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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정상' 인듯 '정상' 아닌 헌법재판소

[the L 레터] '고무줄 임기' 헌재소장…최고덕목인 '독립성' 훼손 우려

유남석 헌법재판소장이 11일 오전 서울 종로구 헌법재판소에서 열린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의 헌법재판소에 대한 국정감사에 출석해 인사말하고 있다./ 사진=홍봉진 기자

헌법재판소가 다시 9인 체제로 정상화됐다. 18일 김기영·이종석·이영진 헌법재판관의 공식 취임과 함께다. 이진성 전 헌재소장과 김이수·김창종·안창호·강일원 전 재판관의 퇴임으로 4인 체제가 된지 약 한달만이다. 국민 기본권 수호의 '마지막 보루'인 헌법재판소가 뒤늦게라도 정상화돼 다행이다.

그런데 아직 해결되지 못한 문제가 있다. 헌법재판소장의 임기 문제다. 헌법과 헌법재판소법을 보면 헌법재판관의 임기는 6년으로 규정돼 있지만 헌법재판소장의 임기는 정해진 바가 없다. 소장으로 지명된 재판관이 재판관 임기가 끝날 때까지만 소장 직을 수행하고 물러난다는 '해석'이 있을 뿐이었다. 헌재는 지금도 이 해석대로 운영되고 있다.

이 해석은 위험하다. 헌법재판소의 독립성을 해칠 수 있다. 지금 해석대로라면 지명권자인 대통령이 어느 재판관을 헌법재판소장으로 찍느냐에 따라 재판소장 임기가 고무줄처럼 늘었다 줄었다 할 수 있다. 대통령이 마음만 먹으면 헌법재판소장 인선을 여러 번 하는 것도 가능하다. 문재인 대통령은 벌써 헌재소장 지명권을 3번이나 행사했다. 대통령의 제왕적 권한을 더욱 강화하는 구조다.

더구나 헌법재판소장은 국무총리, 국회의장, 대법원장과 더불어 4부 요인으로 꼽히는 자리다. 잠재적 헌법재판소장 후보자인 헌법재판관들은 임명권자를 의식하지 않을 수 없다. 

우리나라 최고 사법판단기관은 대법원이다. 헌법재판은 국민의 생명과 권리를 보호하는 마지막 수단으로, 가장 중요한 사법판단 기능이지만 우리 헌법은 이를 대법원이 아닌 헌법재판소에 맡겼다. 그 배경에는 사법부의 '어두운 과거'가 있다.

1980년대 군사정권은 시민들을 간첩으로 몰아세우고 수의를 입혀 법정으로 보냈다. 사법부는 사정당국이 불법구금과 고문으로 얻어낸 억지 자백과 조작된 증거를 근거로 유죄 판결을 선고했다. 그러다 1987년 박종철 고문치사 사건이 발생했고, 이는 6월 항쟁의 불씨가 됐다. 6월 항쟁은 제9차 개헌으로 이어졌다. 지금 우리의 헌법은 이 제9차 개헌의 결과물이다. 

군사정권을 거치면서 국민들은 판사들이 권력에 굴복할 뿐 아니라 스스로 권력을 좇기도 한다는 것을 알게 됐다. 그 과정에서 국민의 생명과 권리가 희생될 수도 있다는 것도 확인했다. 현행 헌법에는 이에 대한 경계심이 깔려있다. 

헌법은 권력을 입법·사법·행정으로 분리하고 판사들에게 헌법과 법률, 양심에 따라 재판할 의무를 부여했지만 그것만으로는 충분치 않다고 봤다. 그래서 헌법재판만큼은 사법부가 아닌 헌법재판소라는 독립기관에 맡겼다. 헌법재판소장의 임기가 정해지지 않는다면 이 헌법 정신이 훼손될 위험이 크다.

헌법재판은 우리 사회에 공존하는 여러 가치 중 어떤 것을 우선할 것인지 결정하는 것이다. 한 마디로 정치재판이다. 그 결과는 국민 생활에 직접 영향을 끼친다. 이 재판을 이끌어나가는 헌법재판관들이 권력의 유혹에 노출된다면 우선해야 할 가치들이 우선하지 못하고, 지켜져야 할 가치들이 지켜지지 않을 수 있다.

헌재소장 임기 문제를 해결하려면 법을 바꿔야 한다. 법을 바꿀 권한은 국회에 있다. 그러나 국회를 보면 당분간 문제가 해결되긴 쉽지 않을 것 같다. 지난 11일 헌재 국정감사에서 한 의원은 헌재 소장 임기 문제를 거론하면서 "헌법 개정을 안 해도 지금 법 체계에서 할 수 있는 부분은 연구하고 노력할 필요가 있다"고 헌재에 주문했다. 법이 바뀌지 않는데 헌재가 연구하고 노력한들 뭘 할 수 있을까? 그런 요구를 하기 전에 국회가 스스로 할 일부터 해야 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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