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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석 7년 채웠는데 또?" '날벼락' 맞은 판사들

[the L][서초동살롱] '배석 7년' 탈출 꿈꿨는데 또 배석 "솔직히 인간적으로…"


이지혜 디자인기자

직장생활은 인간관계 때문에 힘들다는 말 많이 하죠. 그중에서도 가장 힘든 게 윗사람 모시기라고들 합니다. 판사들도 마찬가지입니다. 검찰처럼 상명하복하는 문화는 아니지만, 합의부에서 배석판사로 근무하면서 부장판사를 '모시는' 일은 정말 쉽지 않다고 하는데요.

지방법원 기준으로 보통 배석 근무 7년을 채우면 합의부에서 단독부로 옮겨줍니다. 배석판사로 일하다 단독부로 가면 눈치 볼 윗사람이 없으니 자유롭고 마음도 편하겠죠. 그래서 배석판사들은 '합의부 탈출'을 꿈꾼다고 합니다. 그런데 이런 꿈을 꾸는 판사들에게 충격을 안길 만한 일이 최근 있었다고 합니다. 재경지법의 A판사의 일입니다.

A판사는 부장판사 승진을 스스로 유예하고 근무하다 얼마 전 배석 7년 근무를 다 채웠다고 합니다. 이제 합의부를 떠나 단독부에서 한결 마음 편하게 근무할 생각을 하고 있었겠죠. 그러나 생각과 달리 A판사는 합의부를 벗어나지 못하고 계속해서 배석판사를 하게 됐다고 합니다. 이에 대해 한 판사는 "A판사가 부장으로 승진할 수 있었는데도 유예했던 건데 이번에 또 배석을 시키는 건 A판사에 대한 배려가 부족한 게 아닌가 싶다"고 했습니다.

육아휴직을 다녀왔던 B판사도 비슷한 상황이 있었습니다. 이 판사도 육아휴직 기간을 빼고 배석 7년 근무를 다 채웠는데 또 배석 자리를 받았다고 합니다. 평소 성격이 온화하다는 얘기를 들었던 B판사도 배석 통보를 받은 날만큼은 평정심이 흔들리는 모습을 보였다고 합니다. 

배석판사들 이야기를 들어보면 출근시간부터 부장판사를 눈치를 볼 일이 한 두 가지가 아닙니다. 점심시간만큼은 잠시 업무에서 벗어나 편한 사람과 맛있는 식사를 즐기고 싶은데, 점심약속도 마음대로 잡기 힘들다고 합니다. 여기다 판결문 작성 등 업무까지 깐깐하게 챙기는 스타일 부장이라면 스트레스가 이만저만이 아니라고 합니다.

여기까지 보면 부장판사들이 모두 '꼰대'인 것처럼 보일 수 있는데요. 부장판사들도 할 말이 없지는 않습니다. 한 부장판사는 "시대가 달라졌다. 옛날같이 하는 부장들은 잘 없다"며 "우리도 눈치 많이 본다"고 말했습니다. 다른 부장판사도 "요새는 업무 시키기도 조심스럽다. 자료 하나 만들어달라는 말 하기도 힘들다"며 "밥 같이 먹자는 말은 잘 꺼내지도 않는다"고 했습니다.

이 정도면 부장-배석 간 세대갈등이 어느 정도인지 가늠이 되죠. 지난해에는 이 세대갈등이 표출돼 서울중앙지법 소속의 한 재판부가 교체되는 일도 있었습니다. 법원 고충처리위원회를 거쳐 배석판사 사무실을 부장판사 사무실 옆에서 다른 층으로 옮기고, 재판부 운영도 잠시 중단했다가 아예 배석판사 2명을 바꿔버린 겁니다. 이후 열린 서울중앙지법 배석판사정례회의에서 "왜 배석판사들만 교체됐냐"며 제대로 조사를 벌여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오기도 했습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세대 간 마찰을 줄이기 위해 아예 제도를 바꾸자는 논의도 나옵니다. 최근 서울중앙지법에서 '대등재판부'를 시작한 것이 대표적입니다. 대등재판부를 도입하면 부장판사급 고참끼리 모인 재판부가 생기고, 고참들이 합의부로 빠지는 만큼 단독 재판부에 빈자리가 생겨 배석판사들이 옮겨갈 수 있게 됩니다.

이런 변화의 흐름 속에서 외로움을 느끼는 이들도 있습니다. 부장으로 승진한 지 얼마 되지 않았거나 부장 승진을 바라보고 있는 연수원 30기 초중반 대의 판사들인데요. 구식 법원 문화 속에서 열심히 부장을 모시다 이제 좀 허리를 펴볼까 했는데, 후배들 눈치를 봐야 하는 분위기가 돼 다시 움츠러들어 들고 있다고 합니다. 이 기수 대의 한 판사는 "우리야말로 낀 세대"라며 쓴웃음을 지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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