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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 끝나지 않은 '가습기 살균제'의 비극

[the L] [서초동살롱] 가습기살균제 유해성 드러난지 7년…이제와서 공소시효 지나서 안된다?

27일 오전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검 앞에서 가습기 살균제 피해자들과 전현희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기자회견을 열고 가습기 살균제 사건 수사를 촉구하고 있다. 이들은 PHMG·PGH 원료를 쓴 옥시 등의 기업에 대한 수사와 처벌이 이뤄졌지만 CMIT·MIT 원료를 쓴 SK케미칼(현 SK디스커버리)과 애경산업에 대한 수사가 이뤄지지 않고 있다며 이날 검찰에 고발장을 제출했다. 2018.11.27/뉴스1 <저작권자 © 뉴스1코리아,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살균 99.9%…아이에게도 안심"

'옥시싹싹 가습기당번'에 적혀있던 광고 문구입니다. '가습기살균제 참사' 다들 기억하실겁니다. 가습기살균제를 사용했다가 사망한 것으로 드러난 이들만 1300명이 넘습니다. 숨겨진 피해자들까지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지금까지도 고통받고 있는지 가늠조차 안됩니다.

2년 전인 2016년, 검찰은 가습기살균제를 제조하고 판매한 혐의를 받은 옥시레킷벤키저(옥시)의 전 대표이사, 롯데마트 전 대표 등 기업 관계자들을 기소했고, 이들은 지난 1월 대법원에서 실형 확정 선고을 받았습니다.

가습기살균제 판매 허가를 내준 정부 역시 사태에 책임을 통감, 지난해 8월 문재인 대통령은 가습기살균제 피해자들과의 면담에서 공식 사과와 함께 피해구제에 나설 것을 약속했는데요. 국회는 지난해 가습기살균제 피해구제를 위한 특별법을 통과시키기고, 가습기살균제를 만들어 판 기업들에게는 피해자 구제를 위해 1200억여원을 납부하도록 명령하기도 했습니다.

◇가습기살균제 피해자 "SK케이칼·애경산업도 수사하라" 

그런데 가습기살균제사건 피해자들이 지난달 27일 SK케이칼과 애경산업 전·현직 대표이사 14명에 대해 업무상과실·중과실치사상 혐의로 서울중앙지검에 고발장을 제출했습니다. 

피해자들은 기자회견을 열고 "2년 전 고발 후 검찰이 전혀 움직이지 않았고 이는 해당 기업들에 면죄부가 되고 말았다"며 "검찰과 공정거래위원회 등은 CMIT/MIT 제품의 인체 유해성이 확인되지 않았다는 핑계를 내놓았지만 여러 연구와 자료들이 CMIT/MIT도 참사의 원인이라 가리키고 있다"고 지적하며 추가 증거를 제출했습니다. 가습기살균제에 사용된 CMIT(클로로메틸이소티아졸리논)·MIT(메틸이소티아졸리논)가 인체에 유해하다는 학계 역학조사 결과를 모아 제출한 것인데요.

가습기살균제에 대해 검찰이 대대적인 수사에 돌입한 것은 이미 2년 전, 그리고 정부가 피해 구제를 약속한지 1년이 지난 지금, 피해자들이 검찰에 재수사를 촉구하고 있습니다. 이게 어떻게 된 일일까요?

사실 피해자들은 이미 2년 전에도 SK케미칼과 애경산업 등을 검찰에 고발했습니다. 하지만 당시 검찰은 증거불충분을 이유로 기소 중지 결정을 내렸습니다. 옥시 등이 가습기살균제 원료로 사용한 PHMG(폴리헥사메틸렌구아디닌)·PGH(염화에톡시에틸구아니딘)의 유해성은 인정했지만, SK케미칼 등이 사용한 CMIT/MIT에 대해서는 인체 유해성이 입증되지 않았다는 이유에서 였습니다.

결국 재판에 넘겨진 것은 PHMG를 사용한 기업들 뿐이었는데요. 이에 대한 지적이 이어지자 공정거래위원회가 표시광고법 위반 혐의로 SK케이칼과 애경산업을 고발했지만, 검찰은 공소시효가 지났다고 판단해 지난 4월 불기소 처분을 내렸습니다. 2011년 9월 가습기메이트 등 가습기살균제 제품 판매를 중단했고, 표시광고법의 공소시효는 5년이라서 2016년 9월로 공소시효가 만료했다는 업체의 주장을 받아들인 겁니다. 

