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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사님들 채팅방 '갑분싸'된 사연

[the L][서초동살롱] '사법개혁의 첨병' 전국법관대표회의, 속살 들여다보니

지난달 10일 오전 경기도 고양시 사법연수원에서 열린 전국법관대표회의 3차 임시회의./ 사진=뉴스1

전국법관대표회의(법관회의). 이름 그대로 전국 법원 대표들의 모임입니다. 양승태 사법부를 둘러싼 사법행정권 남용 사건을 공론화하는 데 큰 역할을 했습니다. 그러면서 법원 내 입지도 넓어졌습니다. 최근에는 대법원에 법원행정처 폐지를 공개 요구하기도 했죠. 

서초동 밖에서 보면 법관회의가 김명수 대법원장과 힘을 합쳐 '사법개혁'을 주도하고 있는 것처럼 보일 수 있습니다. 하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법관회의의 사정이 그렇게 단순하지만은 않습니다. 얼마 전 법관회의 내부에서 있었던 불미스러운 일 하나를 전해드리겠습니다.

지난 9월 김 대법원장은 사법행정권 남용 의혹의 진원지로 지목된 법원행정처를 폐지하겠다고 발표했습니다. 이 폐지 작업을 추진하기 위해 외부 법률전문가 4명, 판사 3명으로 별도의 추진단을 꾸리겠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법관회의에 추진단에 참여할 판사 3명을 추천해달라고 했습니다. 법관회의는 이 요청대로 3명의 명단을 전달했습니다. 

김 대법원장은 이 명단을 보고 다른 판사를 추가로 추천 해달라고 다시 요청했습니다. 법관회의의 인사 추천을 사실상 거절한 것이죠. 법관회의가 추천한 판사들이 너무 강성이지 않느냐는 내부 비판을 의식했던 것으로 보입니다.

이후 법관회의 채팅방에서 김 대법원장의 요청에 어떻게 대응할 것인지를 두고 토론이 벌어졌다고 합니다. 일부 대표법관들은 '법관회의를 무시한 것 아니냐' '대법원장 요청을 왜 들어줘야 하느냐'며 격앙된 반응을 보였다고 합니다.

이때 모 법원의 대표인 C판사가 채팅 내용 일부를 캡처한 사진을 이 채팅방에 그대로 업로드했습니다. 흔히 말하는 '배달사고'가 일어난 셈이죠. C판사는 단순 실수였다고 해명했지만 채팅방 분위기는 순식간에 싸해졌습니다. 대법원장에 대해 분개하는 이 분위기를 누군가에게 알리려 한 것은 아닌지 의심하기 충분한 상황이었습니다. 이날 법관회의의 채팅방 토론은 여기서 흐지부지 마무리됐다고 합니다. 사법개혁을 위해 단단히 뭉쳐야 할 법관회의가 벌써부터 분열 조짐을 보이는 것인지 걱정할 만하죠.

대표법관들의 참여 열의도 점점 떨어지는 듯합니다. 전국법관회의는 경기도 일산에 있는 사법연수원에서 회의를 하는데, 보통 오전 10시에 시작해 그날 밤 늦게 끝납니다. 이날 회의에 참석하려면 하루 일정을 아예 비워놔야 하는 것이죠. 대표법관들도 각자 맡은 재판이 있기 때문에, 법관회의에 참석하려면 며칠 전부터 일을 몰아서 해놔야 한다고 합니다. 

민주적 절차를 중요시하다 보니 회의도 매우 느리게 진행된다고 하는데요. 심지어 회의를 쉬었다 할지 말지까지 투표로 결정한다고 합니다. 회의를 몇 시간씩 하다보면 지칠 수밖에 없죠. 한 대표법관은 참여하는 것 자체가 고역이라고 토로하기도 했습니다.

회의 내용도 재판제도 개선보다 판사들 '밥그릇 나누기'에 치우쳐져 있다는 비판을 받고 있습니다. 그동안 법관회의가 밝힌 내용을 요약하면 '일선 판사들이 원하는 곳에 최대한 배치될 수 있도록 제도를 바꾸자'는 정도입니다.

대표적인 예가 향판 제도를 부활시키려 한 것입니다. 판사들은 전국 순환 근무제 때문에 일정 기간마다 근무지를 바꿔야 합니다. 판사들 상당수가 서울·경기권에서 생활하고 있고, 집에서 편히 오갈 수 있는 법원으로 발령받기를 원하죠. 근무강도가 높은 몇몇 근무지를 제외하면 서울에서 가까울수록 선호도가 높고, 멀수록 선호도가 낮습니다. 하지만 서울에서 먼 지방도 판사가 필요하기는 마찬가지입니다. 누군가는 가야하는 거죠. 

향판 제도를 부활시키면 이런 문제를 가장 쉽게 해소할 수 있습니다. 지방에 연고가 있어 오래 있어도 그리 불편하지 않을 판사들을 보내 장기간 근무시키면 되니까요. 이렇게 하면 판사들은 먼 지방 근무를 최대한 회피할 수 있게 됩니다. 법관회의는 '판사들에게 순환 근무를 시키는 나라는 거의 없다' '지역 사정에 맞는 재판을 할 수 있다'는 명분을 내세우지만 결국 이해관계 문제라는 것이 법조계의 시각입니다. 

지난 9월 법관회의가 논의했던 지방법원 합의부장 순환제 역시 같은 비판을 받은 바 있습니다. 경력 높은 부장판사가 계속 합의부 재판장을 맡는 것은 불공평하니 일정 기간 합의부 재판장 근무를 채운 판사는 빼고 인사를 하자는 것입니다. 이 역시 판사들의 경력과 연관된 문제일 뿐입니다.

판사들이 모여 인사 문제를 논하는 게 잘못이라는 뜻은 아닙니다. 문제는 이런 논의에 재판의 당사자인 '국민'이 빠져있다는 겁니다. 판사들이 제도 개선을 이야기할 때, 특히 인사제도 개선을 요구할 때 '법관 독립을 위해 필요하다'는 말을 자주 하곤 합니다. 법관 독립이 중요한 가치인 건 맞지만, 정작 그 목적인 '국민'이 잊혀져 있다면 그게 어떤 의미가 있을까요? 법관회의 논의 중심에 '국민'이 있길 바란다면 기대한다면 지나친 기대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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