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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초동살롱] 법무부는 왜 지금 '상법'을 꺼냈을까

[the L]

박상기 법무부 장관 / 사진=이동훈 기자

정부가 집중투표제, 감사위원 분리선출 등 재벌 지배구조 개선방안을 현재 논의 중인 상법 개정안에서 제외하기로 했다고 한다. 결론부터 말하면 새로 나온 내용은 아니다. 이미 2년전 여야, 당시의 여당 새누리당을 비롯한 4당 원내대표들 간에 합의가 이뤄졌던 사항이 이번에 다시 회자된 것이다.

31일 법무부는 올해 상반기 중 상법 개정안 통과를 목표로 집중투표제, 감사위원 분리선출 등 2가지를 개정안에서 제외하는 방안을 추진하기로 가닥을 잡았다고 밝혔다. 집중투표제와 감사위원 분리선출제는 문재인 대통령이 2017년 5월 대선을 앞두고 내놓은 경제민주화 공약 중 '재벌의 불법 경영승계, 황제경영, 부당특혜 근절' 방안의 핵심조항으로 꼽혀왔다. 그만큼 기업들의 반발이 거셌던 사항이기도 하다.

집중투표제는 '선임될 이사의 숫자만큼 보통주 1주에 의결권을 부여하는 제도'이다. 만약 3명의 이사를 뽑는다면 1주당 3개의 의결권이 주어진다. 다수결로 이사를 선임하는 게 원칙이나, 1주당 여러 개의 의결권을 한 명에게 몰아줄 수도 있도록 한 제도다. 소수주주를 대변하는 인물을 이사회에 진출시킬 수 있는 방법으로 꼽힌다.

감사위원 분리선출제란 감사 역할을 담당할 이사를 선임할 때는 여타 사내·사외 이사와 별도의 선임 절차를 거치도록 하는 제도다. 대주주 및 특수관계자의 의결권을 3%로 제한해 경영감시의 실효성을 높이기 위한 장치로 평가된다.

여기에 전자투표제, 다중대표소송제 등을 더하면 문재인정부의 경제민주화 공약 중 재벌정책의 큰 축이 완성된다. 주주총회장에 직접 출석하지 않아도 전자적 방식으로 주주총회에 의견을 개진할 수 있도록 하는 게 전자투표제의 골자다. 다중대표소송제는 모회사 주주가 불법행위 등으로 자회사·손자회사에 손해를 끼친 임원에게 직접 소송을 제기할 수 있도록 한 제도다.

이상의 4가지 모두는 대주주의 전횡을 방지하고 소수주주의 목소리를 경영에 직접 반영하기 위한 장치라는 점에서 공통점이 있다. 또 논의된 지 오래됐음에도 아직 제대로 국내 법에 반영이 되지 않았거나, 이미 도입돼 있다더라도 그 적용범위가 극히 좁다는 것도 공통점이다. 2013년 박근혜정부가 출범 직후의 국정과제에도 이들 4가지 사항이 포함돼 있었다.

여야 합의에도 불구하고 재계의 거센 반발에 부딪혀 확대도입이 계속 불발돼 왔던 것이다. 그러다가 2017년초 당시 여야가 상대적으로 저항이 약한 부문이라도 일단 도입해야 한다는 차원에서 "집중투표제, 다중대표소송제는 우선 빼자"는 데 합의했던 것이다. 그런 점에서 이번 법무부의 행보는 전형적인 '뒷북'이다. 

법무부의 바람대로 이번에는 상법 개정안이 통과될 수 있을까. 일단은 '올 상반기 중'이라는 시한을 지키기는 어렵다는 지적이 나온다. 4월1일 국회 법안심사제1소위에서는 채무자회생법, 소년법, 형법 등 58개 법안에 대한 법안심사 제1소위원회 회의가 열린다. 이날은 이번 국회 회기의 마지막 법안심사 소위인데 상법 개정안은 의안에 올라가지도 못했다. 현재 페이스대로라면 법무부가 공언한 것처럼 상반기 중 상법 개정안 통과는 어렵다.

더구나 법무부의 이번 행보가, 한진그룹의 '물컵갑질' 사태로 불거진 싸늘한 여론과 정반대로 가고 있다는 점도 눈에 띈다. 이미 조양호 한진그룹 회장은 최근 정기 주주총회 표대결에서 밀려 주력 계열사인 대한항공 사내이사직에서 쫓겨났다. 대주주의 안정적인 경영권을 대체로 너그럽게 인정해왔던 한국에서 매우 이례적인 사례다. 그만큼 사회에 미치는 영향력이 큰 기업에 대한 투명·건전 경영의 필요성이 높아지는 상황에서, 부적절한 시기에 '원칙 없는 타협'을 추구하는 게 아니냐는 비판을 피하기는 어려워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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