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호사단체 선거의 계절…화두는 '세대교체'

이찬희 서울지방변호사회장 인터뷰

“머리 염색을 하지 않는 최초의 변협 협회장이 나올 것 같다”

오는 21일(조기투표 18일)로 예정된 대한변호사협회 선거를 두고 변호사업계에선 '세대교체'가 화두다. 단독 출마한 이찬희 변호사는 만 53세다. 당선된다면 60대 중반의 전임 협회장들과는 10여년 차이가 나게 된다.

사실상 찬반 투표로 치러지는 이번 선거를 두고 업계의 빠른 변화를 실감하게 하는 상황이라는 평가가 나온다. 실제로 '새치 염색'조차 하지 않는다는 '50대 초반'의 이 변호사가 변협 협회장이 되는 건 단순히 '집행부 교체'로만 볼 순 없다. 변호사 업계의 세대교체 흐름이 선거결과를 통해 확인되는 '상징적' 사건으로 해석될 수 있다.

◇60대 원로들 거치던 자리…50여년래 최연소 변협 협회장 눈앞

지난 수십 년간 변협 협회장은 60대 이상의 원로급 변호사가 맡아왔다. 김현 협회장은 1956년생으로 만 61세였던 지난 2017년부터 변협 수장이 됐다. 직전 하창우 전 협회장도 1954년생으로 만 61세였던 2015년부터 집행부를 맡았다. 그전 위철환 전 협회장도 마찬가지다. 역대 최연소였다는 그도 1958년생으로 만 55세였다. 위 전 협회장도 당선시에 ‘젊디 젊은 나이’란 평가를 들었다.

이번 선거에 단독 출마한 이찬희 변호사가 당선된다면 만 53세로 14대(1965~1966) 고재호 전 협회장(당선시 만52세)이후 가장 젊은 협회장이 된다.

전국 변호사가 수백 명에 불과하던 1960년대 이전에 만 43세에 1대 협회장 보선으로 당선된 장후영 변호사가 있다. 하지만 9대 보선에 재선돼 중임(重任)될 정도로 변호사가 적었던 시절이다. 최소한 54년만에 가장 젊은 협회장이 나오는 셈이다.

불과 10년 전까지도 변호사단체장은 판·검사 출신의 전관 변호사가 ‘원로’가 되는 시점에 돌아가며 맡는 식이었다. 직선제로 바뀐 2013년 첫 당선자인 위 전 협회장이 전관이 아닌 순수 변호사에다 서울도 아닌 지방(경기) 출신인 점이 화제가 될 정도로 변협은 보수적이고 폐쇄적인 ‘원로원’ 분위기였다. '규정'보다 '관행'이 앞선다는 주장이 먹힐 정도로 법조계는 튀지 않고 권위를 존중하는 걸 '제일의 처세'로 여기는 곳이다.

◇변협, 훈수두는 법조계 '원로원'→직역수호 '사령부'로 변화

유권자의 3분의 1이 투표해야 하는 변협 선거규칙상 당선이 쉽지 않다는 전망도 있다. 하지만 혹여 2차 투표로 가더라도 결국엔 이 변호사가 차기 변협 수장이 될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입후보 예정자였던 중견 원로 변호사들이 출사표를 내지 않고 이 변호사 단독 출마로 정리되는 과정도 업계 변화를 보여주는 증거다. 서초동의 한 개업 변호사는 "2년여 전 서울지방변호사회장 선거에서 이 변호사가 젊은 변호사들의 압도적 지지로 당선되는 것을 목격한 원로 변호사들이 출마를 아예 포기해버렸다"고 평가했다. 로스쿨로 늘어난 청년 변호사들의 입김이 그만큼 커졌음을 원로들도 인정하지 않을 수 없는 상황이다.

1990년대 말부터 로스쿨 도입논의를 시작으로 사법개혁의 큰 흐름에서 사법시험 합격자를 큰 폭으로 증원하면서 변호사 업계도 외부에 의한 변화를 겪게 됐다. 청년 변호사가 급증해 '독과점'이라는 기성 변호사들의 기득권에 금이 가기 시작했다. 급기야 2013년엔 30대 중반의 청년 변호사모임 대표가 서울변호사회 회장에 당선돼 변호사단체 선거판을 흔들었다. 직선제로 바뀌면서 변협 선거도 치열해졌다. 수동적인 '관리자'보다는 적극적인 '활동가'형 협회장이 당선되는 경향이 나타났다.

