 ‘비공개 천거’ 규정을 위반하면 공개 천거된 피천거인은 위원회 심사대상에서 제외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대법관후보추천위원회 규칙 제8조. 천거인이 의도적으로 피천거인을 공개천거하는 등, 천거절차를 위반해 영향을 끼치려 하는 경우 피천거인을 심사대상에서 제외할 수 있도록 규정하고 있다.


8월 2일 대법원 홈페이지에 게재된 김소영 대법관 후임 제청대상자 선정을 위한 천거 공고. 개인ㆍ법인 또는 단체는 누구라도 대법관 제청대상자로 적합하다고 생각하는 사람을 대법원장에게 천거할 수 있지만, '비공개서면'을 통해야 하고 명시적으로 '공개 천거'에 대해선 심사대상 제외의 '불이익'이 있음을 알리고 있다. 하지만 실제 심사과정에서 변협이 공개 천거한 이들은 '불이익'을 받지 않았다.

지난해 5월 이전까진 대법원규칙에 따라 공개 천거된 '피천거인'에 대해선 후보추천위 심사대상에서 제외하거나 제외하지 않는 경우엔 '중복추천' 등 제외하지 않는 사유를 밝혀왔다. 2015년 변협이 민일영 전 대법관 후임 후보자로 강재현·김선수 변호사(현 대법관)를 '공개' 천거했을 때가 대표적이다. 후보추천위는 강 변호사를 심사대상에서 제외하면서 ‘변협의 공개 천거'가 그 이유임을 명확히 밝혔다. 

다만 김선수 변호사에 대해선 변협 외에 별도의 중복 천거가 있었다고 설명하며 심사에 포함했다. 대법원에 따르면 '공개 천거 배제규정'을 악용하기 위해 어떤 기관이 악의를 가지고 '배제' 목적으로 '공개 천거'를 할 수도 있기 때문에 중복 천거된 경우엔 후보추천위 논의를 통해 배제하지 않을 수 있다. 기본적으로 '공개 천거'가 피천거인에게 불이익으로 작용한다는 뜻이다.

변협, 대법관 선발에 영향력 행사 한 것처럼 '자화자찬'

그러나 변협은 2년여 뒤인 지난해 5월 이상훈 전 대법관 후임 선발 과정에서 다시 공개 천거를 감행했다. 대법원이 일반 국민과 기관 등을 대상으로 적절한 후보자를 추천해달라는 ‘천거’ 공고를 내자 2년 전 공개 천거했던 김선수·강재현 변호사를 다시 포함하고 한이봉·조재연을 추가해 총 4명을 천거한 뒤 이를 공개했다. 이어진 박병대 전 대법관 후임으로도 김영혜·김형태·윤재윤·황정근 변호사를 공개 천거했다. 

대놓고 대법원규칙을 위반한 셈이다. 그러나 대법원은 2년 전과 달리 변협의 '공개 천거'에 대해 시비를 가리지 않고 모른 척 넘어갔다. 게다가 변협 공개 천거자 8명 가운데 일부가 그대로 후보추천위 심사대상에 올랐을 뿐 아니라 이 중 조재연 변호사는 실제 대법관에 임명되기까지 했다.

결과적으로 외형상 변협이 천거한 인물이 최종적으로 대법관에 임명된 셈이다. 규정대로라면 후보추천위에서 변협 공개 천거 인물에 대한 배제 여부를 의결하거나 논의했어야 했다. 당시 변협 공개 천거에 대해 후보추천위 내부에서 문제제기가 있었지만 심각하게 다뤄지지 않고 넘어간 것으로 전해졌다.

조재연 대법관의 사례에 고무된 변협은 이후 대놓고 대법관 후보자들을 공개 천거하고 있다. 변협은 지난 8월10일 "변협이 추천한 조재연 변호사가 2017년 7월 대법관으로 임명되고, 2018년 8월에는 김선수 변호사, 노정희 법원도서관장이 대법관으로 임명되었다"며 자화자찬했다. 

대법관 임명 절차

◇대법원규칙 어긴 임명 절차, 대법관 권위에 흠집 

후보추천위에 참여한 경험이 있는 한 법조인은 "추천위에서 논의할 땐 변협이 공개 천거했다고 해서 유리하게 작용하진 않는다"면서도 "변협 집행부가 치적 홍보용으로 대법관 천거 과정을 이용하는 것은 대법관을 마치 변협에서 배출하거나 영향을 미쳤던 것으로 일반 국민이 오해할 수 있다는 점에서 문제"라고 지적했다. 

조재연 대법관의 사례 이후 변협이 순수 변호사 뿐 아니라 현직 판사들을 천거하는 점도 주목된다. 전통적으로 변협은 전·현직 판사 출신이 대법관에 임명되는 '법원 순혈주의'를 비판하며 '순수 재야 변호사'를 선발해야 한다고 주장해왔다. 그런데 현 변협 집행부는 이례적으로 현직 판사들을 다수 천거하고 있다. 법조계 일각에선 이를 두고 "변협이 '타율'(피천거인 중 대법관 임명비율)을 높이기 위해 정책을 바꾼 것 아니냐"는 지적이 나온다.

대법원이 변협의 반칙을 묵과하는 것은 사법농단 논란 와중에 변협과의 마찰을 회피하기 위한 것이라는 해석이 제기된다. 지난 7월 공개된 사법농단 관련 문건에선 대법관후보추천위를 둘러 싼 변협 전 집행부와 대법원의 갈등이 드러난 바 있다. 변협이 규칙을 위반해도 대법원이 대법관 추천 과정에 개입을 최소화한다는 인식을 주고 논란을 피하기 위해 아예 입을 닫고 있다는 분석이다. 

그러나 대법관 선발이란 중대사를 놓고 특정 단체의 규칙 위반을 묵인하는 것이 과연 대법원의 권위를 높이는 길인지 다시 한번 생각해 볼 일이다.

유동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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