Q) 남편과 결혼한 지 4년이 좀 넘었고, 두 살짜리 아들의 엄마예요. 다른 엄마 같으면 지금 한참 아이 키우기에 열중해 있을 때인데, 저는 남편 때문에 고민하느라 육아에 집중이 안됩니다. 남편과 이대로 계속 살아야 하는지, 아니면 더 시간이 지나기 전에 이혼하는 게 맞는지 너무나 고민이 되네요. 저랑은 너무 다른 남편의 성격 때문이예요.

남편은 말을 거의 안 하는 사람이예요. 남편은 신혼 때부터 지금까지 저랑 대화를 하는 적이 거의 없어요. 남편은 퇴근해서 집에 오면 TV를 보거나 서재에 틀어박혀 컴퓨터 게임을 하거나 웹서핑을 하면서 시간을 보내요. 주중에는 늦게 퇴근하기 때문에 밥을 같이 먹는 일이 거의 없으니 주말에라도 대화를 해보려고 하는데 남편은 호응이 없어요. 남편은 같은 식탁에 앉아서 밥을 먹는 동안에도 식탁에 스마트폰을 올려놓고 들여다보고 저와 대화다운 대화를 하는 일이 거의 없어요. 제가 이런 남편이 답답해서 얘기를 좀 하자고 하면 남편은 회사 일 때문에 피곤하다고 짜증을 내면서 서재로 들어가 버려요.

남편은 대기업의 연구원인데 일이 많아서 밤늦게 퇴근하고 주말에 출근하는 일이 종종 있는 건 사실이예요. 신혼 초에는 회사 일로 피곤해서 그런가 보다 하고 회사일이 좀 줄어들면 나아질 거라고 이해하려고 했어요. 그런데, 회사 일이 많지 않은 기간에도 남편의 태도는 거의 변하지 않더라고요. 남편의 이런 성격 때문에 저는 남들은 알콩달콩 산다는 신혼이 너무나 외롭고 힘들었어요.

이렇게 살 거라면 내가 왜 결혼을 했나 하는 생각이 너무도 많이 들었지만, 부모님과 주변 어른들이 남자는 아이가 생기면 변한다고 해서 아이가 생기길 기다렸어요. 기다리던 임신을 해서 저는 정말 기뻤는데 남편은 별로 좋아하는 기색이 없이 ‘생겼으니 낳아야지’라고 말하는데 너무 기가 막혔어요. 그래도 아이가 실제로 태어나면 그 때는 달라지겠지 하고 희망을 가졌는데 아이가 태어나도 마찬가지였어요. 집에 있는 시간에도 아이를 안아주거나 놀아주는 일이 거의 없고 여전히 서재에 틀어박혀 혼자 컴퓨터나 스마트폰을 보고 있는 거예요. 제가 식사준비를 하는 동안 아이를 봐달라고 하면 마지못해 방에서 나오기는 하는데 얼굴에는 싫은 기색이 역력하고 아이를 옆에 두고도 역시 TV나 스마트폰을 보고 있는 거예요.

남편은 저와 아이한테만 그러는 게 아니고 자기 부모나 형제들하고도 얘기를 거의 안 하고 친구도 없어요. 결혼식 때 신랑신부 친구들이 나와서 사진을 찍을 때 신랑 친구들이 거의 없어서 제 친구들과 회사 동료들이 신랑 쪽에서 가서 사진을 찍었을 정도예요. 결혼 후 시댁에 가보니 집안 식구들이 같이 모여 얘기를 하는 게 아니라 각자 자기 방에 들어가 있고 말없이 TV만 보더라고요. 신혼여행 후 저희 집에 갔을 때 남편은 저희 부모님께 말없이 인사만 꾸벅 하고 제가 쓰던 방에 들어가버려서 저희 부모님과 저는 정말 황당해한 적도 있었어요.

저희 친정은 정반대로 어린 적부터 친척들과 친구들이 늘 집에 와서 같이 놀고 식사하고, 명절, 생일 같은 집안 행사에는 다들 다른 일 제쳐두고 모이는 분위기예요. 저는 엄마, 언니하고 거의 매일 통화하고 모든 일을 상의하면서 지내왔고요. 이런 제 입장에서 볼 때 남편이 남편 노릇, 아빠 노릇을 안하고 같이 대화하고 상의하려고 하지 않는 게 저한테는 너무나 큰 스트레스예요. 결혼해서 같은 집에 살고는 있지만 남편 없이 아이랑 둘이서만 사는 거랑 별로 다른 게 없어서 너무도 외롭고 힘들어요.

제가 이런 남편이 하도 답답해서 늘 남편에게 ‘대화 좀 하자. 아빠 노릇 좀 해라’고 하는데 남편은 혼자 방에 가서 틀어박혀버리고 아이한테도 관심이 없으니까 저도 자꾸 남편에게 화를 내게 되네요. 얼마 전부터는 제가 화를 내면 남편은 말없이 집을 나가서 연락을 끊어버리고 2-3일 있다가 들어와요. 이런 일이 잦아지니까 저는 도대체 이런 남편과 계속 살아야 하는지 고민이 안될 수가 없네요.

결혼한 지 4년이 되어가는데 남편이 거의 변한 게 없으니 남편은 앞으로도 안 바뀔 것 같네요. 그렇다고 두 살 아이를 두고 있으니 쉽게 이혼할 수도 없고요. 이런 상황에서 제가 어떻게 하는 게 현명한지 조언 부탁드려요. 이럴 거면 도대체 결혼은 왜 한 건지 정말 남편을 이해할 수가 없어요.

