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명수 대법원장./ 사진=뉴스1

김명수 대법원장이 거짓말 논란에 이어 국회 로비 의혹에 휩싸였다. 대법원장 자리에 앉기 위해 판사들을 동원, 국회의원들에게 임명 동의를 구했다는 것이 의혹의 골자다. 김 대법원장이 사표 수리를 거절했다는 임성근 부장판사도 로비에 동원된 것으로 확인돼 논란이 커질 전망이다.

임성근 판사 측 "대법원장 부탁 받고 복수의 의원 접촉"9일 임 부장판사의 법률대리인에 따르면 임 부장판사는 김 대법원장의 인사청문을 전후해 복수의 국회의원들에게 김 대법원장 임명에 동의해줄 것을 요청했다. 김 대법원장이 부탁한 일이었다고 한다.

당시 임 부장판사 외에도 대법원 '청문회 준비팀' 차원에서 다수의 의원들을 상대로 로비를 벌였다고 한다. 특히 김 대법원장의 인사청문을 맡은 법제사법위원회 의원들에게 로비가 집중됐던 것으로 전해진다.

김 대법원장은 2017년 9월 국회 동의를 받아 대법원장에 임명됐다. 그 직후 로비 관련 자료는 '디가우징' 방법으로 파기된 것으로 알려졌다. 국회의원들의 출신, 학력 등이 정리된 인사자료도 함께 파기된 것으로 전해진다.

국회 로비 자료, 일 끝나자 디가우징? 대법원 "확인 중"디가우징은 자기력을 사용해 하드디스크에 저장된 정보를 삭제하는 것을 말한다. 범죄자들이 증거인멸에 종종 사용하는 방법이긴 하지만, 꼭 범죄수단으로만 이용되는 것은 아니다. 공무에 쓰던 PC 등을 더 이상 사용하지 않게 됐을 때 중요문서가 누설되지 않도록 디가우징 처리를 하는 것이 보통이다.

또한 임명 동의를 구하기 위한 국회의원 접촉이 사실이라 하더라도 불법으로 단정짓기는 힘들 것으로 보인다. 행정처 판사들이 임명동의안 통과를 위해 국회에 접촉하는 것이 이례적이지도 않고, 오히려 필요한 일이기도 하다는 이유에서다.

법제사법위원회 소속 의원실에서 보좌관을 지냈던 한 인사는 "인사청문을 앞두고 행정처에서 법조인 출신 의원들에게 인사하러 다니는 것은 당연하다"며 "오히려 조심한다고 (행정처에서) 인사를 다니지 않으면 '후보자에 대해 설명도 하지 않는다'며 의원들이 성질을 내기도 한다"고 말했다.

대법원 관계자는 김 대법원장의 국회 로비, 디가우징 논란에 대해 "확인 중에 있다"고 밝혔다.

임성근 판사 사표 세 번 거절…토사구팽한 모양새
그러나 김 대법원장을 둘러싼 상황을 고려하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김 대법원장은 건강이 좋지 않아 사표를 받아달라는 임 부장판사의 요청을 세 번이나 거절했다. "국회에서 탄핵 논의를 못하지 않느냐", "이런 비난을 받는 것은 적절치 않다"는 이유를 댔다. 국회 문턱을 넘을 때 임 부장판사 도움을 받아놓고, 임 부장판사가 도움을 청하자 국회의 탄핵을 받으라며 외면한 모양새가 된 것이다.

결국 여당은 임 부장판사에 대한 탄핵소추를 강행했다. 게다가 김 대법원장이 임 부장판사의 사표에 대한 해명을 하는 과정에서 거짓말 논란까지 불거졌다. 이에 김 대법원장을 향한 사퇴론이 법원 안팎에서 거세지고 있다.

한편 이번 사건에서 윤석열 총장의 징계사유로 제시됐던 '판사사찰' 논란이 떠오른다는 의견도 있다. 검찰에서 공판수행 목적으로 판사들의 출신, 학력, 취미, 판결이력 등 개인정보를 수집했다가 사찰 논란으로 비화됐던 사건이다. 같은 논리라면 행정처가 김 대법원장의 임명동의안 통과를 목적으로 국회의원들의 출신과 학력을 수집한 것도 사찰이 되지 않느냐는 비판이 성립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