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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억 경매' 자기 그림 파괴한 뱅크시, 손괴죄일까?

[the L] [나단경 변호사의 법률사용설명서]

편집자주외부 기고는 머니투데이 'the L'의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기고문은 원작자의 취지를 최대한 살리기 위해 가급적 원문 그대로 게재함을 알려드립니다.

뱅크시 웹사이트 동영상 캡처


안녕하세요. 나보다 당신을 생각하는 나단경변호사의 법률사용설명서입니다. 얼마 전 영국 런던의 소도비 경매장에서 거리의 예술가로 알려진 뱅크시의 대표작인 '풍선과 소녀'가 경매에 나와 우리 돈 약 15억원에 낙찰되는 순간 그림이 세로로 파쇄되기 시작해 그림의 절반이 파쇄된 일이 있었습니다. 다음날 해당 작품의 화가인 뱅크시는 SNS(소셜네트워크서비스)에 몇 년 전 그림이 경매로 나갈 것을 대비해 액자 안에 몰래 파쇄기를 설치했다고 밝히면서 "파괴하려는 충동은 곧 창조의 충동" 이라는 피카소의 말을 덧붙였습니다. 뱅크시는 지난 수십 년간 대중 앞에 이름과 얼굴을 드러내지 않은 수수께끼 같은 인물로 거리에 유머와 현실 비판이 담긴 그라피티를 그려놓고 사라지는 것으로 유명해졌습니다.

 

오늘은 다른 사람의 건물에 그림을 그리는 경우, 다른 사람의 물건을 파괴하거나 훼손하면 해당될 수 있는 손괴죄와 관련 쟁점에 대해 알아보고자 합니다.

 

우리 법원은 해고노동자가 복직을 요구하는 집회를 개최하던 중 래커 스프레이를 이용하여 회사 건물 외벽에 낙서를 한 사안에서 건물의 효용을 해한 것으로 보아 손괴죄를 인정한 바 있습니다(대법원 2007. 6. 28 선고 2007도2590).

 

재물손괴죄(형법 제366조)는 △타인의 재물을 △손괴 또는 은닉하거나 기타의 방법으로 △그 효용을 해하는 경우에 성립합니다. 여기에서 재물의 효용을 해한다는 것의 의미는 사실상으로나 감정상으로 그 재물을 본래의 사용목적에 제공할 수 없게 하는 상태로 만드는 것을 말합니다. 또한 일시적이나마 그 물건을 이용할 수 없는 상태로 만드는 것도 손괴에 포함될 수 있습니다.

 

법원은 건물 벽에 낙서를 하거나 오물을 투척하는 행위가 그 건물의 효용을 해하는 것인지 여부를 ‘당해 건조물의 용도와 기능, 그 행위가 건조물의 채광·통풍·조망 등에 미치는 영향과 건조물의 미관을 해치는 정도, 건조물 이용자들이 느끼는 불쾌감이나 저항감, 원상회복의 난이도와 거기에 드는 비용, 그 행위의 목적과 시간적 계속성, 행위 당시의 상황 등 제반 사정을 종합하여 사회통념에 따라 판단’한다고 판시하고 있습니다.

 

뱅크시의 그라피티는 관광명소가 되기도 했고 건물주들이 그가 거리에 남긴 벽화들을 고가에 파는 일이 오히려 늘었다고 합니다. 위의 법원의 판단 기준에 따를 때 보통 건물 외벽에 낙서하는 행위는 손괴죄에 해당한다고 보더라도, 뱅크시의 그라피티가 반드시 건물의 효용을 해한다고 볼 수는 없기 때문에 손괴죄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주장해볼 여지가 있습니다. 손괴죄가 아니라 오히려 서로 자신의 건물에 그림 한 점 그려주기를 모두들 기대하고 있을 것입니다.

 

또한 뉴욕타임스는 이번 소도비 경매장 해프닝에 대해 파쇄 장치가 내장된 액자가 경매 전문가가 알아차릴 정도로 두꺼웠고, 작품 크기가 상대적으로 작음에도 연단이 아니라 벽에 붙어 전시됐다는 점을 들며 소도비 측이 파쇄기 설치 사실을 미리 알고 있었을 가능성도 있음을 지적했습니다.

 

이번에 만일 뱅크시가 △ 다른 사람이 소유하고 있는 본인이 그린 그림을 △ 원격조종장치로 파쇄기를 작동시켜 파쇄해 △ 그림의 효용을 해한 것이라면 손괴죄에 해당합니다. (한편 △ 본인 소유의 물건인데 △ 다른 사람이 가지고 있고 다른 사람의 권리의 목적이 된 물건을 △ 손괴한 것이라면 형법 제232조의 권리행사방해죄에 해당합니다.) 그러나 해당 그림의 소유자나 소도비 측에서 파쇄기 설치를 미리 알고 있었고 작품의 ‘자기파쇄’를 예상한 것이었다거나 미필적이나마 연출된 것이라면 그림의 효용을 해한 것이라고 볼 수 없으며 이러한 죄들에는 해당하지 않을 것입니다.

 

뱅크시는 건물 외벽에 그림을 그리는 행위들이 불법임을 알면서도 스스로를 아트 테러리스트라 칭하며 허가받지 않은 ‘손괴’를 예술의 형태로 표현하고 소신을 내비쳐 왔습니다. 또한 본인의 그림이 상업적으로 사고 팔리는 것에도 거부감을 보여 왔습니다. 그런데 이번 소도비 경매장 그림 파쇄사건 이후 낙찰자는 파쇄된 뱅크시 그림을 그대로 구입하기로 했다고 밝혔습니다. 뱅크시의 이런 소신에도 불구하고 작품의 가치는 오히려 더 올라갈 것으로 예상되고 있으니 참 아이러니한 일입니다.



[나단경 변호사는 임대차, 이혼, 사기 등 누구나 겪게 되는 일상 속의 사건들을 주로 맡습니다. 억울함과 부당함을 조금이라도 덜어드리는 것이 변호사의 의무라고 생각합니다. ​나만큼 당신을 생각하는 '나단경 법률사무소'를 운영 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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