A) 정반대의 성격을 가진 남자와 결혼하신 거 같네요. 질문내용으로 볼 때 선생님은 사람들과의 관계를 중시하는 집안에서 자랐고 사교적인 성격으로 사람들 사이에서 소통할 때 행복감을 느끼는 분인 것 같아요. 남편은 반대로 사람들과 같이 지내는 것을 싫어해서 혼자 있는 공간이나 일로 도피하는 성격을 가진 분이예요. 남편이 그렇게 된 데에는 남편의 개인적인 기질과 냉랭한 집안의 분위기가 상호작용을 했을 것이고요.

선생님 남편 같이 사람들 간의 관계를 회피하고 관계가 주는 부담으로부터 도피하려는 사람들이 요즘 젊은이들 중에서 드물지 않게 나타나고 있어요. 이런 사람들의 대표적인 특징 가운데 하나가 가족관계를 포함한 친밀한 인간관계에 매우 서툴고 일정 수준 이상의 애정을 부담스러워한다는 것입니다. 선생님 남편과 같은 배우자 때문에 고민하는 분들과 상담하면서 이런 사람들을 어떻게 설명해야 하는지 찾다가 ‘회피형 인간’이라는 개념을 알게 되었답니다.

회피형 인간은 자기 이외의 대상에 거부감을 느끼고 기피하는 자아유형을 가진 사람을 말하는데 기피하는 대상에 인간관계가 포함되어 있어요. 회피형 인간은 거절당하거나 바보 취급을 받을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으로 타인과 친밀한 관계로 발전하는 데 극도로 겁을 내고 타인이 자기를 어떻게 생각할지 불안해서 속마음을 절대로 말하지 않습니다. 극단적인 회피형 인간은 ‘히키코모리(은둔형 외톨이)’가 되어 일체의 인간관계와 사회활동을 거부하지만, 완화된 유형들은 선생님 남편처럼 일정 정도의 사회활동과 인간관계는 가능하고, 이성교제와 결혼도 한다고 해요.

회피형 배우자는 기본적으로 다른 사람에 대한 공감능력이 보통 사람에 비해서 많이 떨어지기 때문에 상대의 어려움을 이해하지 못하고 냉정하게 자기 일에만 열중하는 경향이 있어요. 그러니 가사나 육아를 귀찮아하고 상대방에게 떠넘기려고 하지요. 애정표현을 하는 일도 드물기 때문에 사랑받고 싶은 마음이 강한 상대에게 충분한 만족감을 줄 수가 없습니다. 선생님처럼 사람들 속에서 자기 존재감을 느끼는 분들의 경우에는 회피형 배우자와의 결혼생활이 정말 어렵지요.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이혼을 결정하기에는 아직 빠르다고 생각해요. 회피형 인간이 결혼생활에 적합지 않은 성격인 건 분명하지만 회피형 인간이 갖는 장점도 있거든요. 회피형 인간은 일단 확립된 습관이나 패턴을 바꾸는 것을 싫어하기 때문에 결혼을 했으면 쉽사리 결혼을 깨지 않는대요. 외도를 하거나 급격한 변화를 일으켜서 결혼 자체를 불안하게 할 위험이 낮은데 결혼생활 유지의 측면에서 큰 장점인 건 맞아요. 그리고 자기 일을 꼼꼼하게 잘 하는 경향이 있기 때문에 육아나 가사의 분담이 일단 일상적인 습관으로 정착하게 되면 그것도 어느 정도 지키게 된다고 하거든요.

남편과의 결혼 후 선생님이 얼마나 힘들었을지 충분히 이해됩니다. 하지만 남편에게 화를 낸다고 상황이 달라지는 건 없고 그럴수록 남편은 더욱 선생님과의 관계에서 도망가려고 할 겁니다. 선생님이 바라는 배우자상에 남편을 맞추려고 하지 마시고 먼저 남편을 있는 그대로 이해하려고 노력해보세요. 회피형 인간 치유 클리닉을 하는 일본의 정신과 의사 ‘오카다 다카시’의 책들(‘마지못해 혼자입니다’, ‘나는 왜 혼자가 편할까?’)을 읽으시면 남편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되실 거예요. 오카다 다카시에 의하면 회피형 인간의 배우자가 같은 회피형 인간이거나, 완전히 반대의 유형이어서 회피형 인간이 느끼는 관계의 부담을 대신 떠맡아준다면 그런 대로 결혼생활을 영위할 수 있게 된다고 하고, 회피형 인간의 성향이 어느 정도 바뀌기도 한다고 하니 희망이 아주 없는 건 아니예요.

어차피 내가 바라는 완벽한 배우자, 백점짜리 배우자는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답니다. 남들은 행복해보이지만 다들 나름의 문제와 고민이 있고, 지금은 좋더라도 언젠가 힘들 때가 찾아오는 것이 인생이예요. 30점, 40점 짜리 배우자라도 없는 것보다는 낫지 않을까요? 회피형 인간을 변화시키는 가장 무난한 방법은 아주 조금씩 이미 벌어진 상황에 익숙해지도록 이끄는 것이라고 하니 아주 천천히 남편을 변화시켜보세요.


[2005년부터 10여년 간 가사소송을 수행하면서 우리 사회의 가족이 급격하게 해체되어가고 있음을 현장에서 실감했습니다. 가족해체가 너무 급작스러운 탓에 삶의 위안과 기쁨이 되어야 할 가족이 반대로 고통을 주는 존재가 되어버린 분들이 너무나 많습니다. 이런 분들을 위해 10여년간의 가사소송 수행에서 깨달은 법률적인 지식과 삶의 지혜를 ‘가정상담소’를 통해서 나누려합니다. 가족 때문에 고통받는 분들에게 위로가 되고 해결책을 찾는 단초가 되었으면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