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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사들은 "안 된다"는데 법원행정처는 된다는 '이것'

[thel][기획]'조서없는 판사생활' 가능할까 ②

판사들은 "안 된다"는데 법원행정처는 된다는 '이것'
삽화=이지혜 디자인 기자


"감당 안 되죠. 지금도 단독재판부 판사들 사건 많아서 힘든데 재판에서 다시 다 하자고 하면, 어휴…"

검찰 피의자 신문 조서(피신조서)의 증거능력을 대폭 축소하는 개정 형사소송법을 오는 8월부터 곧장 시행하면 어떻겠냐는 물음에 형사단독부 판사들은 "안 된다"고 입을 모아 대답했다. 형사단독부 판사들은 1인당 수십, 수백명의 피고인들을 처리하고 있다. 이런 기계적인 일 처리가 가능한 것은 진정 성립(조서에 적힌대로 진술한 적이 있음을 법정에서 인정하는 것)만 있으면 검찰 피의자 신문 조서를 증거로 사용할 수 있기 때문이다.

30일 법조계 등에 따르면 개정 형사소송법이 시행되면 이런 식의 사건 처리는 불가능해진다. 개정 형사소송법에서 검찰 피신조서의 증거능력은 대폭 축소된다. 피고인이 "검찰에서 말은 그렇게 했지만 사실은…"이라는 식으로 말을 뒤집는다면 검찰 피의자 신문 조서는 무용지물이 된다. 법정에서 피고인 진술을 처음부터 다시 받아야 할 수도 있는 것이다.

형사단독부 판사들은 검찰 견제라는 개정 형사소송법의 취지에는 공감한다면서도 대책없이 시행된다면 일선 재판부에서는 버티기 힘든 상황이 올 것이라고 우려했다. 우려가 현실이 된다면 그 여파는 국민들에게 돌아가게 된다. 2018년 기준 불구속 피고인이 형사단독부 재판을 받는 데 137.7일이 걸렸다. 개정 형사소송법이 시행되면 이 숫자가 어디까지 늘어날지 가늠하기 어렵다.

재경지법 형사단독에서 근무하는 A판사는 "솔직히 지금 단독 사건들, 간단한 것들은 피신조서를 기반으로 진행하는 경우가 많다. 만약 피신조서의 증거능력이 없어진다면 모든 공판에 공판검사와 수사검사가 같이 나와 처음부터 다 조사하는 그림이 될 것"이라며 "그런 식으로 재판에서 피고인 진술을 다시 다 받자고 하면 인력을 늘리지 않는 한 감당할 수 없다"고 말했다.

단독부 B판사는 "그렇지 않아도 단독부 판사들은 처리해야 할 사건 수가 많아 인력난을 토로하고 있다"며 "개정 취지에는 공감하지만 인력을 늘려야만 '공판 중심주의'라는 원래 취지와 맞게 좋은 결과가 나올 것"이라고 했다.

단독부 C판사는 "검찰은 물론 변호인이 피고인을 신문하는 시간까지 생각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변호인 측 신문 시간은 검찰이 쓰는 시간의 두 배, 세 배로 늘어날 것"이라며 "전체적으로 재판이 장기화될 것은 일단 분명하다"고 했다. "아직 시행도 안 됐는데 벌써 판단하기는 어렵다"던 수도권 단독부 D판사도 "지금 상태에서 그대로 (개정 형사소송법이) 시행된다면 버거울 것 같기는 하다"고 토로했다.

반면 형사합의부 부장판사들의 생각은 달랐다. 어차피 지금도 검찰 피신조서를 크게 신뢰하지 않기 때문에, 개정 형사소송법이 시행돼도 형사재판이 크게 달라지지는 않을 것이라고 이들은 전망했다.

재경지법 형사합의부 E부장판사는 "지금도 중요 사건에서는 피고인이 검찰 피신조서 내용을 재판에서 부인하는 경우가 많아 사실상 하나하나 다시 확인하고 있는 상황"이라며 "앞으로 재판부가 판단해야 할 대상이 더 늘어나 어려워지긴 하겠지만, 그 상황 자체를 크게 우려하고 있진 않다"고 말했다.

합의부 F부장판사도 "어떤 판사라도 법정에서 피고인이 진술한 내용과 검찰에서 진술한 내용 중 더 믿음이 가는 것 하나를 택하라면 당연히 내가 직접 본 법정 진술을 택할 것"이라며 "법 개정으로 시간이 이전보다 좀 더 걸릴 순 있겠지만 지금과 크게 달라질 것은 없다고 본다"고 했다.

단독부와 합의부 사이 생각이 다른 것은 업무 특성 차이 때문으로 풀이된다. 단독부 판사들의 업무는 상대적으로 단순하고 빈번하게 일어나는 형사사건들을 신속하게 처리하는 것이 중요하다. 반면 합의부 업무는 사실관계가 복잡하거나 법률적 쟁점이 두드러지는 사건, 사회가 주목하는 사건 등을 맡아 깊이있게 심리하는 것이 중요하다.

앞서 말했듯 단독부 판사들이 신속하게 사건을 처리할 수 있는 것은 검찰 피신조서의 증거능력 때문이다. 이 피신조서의 증거능력을 대폭 축소하는 개정 형사소송법에 단독부 판사들이 더 민감하게 반응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최근 법원행정처는 개정 형사소송법을 오는 8월부터 바로 시행해도 문제 없다는 의견을 청와대에 제출했다. 형사재판에 대대적인 변화가 예상돼 최대 4년의 준비기간을 가진 뒤 법을 시행하자고 입법 단계에서 정했으나, 행정처가 준비기간은 필요없다는 의견을 낸 것이다. 준비기간은 필요없다는 행정처의 의견이 옳은지 틀린지 아직은 알 수 없지만, 단독부 판사들의 목소리에 귀기울이지 않았다는 비판은 피하기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어떤 근거로 준비기간은 필요없다는 결론을 묻자 행정처는 일선 형사부 법관들의 의견을 수렴한 결과라고 했다. 구체적으로 어떤 과정을 거쳤는지, 의견 수렴 결과가 어땠는지는 공개하지 않을 것이라고 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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