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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위안부' 배상책임 인정…"주권면제 뒤에 숨지 말라"

[theL] '나치 노동력 착취' 페리니 판례 불구 원고 승소 판결…절차적 정의보다 실체적 정의 구현 중시


일본 '위안부' 배상책임 인정…"주권면제 뒤에 숨지 말라"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들을 기리는 평화의 소녀상. /사진=김휘선 기자


우리 법원이 일본의 위안부 전쟁범죄에 대한 배상 책임을 인정했다. 이번 사건은 독일 나치정권에 대한 국제사법재판소 판례 때문에 패소할 것이라는 전망이 우세했다. 그러나 재판부는 일본이 국제법 뒤에 숨어 전쟁범죄 책임을 피해나가는 것은 정의가 아니라고 판단했다.

서울중앙지법 민사합의34부(부장판사 김정곤)는 8일 고(故) 배춘희 할머니 등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12명이 일본 정부를 상대로 낸 손해배상 청구 소송에서 원고 승소 판결했다. 1억원씩 손해배상을 하라는 위안부 피해자들의 청구를 모두 받아들였다.



'페리니 판례' 감안해도 실질적 정의가 우선이라 본 법원


이 사건의 쟁점은 일본을 우리 법정에 세울 수 있는지 여부였다. 국제법 상 주권면제 원칙에 따르면 주권국가는 타국 법정에 서지 않는다. 일본도 이를 앞세워 우리 법원의 소송출석 요구를 무시해왔다.

일본에 주권면제 원칙이 적용되는지 여부와 관련해 국제사법재판소의 루이키 페리니 판례가 자주 언급됐다. 페리니는 1944년 세계 2차 대전 당시 나치정권에 의해 독일로 끌려가 강제징용을 했다.

이후 독일의 전쟁범죄에 대해 책임을 묻겠다며 자국 법원에 소송을 제기했고, 이탈리아 대법원은 페리니의 손을 들어줬다. 독일은 나치 희생자를 위한 손해배상 체계를 흔드는 판결이라며 국제사법재판소에 이의를 제기했고, 재판소 다수의견은 독일의 손을 들어줬다.

당시 재판소는 전쟁범죄의 피해자가 직접 가해국가에 배상책임을 물으려 할 때도 주권면제 원칙이 적용된다고 판시했다. 독일은 이탈리아 법정에 설 수 없으므로 법적책임이 성립하지 않는다는 취지였다. 당시 재판소장은 일본 국적의 오와다 히사시 재판관이었다.

그러나 우리 법원은 페리니 판례를 고려하더라도 일본의 전쟁범죄 책임을 인정할 수밖에 없다고 판단했다. 주권국가가 타국 법정에 설 수 있느냐 하는 것은 절차 문제일 뿐, 실질적 정의 구현에 앞설 수 없다고 봤다. 그 근거로 재판부는 우리 헌법과 UN 세계인권선언 제8조에서 '재판받을 권리'를 선언하고 있다는 점, 주권면제 이론은 국제법 상의 원칙으로서 국제질서 변동에 따라 수정될 수 있고 현재도 수정되고 있다는 점 등을 들었다.

재판부는 "피고가 된 국가가 국제공동체의 보편적인 가치를 파괴하고 반인권적 행위로 인해 피해자들에게 극심한 피해를 가했을 경우까지도 최종적 수단으로 선택된 민사소송에서 재판권이 면제된다고 해석하는 것은 불합리하고 부당한 결과가 도출된다"고 설명했다.

이어 "어느 국가가 다른 국가의 국민에 대하여 인도에 반하는 중범죄를 범하지 못하도록 한 여러 국제협약에 위반됨에도 이를 제재할 수 없게 된다"며 "이로 인해 인권을 유린당한 피해자들은 헌법에서 보장한 재판받을 권리를 박탈당해 자신의 권리를 제대로 구제받지 못하는 결과를 초래하며 헌법을 최상위 규범으로 하는 법질서 전체의 이념에도 부합하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국가면제(주권면제) 이론은 주권국가를 존중하고 함부로 타국의 재판권에 복종하지 않도록 하는 의미를 가지는 것"이라며 "절대규범(국제 강행규범)을 위반하여 타국의 개인에게 큰 손해를 입힌 국가가 국가면제 이론 뒤에 숨어서 배상과 보상을 회피할 수 있도록 기회를 주기 위하여 형성된 것은 아니"라고 했다.

주권면제 원칙과 함께 일본은 1965년 한일 청구권 협정도 면책 근거로 들었다. 1965년 한일 국교정상화 당시 맺은 청구권 협정과 함께 위안부 피해자들의 손해배상 청구권은 소멸한 것이라는 주장이다. 이에 대해 재판부는 "합의 적용대상에 포함되지 않으므로 청구권이 소멸했다고 볼 수 없다"고 판단했다.



"일본군 위안부, 일제가 직접 조직·운영" 명시


한편 재판부는 일본군 위안부는 일제가 직접 조직, 운영했으며, 학대와 성착취가 자행됐다고 지적했다. 재판부는 "일제는 침략전쟁 과정에서 군인들의 사기진작, 효율적 통솔을 추구하기 위해 '위안부'를 고안해냈다"며 "이를 제도화하여 법령을 정비하고 군과 국가기관에서 조직적으로 계획을 세워 역사에서 전례를 찾아볼 수 없는 '위안소'를 운영했다"고 밝혔다.

재판부는 "10대 초중반에서 20세 남짓에 불과해 미성년이거나 갓 성년이 된 피해자들은 위안부로 동원된 이후 일제의 조직적으로 직·간접적인 통제 하에 강제로 하루에도 수 십 차례 일본군인들의 성적 행위의 대상이 됐다"며 "피해자들은 가혹한 성행위로 인해 상해, 성병, 원치않은 임신, 안정성이 보장되지 않은 산부인과 치료의 위험을 감수해야 했다"고 설명했다.

재판부는 "피해자들은 최소한의 자유도 제압당해 감시 하에 생활했다'며 "종전 이후에도 위안부였다는 전력은 당사자에게 불명예스러운 기억으로 남아 두고두고 큰 정신적 상처가 됐다. 이로 인해 이후 사회에 적응하는 데 어려움을 겪었다"고 했다. 이어 "이는 2차 세계대전 이후 도쿄재판소 헌장에서 처벌하기로 한 '인도에 반한 범죄'에 해당한다"고 판시했다.

판결 직후 정의기억연대 측은 "이번 판결은 대한민국의 헌법 질서에 부합할 뿐만 아니라, 국제인권법의 인권존중원칙을 앞장서 확인한 선구적인 판결"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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