◇7년 전부터 논란…이제와 공소시효 만료로 수사 못한다?

이번에 피해자들은 이들을 업무상과실·중과실치사상 혐의로 고발했지만, 실제 수사가 가능할지는 미지수입니다. 역시 공소시효 문제 때문인데요. 업무상 과실치사상죄의 공소시효는 7년입니다. 2011년 9월 가습기살균제 판매가 중단됐으니 올 9월로 이미 공소시효가 지났다는 겁니다.

피해자 측은 "제품이 마지막으로 판매된 2011년이 아니라 제품 때문에 피해를 입은 것을 인지한 날을 기준으로 공소시효를 계산해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주영글 변호사는 "대법원에서 업무상과실치상사죄는 피해가 발생한 시점도 범죄 혐의가 계속된 것으로 보고, 그때부터 공소시효가 진행된다는 판례를 낸 바 있다"며 "2015년 사망한 피해자도 있고, 지금도 피해는 계속되고 있는 점을 고려하면 최소 2022년까지 공소시효를 유지할 수 있다"고 설명했습니다.

아무리 법대로 한다지만, 정부와 검찰이 이제와서 공소시효를 따지는 것은 무책임해보이기까지 합니다.

SK케이칼이 최초의 가습기살균제 '가습기 메이트'를 만든 것이 지금부터 24년 전인 1994년 일입니다. 원인을 알 수 없는 폐질환 환자가 속출하기 시작해 학계에 보고된 것이 2006년이었고, 그 원인으로 가습기살균제가 지목돼 사회적 논란이 시작된 것이 2011년입니다. 무려 7년 전이죠. 당시 보건복지부와 질병관리본부는 원인미상 폐손상 원인이 가습기살균제로 추정된다는 중간조사 결과를 발표했고, 그해 11월 역학조사와 동물실험 결과 가습기살균제의 위해성이 확인됐다며 제품을 수거했습니다. 이때가 검찰이 공소시효의 시작으로 따지기 시작한 시점입니다.

피해자들이 모여 민·형사 소송을 처음 제기한 게 2012년 일입니다. 그해 1월 피해자와 가족들은 국가와 기업들을 상대로 손해배상 청구 소송을 냈고, 8월에는 제조·판매사 10곳을 과실치사 혐의로 검찰에 고발했습니다. 검찰은 2013년 2월 피해조사 결과가 나와야 조사를 할 수 있다며 기소 중지 결정을 내렸습니다. 법원은 2015년 "국가가 가습기살균제를 유해물질로 지정하지 않은 것에 과실이 있다고 보기 어렵다"며 국가 배상 책임이 없다고 판결했습니다.

그리고 검찰이 수사를 시작하겠다며 대대적으로 나선 것이 2016년입니다. 2011년 가습기살균제가 시장에서 수거되고 나서도 5년이 지나고서야 수사를 벌인 것인데, 이조차 벌써 2년 전 얘기입니다.

그런데 지금와서 공소시효가 지나서 수사를 할 수 없다면 피해자들은 이를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요? 아직 검찰이 결정을 내린 것은 아닙니다. 검찰 관계자는 공소시효 문제에 대해 "고소장을 받은 만큼 사건을 살펴보고 있다"며 "아직 결정된 것은 없다"고 했습니다.

◇"입증 책임, 피해자에게만"

수사도 처벌도 제대로 되지 않고 있는데, 피해자 구제는 제대로 되고 있을까요?

한국환경산업기술원 가습기살균제 종합지원센터가 공개한 자료에 따르면 지난 26일 기준 정부에 접수된 가습기살균제 피해자수는 6215명, 그 중 사망자는 1360명에 달합니다. 이 숫자는 시간이 갈수록 늘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중 정부가 공식 피해자로 인정한 정부 지원 대상자는 468명에 불과합니다. 그나마 정부 지원 대상에는 해당하지 않지만 가해 기업들이 낸 돈으로 피해구제를 하는 특별구제 대상자로 지난달 22일 871명이 추가 선정되면서 1067명으로 지원 대상자가 늘었는데요. 

