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대법원 일제 강제징용 배상 판결의 여파가 만만찮다. 강제징용 피해자와 유족이 일본 전범기업을 상대로 집단소송에 나섰는데 참여 인원이 530명을 웃돌았다. 과거 정부가 파악한 강제징용 피해자만 14만명에 이른다고 하니 추가 소송도 봇물을 이룰 것으로 보인다.
지난해 12월에는 강제징용 피해자와 유족이 우리 정부를 상대로 대규모 집단소송을 제기하기도 했다. 아시아태평양전쟁 희생자 한국유족회 소송단이 지난 2017년 8월과 11월, 지난해 4월 등 세 차례에 걸쳐 한국 정부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한 데 이어 대법원 판결 이후 두 달 만에 원고 1,103명이 1인당 배상금 1억원을 청구하는 네번째 소송을 서울중앙지법에 접수했다. 과거 정부가 사용한 한일청구권 자금을 피해자에게 돌려줘야 한다는 게 이들의 주장이다.
대법원 판결의 여파는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그렇지 않아도 얼어붙어 있는 한일 외교관계가 더욱 경색된 것이다. 대법원 판결 직후 일본은 강제징용 피해자들이 자국 기업에 대한 재산 매각 등 강제 조치에 나서면 관세 인상 등 보복 조치를 취하겠다고 공언했다. 하지만 지난 3월 대전지법이 전범기업인 일본 미쓰비시중공업의 국내 상표권과 특허권을 압류해 일촉즉발 한일 외교가에 파문을 일으켰다.
대법원 판결의 후폭풍을 전혀 예상하지 못한 것은 아니다. 피해자들의 집단소송과 일본의 반발은 어찌 보면 당연한 수순이자 반응이다. 하지만 13년 만에 매듭지은 판결임에도 논란의 여지가 남아있어 뒤끝이 개운치 않다. 대법원이 전원합의체를 열어 내린 결론이 과연 사려 깊은 판결이었는지에 대해서도 여전히 의문이 든다.
강제징용 피해자들이 일본 전범기업으로부터 배상을 받을 수 있는 길이 열렸다는 점은 환영할 만한 일이다. 하지만 대법원이 이번 판결에서 최고법원다운 역량을 보여줬느냐는 평가는 별개의 문제다. 이를 두고 법조계 일각에서는 대법원이 여론과 정권 성향에 맞춰 선동적 판결을 내린 게 아니냐는 비판이 나온다. 또 배상 판결을 내리더라도 집단소송과 외교갈등을 해소할 수 있는 해결방안을 판결문에 담아냈어야 한다는 지적도 있다. 역사의 소용돌이에 내몰렸던 강제징용 피해자와 유족을 배려했다면 이들을 혼란과 소송의 쳇바퀴에서 빠져나올 수 있게 했어야 한다는 얘기다.
이러한 관점에서 지난해 대법원 판결의 소수의견을 언급하지 않을 수 없다. 당시 권순일·조재연 대법관은 한일 청구권협정의 적용 대상에 강제징용 피해자의 손해배상청구권도 포함되므로 소송으로 손해배상을 청구하는 행위는 제한된다는 의견을 제시했다.
그러면서 한국 정부가 피해국민의 소송 제기 여부와 관계없이 정당한 보상이 이뤄지도록 할 책무가 있음을 판결문에 명시했다. '청구권 협정으로 개인청구권을 더 이상 행사할 수 없게 됨으로써 피해를 입은 국민에게 지금이라도 국가는 정당한 보상을 해야 한다'고 밝히면서 '대한민국이 이러한 피해국민에 대하여 지는 책임은 법적 책임이지 이를 단순히 인도적, 시혜적 조치로 볼 수는 없다'고 덧붙였다. 이제라도 정부가 '결자해지'에 나서야 한다는 판단이었다. 비록 두 대법관은 배상 판결에 동의하지 않는 소수의견을 내놓았지만 최고법원의 역할과 정부의 책임을 판결문에 남긴 셈이다.
배상 판결이 내려졌지만 피해자들이 일본 기업으로부터 배상을 받기는 현실적으로 쉽지 않는 상황이다. 추가 소송이 이어지면 그나마 얼마 남지 않은 고령의 강제노동 피해자들은 최종 판결을 보지 못한 채 눈을 감을 수밖에 없다. 이러한 이유로 지난해 대법원 전원합의체 판결은 최고법원이라는 위상에 걸맞지 않게 논란의 여지를 남겼다.
판결은 반드시 집행돼야 한다. 광복 74주년을 맞았건만 아직도 해결하지 못한 묵은 과제를 이제는 해결해야 한다. 정치적 판단이라는 일부 비난도 있지만 대법원의 최종 판결이 나왔으니 생존자들이 남아있을 때 그들의 한을 풀어줘야 할 때다.
정부는 대법원 판결의 소수의견에도 귀 기울여야 한다. 강제노동 피해자들이 또다시 지난한 소송으로 얼마 남지 않은 시간을 애태우지 않도록 책임감을 가지라는 얘기다. 정부가 '피해자 상처 치유'와 '한일 관계의 미래지향'이라는 원론적인 수준에서 하루빨리 벗어나 대법원 판결이 집행될 수 있도록 응답하길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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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만배 선임기자(부국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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