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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판사가 물었다…"너희 아빠, 유죄야? 무죄야?"

[the L] [이상배의 이슈 인사이트] 사법불신은 '사법농단' 아닌 '불량재판'의 문제…'사법신뢰' 회복 위해선 판사 늘려야


# 한 남자가 속도 위반으로 법정에 불려 나왔다. 판사가 물었다. "그때 차에 또 누가 타고 있었습니까?" "제 아내와 두 아이가 타고 있었습니다." 판사는 방청석에 있던 그의 가족을 앞으로 불러냈다. 그리곤 여섯살쯤 돼 보이는 남자의 아들에게 법대 위로 올라오라고 했다.

소년을 곁에 세우고 마이크를 갖다댄 뒤 판사가 물었다. "네 아빠에 대해서 얘기하는 거야. 유죄와 무죄 중 넌 뭐라고 생각하니?" 소년이 답했다. "유죄요." 폭소가 터졌다.

소년과 악수를 나눈 판사는 아이를 내려보내고 말했다. "당신은 훌륭한 가족을 뒀습니다. 특히 정직한 아이를 뒀구요. 당신에게 속도위반 기록을 남기지 않겠습니다. 앞으론 주의하세요. 행운을 빕니다." 남자와 가족은 판사에게 "정말 감사드린다"며 웃는 얼굴로 법정을 떠났다.

미국 로드아일랜드주 프로비던스 지방법원에서 있었던 일이다. 판사의 이름은 프랭크 카프리오(Frank Caprio). 올해로 82세인 이 노(老)판사는 자비롭고 관대한 판결로 이름이 높다.

이런 일도 있었다. 한 여성이 주차 범칙금을 미납해 법정에 섰다. 카프리오 판사가 왜 그랬냐고 묻자 여성은 울음을 터트렸다. "사실 제 아들이 최근 살해당했어요. 너무 힘들었는데, 아들이 남긴 빚 때문에 내 수표까지 모두 정지됐습니다. 그래서 범칙금을 내고 싶어도 돈이 한푼도 없어요."

사연을 들은 판사는 여성을 위로한 뒤 "그래도 범칙금 중 일부는 오늘 납부하고 가야 한다"며 "지금 얼마를 낼 수 있느냐"고 물었다. 여성은 눈물을 훔치며 5달러(약 5000원)가 있다고 했다. 판사는 한숨을 내쉰 뒤 "그냥 가도 된다"며 모든 범칙금을 없애줬다.

물론 이는 예외적인 경우다. 카프리오 판사도 대부분 사건에선 범칙금을 다소 줄여주는 선에 그친다. 범칙금을 완전히 없애주는 경우는 흔치 않다.

카프리오 판사의 재판은 '캇 인 프로비던스'(Caught in Providence·프로비던스에서 잡히다)란 제목의 유튜브 방송으로 전세계적인 사랑을 받고 있다. 방송으로 녹화될 뿐 모든 상황은 쇼가 아닌 실제 재판이다. 카프리오 판사 본인도 "나는 연예인이 아니라 판사로서 재판을 할 뿐"이라고 수시로 강조한다.

그의 재판이 사랑받는 건 단순히 관대한 판결을 내리기 때문만은 아니다. 그는 피고인 한명 한명의 사연을 충분히 들어준다. 피고인들은 재판을 통해 처벌을 받지만, 동시에 치유도 받는다. 카프리오 판사의 재판을 받은 이들이 억울함을 느끼지 않는 이유다.

대한민국 사법부의 신뢰와 권위가 땅에 떨어졌다. 현직 대법원장이 탄 차량을 향한 사상 초유의 화염병 테러는 그 방증이다. '사법농단' 의혹은 하나의 이유일 뿐이다. 사법부가 신뢰를 잃은 건 하루 이틀 일이 아니다. 2015년 OECD(경제협력개발기구) 조사 결과, 우리나라의 사법 신뢰도는 42개국 중 39위로 최하위권이었다. 조사 대상 가운데 우리보다 사법 신뢰도가 낮은 나라는 콜롬비아, 칠레, 우크라이나 뿐이었다.

국민들의 사법불신은 각자의 재판 경험을 통해 형성된다. 머니투데이 기자들이 서울중앙지법 단독·소액재판 법정에 직접 들어가봤다. "묻는 말에나 답하라"며 윽박지르는 판사, "됐다. 그만 하라"며 일방적으로 말을 자르는 판사들이 수두룩했다. 사건 기록도 읽지 않고 재판에 들어오는 판사, 재판 중에 조는 판사도 있었다. 이런 판사한테서 받아든 판결에 누가 승복하겠나?

판사 개인만 탓할 일은 아니다. 사건은 많고 판사는 적다는 게 문제다. 서울중앙지법 민사단독 판사 한명에게 떨어지는 사건이 1년에 5000건이 넘는다. 과로 때문에 쓰러지는 판사도 있다. 판사 개인의 희생만 요구할 순 없는 문제다.

해법은 판사를 늘리는 것 뿐이다. 물론 화해·조정·중재 등 대체분쟁조정제도(ADR)의 활성화도 대안 중 하나다. 그러나 국민들이 재판 대신 다른 수단을 정서적으로 받아들일 때까진 시간이 필요하다. 

그러나 법원 일각에선 여전히 판사 증원을 반기지 않는다. 추가로 뽑는 판사들의 수준을 담보할 수 없다고 한다. 판사가 늘어 재판이 빨라지면 그만큼 사건도 더 늘어날 것이라는 논리까지 댄다. 

그렇다고 판사 부족에 따른 불량재판과 사법불신의 문제를 그대로 방치할 건가? 결단이 필요한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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