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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문재인 대통령, 박근혜 전 대통령 / 사진=머니투데이 DB |
현행 상법은 1주당 1개의 의결권만 가지도록 명문으로 규정하고 있다. 그러나 최근 여당이 이 규정을 바꾸는 방안을 추진하고 나섰다. 이른바 '차등의결권제'로, 경영권 보호 등을 위해 특정 주식에 대해선 여러 개의 의결권을 행사할 수 있도록 하겠다는 것이다. 이에 대해 법조계는 지분 매각 또는 상속 과정에서 복잡한 문제가 생길 수 있다며 우려의 목소리를 내고 있다.
16일 법조계와 정치권에 따르면 최운열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최근 비상장 벤처기업이 총 주주의 동의를 얻어 1주당 2~10개의 의결권을 행사할 수 있는 주식을 발행할 수 있도록 하는 내용의 '벤처기업 육성에 관한 특별조치법'(벤처기업육성법) 개정안을 발의했다.
벤처기업의 창업주들이 지배력 상실을 우려해 IPO(기업공개)에 소극적으로 나서는 문제를 고려해 창업주의 경영권이 안정될 수 있도록 하겠다는 것이다. 정부와 여당은 조속히 차등의결권제를 도입하겠다는 방침이다. 최근 김태년 민주당 정책위원장은 차등의결권제에 대해 "벤처기업에 성장 사다리를 제공해 창업을 활성화하는 제도"라며 "벤처기업이 양질의 일자리를 창출할 수 있고 벤처자본도 활성화돼 자본시장 활성화에 도움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미국의 경우 경영자가 보유한 주식은 최고 100개의 의결권을 행사할 수 있다. 구글, 링크드인, 페이스북 등 미국 IT(정보기술) 대기업들이 1주당 10개의 의결권을 행사할 수 있는 주식을 발행한 바 있다.
여당이 차등의결권제 적용대상을 '비상장 벤처기업'으로 제한하고 있지만 일단 제도가 도입되면 결국은 재계 전반으로 확대적용될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박근혜정부의 대표적 규제완화 법안인 '기업활력제고특별법', 이른바 '원샷법'이 중견기업 뿐 아니라 대기업들도 활용할 수 있도록 바뀐 것처럼, 차등의결권 제도도 벤처기업에만 국한되지 않고 궁극적으론 대기업에도 적용될 것이라는 지적이다.
한 대형로펌에서 인수합병(M&A) 등을 담당하는 A변호사는 "창업주가 지배력 상실을 걱정하지 않고 적극적으로 자본조달에 나설 수 있게 하면 IPO(기업공개)도 활성화되고 투자자들도 회사의 성장 과실을 공유할수 있게 된다는 점에서 긍정적"이라고 말했다. 다만 "일반 투자자라고 해서 의결권에 무관심하다고 단정할 수 없다. 기업들이 자본조달 창구로 쓰는 RCPS(상환전환우선주)도 우선주이지만 의결권이 붙어 있는 경우가 많다"며 "의결권이 상대적으로 적은 주식에 얼마나 많은 투자자들이 관심을 가질지 의문이다. 정부·여당이 기대하는 효과가 나타날 지는 지켜봐야 할 것"이라고 했다.
또 다른 대형로펌의 B변호사는 "현재 상법 틀 내에서도 무의결권 주식 뿐 아니라 이사 선임 등 특정 안건에 대한 의결권만 제한한 주식 등 다양한 종류의 주식을 발행할 수 있는 길이 있다"며 "차등의결권 제도를 도입하지 않더라도 창업주와 기타 주주 사이의 균형을 해치지 않는 방법은 많다. 외국에서 제도를 운영한다고 해서 너무 쉽게 새 제도를 도입하려 한다"고 지적했다.
또 "벤처기업도 나중에는 구글과 같은 초거대 기업으로 커질 수도 있다"며 "이 경우 차등의결권 효력을 얼마나 인정할지, 지분 매각이나 상속 등의 경우에도 효력을 인정해야 할지 등 복잡한 문제가 생길 수 있다. 세계 최초로 차등의결권제를 도입한 영국이 차등의결권 제도를 폐지한 이유"라고 말했다.
한편 한 상법 전문 변호사는 "정권 초기 '경제민주화'를 화두로 꺼냈다가 어느새 슬그머니 '경제활성화' 카드를 꺼내는 모습이 박근혜정부 때와 흡사하다"고 지적했다. 박근혜정부는 과거 다중대표소송제 및 집중투표제 도입 등 소액주주의 권리를 강화하는 '경제민주화' 정책을 추진하다 성과 없이 덮은 바 있다.
그러다 박 전 대통령의 임기 후반인 2016년 초에 통과된 법안이 원샷법이다. 일본의 산업경쟁력강화법을 본따 만든 이 법은 당초 공급과잉 업종의 중견기업들이 사업재편에 활용할 수 있도록 세제혜택 등을 부여한다는 차원에서 제정됐지만 중견기업 뿐 아니라 LG화학, 한화케미칼, 현대제철 등 대기업들도 사업재편에 활용한 바 있다. 이 때문에 "과거 문어발식 확장경영을 한 재벌의 뒷수습을 도와주기 위해 정부가 나선 것"이라는 등 비판이 나오기도 했다.
문재인정부는 지난해 5월 출범 직후 경제민주화를 국정과제로 내세우며 여당과 함께 다중대표소송제 도입, 집중투표제 의무화와 같은 소액주주 권리강화를 골자로 한 상법 개정을 추진하겠다고 공언한 바 있다. 2016년 더불어민주당 뿐 아니라 국민의당, 정의당 등에 속한 122명의 의원들이 공동발의한 개정안을 통과시키겠다는 약속이었다. 이 법안의 주요 내용은 박근혜정부 법무부가 입법예고했다가 좌초된 법안과 대동소이하다. 그런데 이 개정안은 발의된지 2년3개월, 문재인정부 출범 후 1년5개월이 지났음에도 여전히 국회 상임위원회에 발에 묶여 있다.
지난해 하반기만 해도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제1소위원회에는 회의 안건으로 경제민주화 관련 상법 개정안이 꾸준히 매번 상정됐다. 그러나 올해 들어서는 지난 2월 이후 8개월간 단 한 번도 상정되지 않았다. 국회의 한 관계자는 "법사위 제1소위의 안건 상정은 법사위 여야 간사의 합의가 있어야만 한다"며 "경제민주화 관련 상법이 최근 단 한 건도 올라오지 않았다는 것은 여당의 관심이 경제민주화에서 떠났는 것은 말해주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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