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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갈등해소의 다른 한 축, 중재 활용도 높이면 경쟁력도 UP"

[the L][인터뷰] 이호원 대한상사중재원 원장

이호원 대한상사중재원 원장 / 사진=홍봉진 기자

사람이 살아가는 곳이라면 항상 갈등이 생긴다. 갈등이 생기는 것 자체는 큰 문제가 아니다. 이미 생긴 갈등을 어떻게 해소하는지가 더 중요하다. 갈등을 해소할 수 있는 방법이 다양할수록 갈등으로 초래되는 비용이 낮아진다. 국가 경쟁력 역시 그만큼 높아지는 것은 물론이다. 사실 인생 만사가 그렇다.

우리나라는 갈등 해소를 국가에 의존하는 성향이 유독 강한 나라로 꼽힌다. 1966년 중재법이 제정된 것을 시작으로 우리나라에서도 중재나 화해, 조정 등 ADR(대체적 갈등해소 방안) 제도가 도입된지가 50년이 넘었음에도 여전히 법원에 의존하는 비중이 절대적으로 높다.

"2017년 기준으로 전국 1심 법원에 새로 접수된 민사 본안 사건의 수만 109만건이 넘습니다. 대한상사중재원에 한 해에 접수되는 상담 건수는 1만여건, 이 중 중재를 통해 최종적으로 해소되는 건수는 400~500건에 불과합니다. 갈등발생을 예방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이미 발생한 갈등을 민간 차원에서 흡수하는 기능이 더 활성화될 필요가 있습니다."

제10대 대한상사중재원 원장으로 지난해 8월 취임한 이호원 원장(66·사법연수원 7기, 사진)은 머니투데이 더엘(the L)과의 인터뷰에서 "모든 갈등을 법원에만 의존해서 해소할 수는 없다. 전문성을 갖춘 3자의 개입을 통해 갈등을 자율적으로 해소할 수 있는 시스템을 활용할 필요가 있다"며 "중재 등 ADR에 대한 인식 제고를 위해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권리의 침탈을 받은 국민이 자력으로 구제에 나서는 대신 국가기관에 의해 구제받을 길을 제도화한 것이 소송, 즉 재판이다. 분쟁해결에 국가가 판단 권한을 가지고 개입한다는 점이 가장 큰 특징이다. 그러나 모든 분쟁을 국가가 해결해줄 수는 없다. 

이 때문에 민간에서 자율적으로 분쟁을 해소할 수 있도록 하되, 그 결론에 법적 효력을 부여한 각종 장치들이 마련됐다. 조정·알선·중재 등 ADR 제도가 대표적이다. 원시적인 방식의 자력구제와, 국가개입 방식의 재판 사이의 중간 영역이다. 법원이나 행정기관에서도 갈등 해소를 위한 중간 장치를 마련하기는 했지만 대한상사중재원의 조정·중재는 순수 민간 차원의 절차라는 점이 차이가 있다. 이 중 중재는 중재판정부의 판단을 따르도록 하는, ADR 중에서도 법적 구속력이 가장 강하다. 중재가 활성화되면 국가기관으로의 사건 집중도 그만큼 완화될 수 있다. 갈등해소가 그만큼 빨라지기 때문이다.

이 원장은 "우리나라에 비해 인구가 2.5배, 경제규모가 3배인 일본은 민사재판이 연간 60만건으로 우리나라(109만여건)에 비해 훨씬 적다"며 "분쟁 자체가 많다는 점이 우리나라의 특징이기도 하지만 분쟁 자체를 인위적으로 억제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이미 발생한 분쟁을 자체적으로 흡수해 국가적 분쟁으로 이어지는 비율을 줄이는 게 관건"이라고 강조했다.

이 원장 스스로가 30년 가까이 법관으로 갈등해소 부문에서 활동한 경험이 있다. 그는 "중재제도의 편의성, 중재판정부의 전문성에 대한 일반의 인식이 매우 낮다는 점이 문제"라고 지적했다. 물론 형사사건 등 중재로 해결하는 것이 바람직하지 않은 분쟁은 애초에 해당사항이 없다. 그러나 민사분쟁 중 상당 부분이 중재로 손쉽게 빨리 해결할 수 있음에도, 중재에 대한 사건 당사자들의 인지도 부족으로 인해 법원에만 쏠리는 것이 아쉽다는 게 이 원장의 얘기다.

대한상사중재원에 등록된 중재인의 수만 1200명에 달한다. 전국 각급 법원에 속한 판사의 수(약 3200명)보다는 적지만 다루는 사건의 수에 비하면 규모가 만만찮다. 이 중재인 풀(Pool)에는 IT(정보기술), 엔터테인먼트, 보험, 건설, 무역 등 각종 업종에서 전문성을 갖춘 이들은 물론 변호사 뿐 아니라 지방법원 부장판사 이상의 법관 경력을 갖춘 법률 전문가들까지 포진해 있다.

중재사건이 접수되면 대한상사중재원이 사건 당사자들에게 중재인 명단을 제시하고, 사건 당사자들이 자신의 사건을 맡아 줄 중재판정부를 직접 고른다. 재판에 비유하자면 원고·피고 등 사건 당사자들이 합의부 재판부 구성원을 직접 고르는 셈이다.

이 원장은 "사건에 따라서는 3인으로 구성되는 중재판정부 전원이 전직 법원장 출신인 경우도 있다. 부장판사 이상 경력을 가진 이들이 중재판정부에 참가하는 사건들도 많이 있다"며 "전문가가 관여하기 때문에 오히려 (재판보다) 업계 실정을 잘 반영한 판정이 나올 수 있다"고 강조했다.

