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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L 리포트

"대통령님, 헌재가 '4대4'로 탄핵 기각한답니다"

[the L] [비선실록(秘線實錄) 외전 ②] "대통령께서 만나고 싶어 하십니다"…"5대 3이 아니라 4대 4로 '탄핵 기각'될 거예요"

국회의 탄핵소추로 권한이 정지된 박근혜 전 대통령이 2017년 1월1일 청와대 상춘재에서 기자들과 간담회를 하고 있다. / 사진=청와대

2017년 1월1일 일요일 오전 10시30분. "딩동". 휴일을 즐기고 있던 청와대 출입기자들의 휴대폰으로 난데없는 문자메시지가 날아들었다. 발신자는 청와대 기자실인 춘추관. "한광옥 대통령 비서실장께서 오후 12시30분 춘추관 2층 식당에서 출입기자들과 신년맞이 떡국 오찬을 함께 할 예정입니다."

신정을 맞아 본가 또는 처가에 있던 기자들이 서둘러 귀경길에 올랐다. 박근혜 전 대통령에 대한 헌법재판소의 탄핵 심판을 앞둔 시점. 혹시라도 한 실장의 입을 통해 박근혜 당시 대통령의 '하야 선언' 등 중대 발표가 나올지도 모르는 터였다.

◇"대통령께서 만나고 싶어 하십니다"

오후 12시30분. 한 실장이 춘추관 2층 식당에 들어섰다. 폭탄선언은 없었다. 한 실장은 기자들에게 "그냥 떡국 한끼 모시고 싶었다"고 했다. 신년 덕담이 오갔다. 떡국 오찬은 그렇게 조용히 끝나는듯 싶었다.

오후 12시50분. 주위가 시끄러워지기 시작했다. 청와대 참모들이 휴대폰을 들고 테이블 사이를 빠르게 오갔다. 무언가 귓속말을 들은 배성례 청와대 홍보수석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대통령님께서 지금 기자님들을 만나고 싶어하십니다. 오후 1시30분 청와대 경내 상춘재입니다. 기자회견은 아니고 다과를 곁들인 간담회라고 생각하시면 됩니다."

박 전 대통령의 기습 간담회였다. 식사는 그것으로 끝이었다. 기자들은 곧장 1층 기자실로 뛰어내려가 기사를 송고하기 시작했다. "朴대통령, 오늘 13시30분 靑 기자단 신년 간담회". 구랍 9일 국회의 탄핵소추안 가결로 권한행사가 정지된 지 23일 만에 처음으로 박 전 대통령이 언론 앞에 모습을 드러내는 순간이었다.

오후 1시30분 상춘재 앞. 기자 약 30명과 참모들이 기다리는 가운데 박 전 대통령이 상춘재 뒤 오솔길을 통해 걸어왔다. 결백을 주장하듯 흰옷 차림이었다.

간담회는 40여분간 진행됐다. 박 전 대통령은 시종일관 억울함을 호소했다. "보도라든가 소문, 얘기, 어디 방송 나오는 것을 보면 너무나 많은 왜곡, 오보, 거기에다 허위가 그냥 남발되고 (중략) 공모라든가 어떤 누구를 봐주기 위해서 한 일은 손톱만큼도 없었다는 것, 그건 아주 분명하게 말씀드릴 수 있어요."

이날 박 전 대통령은 당시 제기된 의혹들에 대해 조목조목 반박했다. 옛 삼성물산과 제일모직의 합병을 도우라고 국민연금에 지시했다는 의혹에 대해 그는 "완전히 엮은 것"이라며 "그 누구를 봐줄 생각, 이것은 제 머릿속에 아예 없었다"고 주장했다. '문화계 블랙리스트' 의혹에 대해서도 박 전 대통령은 "전혀 모르는 일"이라고 했다.

박근혜 전 대통령/ 사진=홍봉진 기자

◇"5대 3이 아니라 4대 4로 '탄핵 기각'될 거예요"

당시 박 전 대통령은 탄핵 기각을 확신하고 있었다. 이즈음 박 전 대통령은 헌법재판소가 탄핵심판 청구를 기각해 직무에 복귀할 것에 대비해 참모들로부터 현안에 대한 보고를 받고 있었다. 청와대 민정수석실과 정무수석실, 홍보수석실에선 "헌재가 탄핵 기각 결정을 내릴 것"이라는 보고가 수시로 박 전 대통령에게 전달됐다. 한 청와대 참모는 "박근혜 대통령의 표정이 점점 좋아지고 있다"고 했다.

이런 상황은 2017년 3월10일 헌재의 탄핵 선고가 나오기 직전까지 이어졌다. 당시 헌법재판관 8명 가운데 4명만 '탄핵 인용'에 찬성하고 나머지 4명은 반대해 결국 탄핵이 기각될 것이라는 게 청와대 내부의 분석이었다. 심지어 탄핵에 찬성하고 반대하는 헌법재판관들의 실명까지 거론됐다.

그즈음 한 청와대 참모는 출입기자들에게 "우리 정보에 따르면 얼마 전까지 마음을 못 정하던 헌법재판관 한명이 '기각'으로 입장을 굳혔다"며 "5대 3이 아니라 4대 4로 '탄핵 기각' 결정이 나올 것"이라고 귀뜸하기도 했다. 탄핵 청구가 인용되려면 헌법재판관 6명 이상의 찬성이 있어야 한다.

당시 청와대 홍보수석실은 SNS(소셜네트워크서비스) 등을 대상으로 한 빅데이터 분석 결과, 여론이 '탄핵 인용'에서 '탄핵 기각' 쪽으로 바뀌고 있다고 진단했다. '탄핵 기각'이란 키워드로 검색된 정보량이 급증하고 있다는 이유였다. 일부 실무진은 '탄핵이 기각되면 어쩌죠'와 같은 우려를 담은 내용이 늘어난 데 따른 것일 수 있다며 이의를 제기했지만 묵살됐다.

'탄핵 기각'을 철석같이 믿고 있던 박 전 대통령에게 2017년 3월10일 헌재의 탄핵 인용 선고는 충격이 아닐 수 없었다. 그것도 헌법재판관 8명 전원의 만장일치 결정이었다. 헌재의 탄핵 인용 선고 직후 황교안 당시 대통령 권한대행에게 전화를 건 박 전 대통령은 "도대체 어떻게 이런 일이 있을 수 있느냐"며 흥분을 감추지 못했다고 한다. 희망과 현실을 혼동한 참모들의 그릇된 보고 탓에 박 전 대통령은 이틀 뒤 마음의 준비도 없이 또 다시 황망하게 청와대 관저를 떠나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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