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에 체류 중인 김준기(75) 전 DB그룹(옛 동부그룹) 회장이 가사도우미를 성폭행한 혐의로 추가 고소당한 사실이 뒤늦게 알려지면서 논란이 일고있다. 이에 앞선 2017년 김 전 회장은 비서를 상습 성추행한 혐의로 고소를 당하자 치료를 이유로 미국에 출국했다. 

경찰은 외교부와 공조해 김 전 회장의 여권을 무효화한 후 그가 미국에서 추방되도록 해 국내에서 수사할 수 있도록 기대했지만 여전히 김 전 회장은 비자를 연장하며 미국에 머물고 있다. 여권 무효화를 당했어도 '불법체류자'가 아니기 때문이다.

17일 법조계에 따르면 김 전 회장은 여권이 무효화 됐음에도 '합법체류자' 신분으로 미국에 머물고 있는 것으로 판단된다. 애당초 유효여권을 가지고 비자를 발급 받았다면 합법적 체류 상태가 돼 비자를 계속 연장할 수 있다. 

노동일 경희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처음에 유효여권으로 체류자격을 얻었다면 이후 여권이 무효화된 것은 큰 문제가 아니다"라며 "해당 나라에서 별다른 문제를 일으키지 않았다면 체류자격 갱신을 통해 본래 목적의 체류를 계속할 수 있다"고 말했다.

김 전 회장은 2016년경 경기도 남양주 소재 본인 별장에서 일했던 가사도우미 A씨를 성폭행한 혐의를 받았다. 앞서 비서 성추행한 혐의가 불거졌을 당시 김 전 회장은 2017년 7월 치료를 이유로 미국행 비행기를 탔다. 이후 김 전회장은 "신병치료 때문에 미국에 머물고 있어 출석하기 곤란하다"며 경찰 소환에 불응해왔다.

경찰은 2017년 12월 7일 외교부와 공조해 김 전 회장의 여권을 무효화했다. 김 전 회장의 비자가 만료되면 불법체류자 신분이 돼 국내 송환할 수 있다는 판단이었다. 하지만 최근 김 전 회장은 6개월마다 체류 영장신청서를 갱신해 미국에 계속 머물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경찰은 지난해 5월 김 전 회장의 가사도우미 성폭행 건과 여비서 성추행 건 모두 기소중지 의견으로 검찰에 송치한 상태다. 김 전 회장 측은 관련 혐의에 대해 "합의된 관계였다"며 의혹을 강하게 부인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김 전 회장을 수사하기 위해 국내로 송환하기 위해서는 범죄인인도 조약에 따라 미국이 이를 받아들여야 가능하다. 이를 위해서는 검찰이 체포영장을 발부받아 법무부와 외교부를 통해 범죄인인도를 청구해야 하는데 아직 김 전 회장에 대한 범죄인인도 청구는 진행되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