법조 유사직역군과의 지난한 싸움과 법률시장 개방 등 어려운 현안들도 원로들이 선뜻 나서지 못하는 상황을 만들고 있다. '법조인'이라는 기득권을 향유하기만 한 세대는 변리사·법무사·세무사 단체들과 싸워야 하는 현실을 받아들이기 어려울 수 있다,

직역다툼의 실제 전쟁터라고 할 수 있는 국회에서도 변협은 타 직역단체에 비해 유난히 입법로비에 서툰 것으로 정평이 나 있다. 변호사 출신인 한 의원보좌관은 "협회장이 의원회관에 오면 올 수록 변협에 대한 '안티'만 양산한다는 얘기도 나돌았다"며 "2017년 말 변호사에게 부여되던 세무사 자격증을 폐지하는 개정안이 통과되는 과정만 봐도 협회장이 아무리 의원들을 만나고 다녀도 세무사회와의 표대결에서 도움이 되지 않았던 것을 알 수 있다"고 지적했다.

수십 년간 국회 내 법조인 출신 의원들이 스스로 직역보호를 철저히 해 줬다. 따라서 변협이 직접 나선 건 얼마 안 된다. 변협은 직역수호를 위한 제대로 된 국회 대관활동의 필요성을 최근에서야 절감하고 관련 조직을 정비했다.

◇사법개혁, 변협도 구경꾼 아닌 당사자

현 정부에서의 강한 사법개혁 드라이브도 변협 세대교체의 명분이 될 수 있다. 원로원에 그치치 않고 변협 스스로 자체 개혁을 하면서 능동적으로 법조개혁의 일원으로 역할을 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현 변협 집행부는 공식적으론 사법농단 규탄 성명을 발표했지만, 변협 고위임원 개인 입장은 다를 수 있다. 법대나 연수원 기수로 서로 가깝게 엮여 있어 '온정적'일 수도 있다.

실제 김현 변협 협회장은 지난 달 사법행정권 남용 혐의를 받는 박병대 전 대법관에 대한 구속 전 피의자심문(영장실질심사)을 앞두고 영장을 기각해 달라는 내용의 서울대 법대 76학번 동기 탄원서에 이름을 올려 부적절한 처신이란 지적을 받았다. 지난 2017년 7월엔 사법행정권 남용 책임자로 지목됐던 임종헌 전 법원행정처 차장을 변협 '정책고문'으로 임명했다가 논란이 일자 철회하기도 했다. 법원·검찰을 감시하고 견제해야 할 변협이 사법농단 핵심 혐의자를 고문으로 임명할 정도로 '사법개혁'에 이해가 없고 의지가 보이지 않는단 지적을 받았다.

법조계 일각에선 법원·검찰 개혁 뿐 아니라 로스쿨 도입 외에는 수십 년 간 큰 틀에서 변화가 없었던 '변호사법'도 개정돼야 할 한계점에 이르렀다고 보고 있다. 따라서 다음 변협 집행부가 사법개혁의 구경꾼에 머물지 말고 '변호사법' 개정을 포함해 당사자로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는 지적이다.

왼쪽부터 기호 순으로 박종우(45·사법연수원 33기), 이율(56·25기), 안병희(57·군법 7회) 변호사./사진=서울지방변호사회 선거관리위원회 홈페이지

◇"법조개혁 위한 세대교체는 시대 요구"

변호사업계는 로스쿨 도입과 법률시장 개방으로 최근 혁명적 변화를 거치고 있다. 2010년 1만명을 넘어섰던 변호사수는 불과 5년 뒤 2015년 2만명을 넘을 정도로 급증가세다.

변호사 생존권이 위협받을 정도라는 위기감에 최근 10년래 변협 집행부들은 로스쿨 축소폐지나 사법시험 부활 등을 통해 신규 변호사 감축을 노렸다. 하지만 법조개혁이라는 시대 변화와 국민적 요구에 역행하는 시대착오적 직역 이기주의란 비판만 받았다.

'변호사회원을 위한 이익단체'라는 변협 고유의 본질과 '인권옹호와 법치주의확산'이라는 변협의 공익적 성격이 조화를 이뤄야 하는 상황이다. 다음 협회장이 누가 되더라도 이 과제를 쉽게 풀기를 기대하긴 어렵다. 하지만 적어도 시대적 요구인 법조개혁에 변협이 동참하면서 공익을 놓치진 않아야 한단 기대가 있다.

한편 서울지방변호사회 선거에선 40대 박종우(44세) 변호사와 50대 안병희(56)·이율(55) 변호사가 출마했다. 만약 박 변호사가 당선되고 이찬희 변호사가 그대로 협회장이 되면 변협은 50대, 서울변회는 40대 변호사가 수장을 맡게 된다. 그런데 안병희 변호사나 이율 변호사가 당선되는 경우엔, 이찬희 변호사가 당선되는 것을 전제로 지역회인 서울회 회장이 상위 기구인 변협 협회장보다 나이가 많고 기수가 앞서는 일종의 '나이·기수 역전' 현상이 벌어진다.

법조계에 따르면 이제까지 일부 지방 변호사회 회장이 변협 협회장보다 '선배'인 경우는 있었지만 서울변회 회장이 변협 협회장보다 선배인 경우는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