탄력적인 문제 해결이 가능하다는 점도 중재의 상대적 강점으로 꼽힌다. 이 원장은 "100억원 규모의 건설업 사업에서 5억원 규모의 납품과 관련한 분쟁이 있었다. 법원에 맡겼더라면 경우에 따라 본 공사를 할지 말지를 다투는 진검승부가 됐을 것"이라며 "경우에 따라 중재는 갈등의 정도를 줄여 그만큼만 다투게 해 문제의 탄력적 해결을 도모하는 데 도움이 된다"고 했다.

중재결과는 물론 절차의 비밀성이 보장된다는 점도 장점이다. 어떤 갈등은 갈등의 존재 자체가 노출되는 자체로 당사자에게 피해가 생기는 경우가 있다. 연예인과 소속 기획사 사이의 분쟁 등이 대표적이다. 이같은 경우에도 중재는 '공개재판'을 원칙으로 하는 소송에 비해 좋은 대안이 될 수 있다.

중재제도를 활성화하기 위한 제도적·물적 기반은 이미 크게 확충됐다. 2016년 5월 중재로 해결할 수 있는 분쟁의 범위를 종전 '사법상 분쟁'에서 '비재산권상 분쟁'까지 확대하는 등 내용의 중재법 개정안이 통과됐다. 같은 해 12월에는 중재 관련 기반시설의 확충과 전문인력 양성을 위한 '중재산업 진흥 기본계획'을 수립·시행하는 내용의 중재산업진흥법도 제정·공포됐다. 중재산업 진흥 기본계획은 올해부터 시행된다.

이 원장은 "물적설비를 갖추는 것이 가장 쉽고 이미 어느 정도 돼 있다. 중재인단 구성 등 인적 자원도 20~30년전에 비해 크게 발전했다. 현재 중재인이 1200명에 달해 법원 판사진에 못지 않은 중재인 풀을 갖추고 있다"며 "제일 어려운 것이 중재제도에 대한 인식과 평판을 향상시키는 것"이라고 말했다.

대한상사중재원이 주요 기업과 법무연수원을 찾아가 중재제도의 편의성 등에 대한 홍보활동을 적극 펼치는 이유다. 대한상사중재원은 중재제도의 신뢰성·효율성을 제고하기 위해 당사자 의견을 집중적으로 청취하고 신속하게 해결하는 것을 목표로 '국내중재 심리의 표준 모델'을 개발하고 있다.

국내에서의 중재 인프라가 활성화돼야 할 또 다른 이유로는 국제중재의 중요성이 커지고 있는 것과도 관련이 있다. 이 원장은 "국내에서는 중재가 ADR, 즉 대체적 분쟁해결 방안 중 하나이지만 국적을 달리하는 당사자 사이의 분쟁에 대한, 구속력 있는 해법을 내놓을 국제 재판소나 국제 판사가 없다"며 "국제적으로는 중재역량이 우리 기업의 국제 거래를 뒷받침하는 기초자산"이라고 했다. 또 "전 세계적으로도 국제중재를 자국으로 유치하려는 경쟁이 지속되고 있고 

다행히 지난 20여년간 국내 대형로펌에도 중재 전문 변호사들의 인적 구성이 풍부해졌다. 우리 기업의 해외 진출이 활성화되면서 국제 상사분쟁이 그만큼 늘었고 우리 기업이 관련된 중재사건 역시 그만큼 증가한 덕분이다.

서울국제중재센터 이사장이자 무역위원회 위원장인 신희택 서울대 법대 교수(7기)가 일본기업이 스페인 정부를 상대로 낸 투자자국가분쟁(ISD) 의장 중재인으로 활동한 것이 대표적이다. 법무법인 태평양의 김갑유 변호사(17기), 김앤장 법률사무소의 윤병철(16기)·박은영(20기) 변호사 등 국제상업회의소(ICC) 국제중재법원, 세계은행 국제투자분쟁해결센터(ICSID), 런던국제중재법원(LCIA), 싱가포르 국제중재원(SIAC), 홍콩국제중재센터(HKIAC) 등에서 활동한 인사들도 있다.

이 원장은 "IT 기술을 바탕으로 한 화상증인신문 시스템 등 우리나라가 국제중재의 허브로 자리잡기 위한 물적 설비는 다른 나라에 비해 월등히 앞선다. 유엔 산하 국제상거래법위원회(UNCITRAL) 모델의 중재법도 이미 구비하는 등 제도적 기반도 마련됐다"며 "관건은 명망 높은 외국인 중재인이 한국의 중재인으로 활동할 수 있도록 영입하는 것이다. 서울국제중재센터의 신희택 의장과 함께 각국의 유명 중재인을 영입하는 노력을 계속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호원 대한상사중재원 원장 / 사진=홍봉진 기자

◇프로필
1953년 충북 청주 출신인 이호원 대한상사중재원장은 경기고, 서울대 법대를 졸업하고 제17회 사법시험에 합격, 사법연수원을 7기로 수료했다. 1980년 서울지법 동부지원 판사로 임관해 서울고법 부장판사, 제주지법원장, 서울가정법원장 등 28년간 법원 요직을 역임했다.

법관 퇴임 후에도 법무법인 지평지성 대표변호사, 연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등으로 활동하다가 2018년 8월 제10대 대한상사중재원 원장으로 취임했다. 2010년 이후 직접 대한상사중재원 중재인으로 활동한 것을 비롯해 국제거래법학회·상사중재학회 등에서 다양한 논문을 발표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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