그동안 피해자라고 접수된 이들은 6000여명이 넘는데 실제 지원을 받은 이들은 1500여명에 불과합니다. 입증 문제 때문입니다. 정부는 폐 섬유화와 천식, 태아 피해 등 일부 질병에 대해서만 가습기살균제 피해로 인정하고 있는데요. 피해자들은 이미 수년이 지난 지금에 와서 과거 가습기살균제를 사용한 것을 입증하는 동시에, 내 몸의 질병과 가습기살균제 사이 연관성이 있는지를 또 입증해야하는 상황인 겁니다.

가습기살균제참사전국네트워크(가습기넷) 측 장동엽 참여연대 선임간사는 "이전보다는 피해 인정 범위나 사례들이 늘기는 했다"면서도 "분명 피해를 입고 사망했거나 힘든 상황에서 치료를 받고 있는데 가습기살균제 때문인지 명확하지 않다며 거절되는 사례가 많다"고 지적했습니다.

이어 "가습기살균제가 폐 이외에도 다른 신체 부위에 영향을 미칠 수 있고, 실제 그렇다는 보고들이 있는데도 입증 책임을 피해자들에게만 주고 있다"며 "반대로 기업들이 가습기살균제로 인한 피해로 보기 어렵다는 것을 증명하는 방식이 돼야 하지 않느냐"고 반문했습니다.

◇30년 뒤 검찰에게 '가습기 살균제'는?

2년 전인 2016년 10월11일 신현우 전 옥시 대표 등의 1심 재판에 가습기살균제 사건의 피해자 임성준군(13)이 산소통에 이어진 튜브를 코에 연결한 채 증인으로 출석했습니다. 피해자 임군을 본 기업 대표들은 "당신들 때문에 언제까지 이렇게 살아야 되는지 모를 아이의 얼굴을 좀 보라"며 흐느끼는 성준군 엄마의 말에 고개도 들지 못했습니다. 

누군가에게 가습기살균제는 한때는 큰 이익을 가져다준, 유해성이 밝혀진 지금도 입 다물고 있으면 지나가고 잊혀질 일일지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가족과 건강을 잃은 피해자들에게 가습기살균제는 지금도 현재 진행형인 평생을 짊어지고 나가야 할 일입니다. 입 다물고 있는다고 해결될 일이 아니라는 겁니다. 

가습기살균제 피해자들이 검찰에 찾아와 수사 촉구 기자회견을 열던 날, 문무일 검찰총장은 '형제복지원 사건' 피해자들에게 사과하며 눈물을 흘렸습니다. 1975년부터 1987년까지 형제복지원에서는 부랑자를 선도한다는 명목으로 무고한 사람들을 불법으로 강금했고, 학대와 폭행, 암매장 등 인권유린이 자행됐습니다. 집계된 사망자만 513명에 이릅니다. 

문 총장은 30년 전 검찰 지휘부가 형제복지원에 대한 수사를 은폐·축소하려 한 것에 대해 "그때 검찰이 진상을 명확히 규명했다면 형제복지원 전체의 인권침해 사실이 밝혀지고 인권침해에 대한 적절한 후속조치도 이뤄졌을 것"이라며 "인권이 유린되는 사태가 다시는 발생하지 않도록 검찰 본연의 역할을 다하겠다"고 약속했는데요.

30년 뒤 가습기살균제 참사는 검찰에게 어떤 사건이 될까요? 그 때 또 다른 검찰총장이 피해자들을 찾아 똑같은 사과를 되풀이하지는 않을까요? 그나마도 사과를 받을 피해자들이 살아있다면 말입니다. 지금같은 상황이라면 문 총장의 사과를 그대로 가습기살균제 피해자들에게 한다고 해도 어색하지 않아 보입니다. "그때 검찰이 진상을 명확히 규명했다면 가습기살균제 피해 사실이 밝혀지고 적절한 후속조치도 이뤄졌을 것"이라며 "이같은 사태가 다시는 발생하지 않도록 검찰 본연의 역할을 다하겠다"고 말입니다. 

미래를 바꿀 수 있는건 지금의 이 시간 뿐일 겁니다. 가해기업에 책임을 묻고 피해자들을 최대한 구제할 수 있는 방안을 하루빨리 찾길 바랄 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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