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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승무원→1타강사→변호사' 그녀의 다음 꿈은? "바이크 세계일주"

[MZ 변호사가 뜬다] 기미진 변호사 인터뷰

편집자주[편집자주] 젊은 변호사들이 많아지면서 다양한 분야와 위치에서 MZ세대 변호사들도 눈에 띄기 시작했습니다. 그들의 얘기를 전합니다.
기미진 변호사. /사진=김휘선 기자 hwijpg@

항공사 승무원, 인기 국어강사, 그리고 변호사. 한 명이라고 믿기 어려운 커리어를 전부 거쳐온 사람이 있다.

기미진 변호사는 2004년 대한항공에 승무원으로 입사했다가 2009년 로스쿨 1기로 입학했다. 2012년 1회 변호사시험에 합격한 뒤에는 대한법률구조공단·서울국제중재센터·대기업 사내변호사를 거쳐 2016년 유명 공무원시험학원의 '1타 국어 강사'로 변신했다.

기 변호사는 "사람들은 새로운 기회가 왔을 때 손에 쥐고 있던 것을 잃을까봐 무서워한다"며 "새로운 걸 잡는 일에 무게를 두고 싶었다"고 밝혔다.

변호사 10년차를 맞아 잠시 휴식기를 보내는 중인 그녀를 찾아갔다.

-변호사로 일하다 학원계 1타강사로 변신한 계기가 궁금하다.

▶대기업 사내 변호사로 일하던 때, '스승의 날'에 은사를 찾아갔다가 갑자기 노량진 학원가에서 강사를 해보면 어떻겠냐는 제안을 받았다. '학원계에서 잘 할 것 같은데 매력을 느낀다면 같이 일했으면 좋겠다'더라. 새로운 세계에 발을 들일 생각에 가슴이 뛰었다. 사흘 잠을 설치며 고민하다 가족에게 통보하고 회사에 사직서를 던졌다.

-업무환경이 이질적이지 않았나.

▶변호사들도 법정에 서기는 하지만, 학생들 앞에서 강의하는 건 처음이라 굉장히 어려웠다. 예행연습처럼 빈 강의실에서 카메라를 두고 연습을 하기도 했다. 처음 제안을 받았을 때는 매력적인 직업이라고 느끼기는 했지만, 실제로 가서 준비해야 할 일들은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 노량진에서는 주로 저자 직강을 하는 관계로 나도 내 교재를 만들어야 했다. 이론서부터 문제집까지 6~7권을 쓰고, 학원과 출판사와의 관계도 잘 유지해야 하니 처음에는 쉽지 않았다. 다만 변호사가 원래 논리성 있게 글을 쓰는 능력이 필요한 직업 아닌가. 결국 국어와 강한 연관성이 있었다.

-강사 생활은 어땠나.

▶보람찼다. 강의를 할 때 하기 싫은 공부를 하러 온 사람이 아니라 자기 인생을 위해 도전하는 학생들을 마주칠 수 있었다. 졸거나 대충 듣지 않고 자신의 꿈을 위해 적극적으로 달리는 수강생들에게서 생동감을 느낄 수 있다. 담당하던 학생 중에서 지자체 수석 합격자가 나오기도 했는데 그런 친구들이 좋은 공공기관에 취업한 뒤 나를 찾아왔을 때 정말 뿌듯했다.

▶로스쿨 입학과 변호사시험 등 수험생 생활을 해본 입장이라 나도 학생들에게 공감할 수 있었다. '이 시험이 아니면 죽을 것 같다'는 마음을 너무 잘 알기 때문에 숨통을 틔워주려고 노력했다. '괜찮다. 일주일 내내 공부를 할 수는 없다. 토요일까지 공부하고 하루 쉬면서 운동해라'는 식으로. 한편 불우한 가정에서 장기간 수험생활을 하던 친구도 기억에 남는다. 열심히 다독여줘서 그런지 자신의 예상보다 훨씬 좋은 성적으로 합격했는데, 취업 후 첫 월급을 타서 내게 운동화를 사다주더라. 감동적인 순간이었다.

-항공사 승무원으로 일하다 로스쿨에 입학한 경력도 눈에 띈다.

▶대학에서 국어국문학과를 나온뒤 우연히 KBS의 청년 채용 관련 예능 프로그램 '꿈의 피라미드'에 참가했다. 가족이 참가를 권유했는데 실제로 채용이 될 줄은 몰랐다. 5주간 프로그램이 방영됐는데 당시 대한항공 사장에게 합격 통보를 듣던 때가 아직도 기억에 남아있다. 이후 4년간 재직한 뒤, 새로운 일을 하고 싶었는데 마침 그때 법학전문대학원 법안이 국회를 통과했다. 미국 로스쿨을 가볼까 했는데 다음해에 우리나라에도 생기니 도전해보자고 생각했다.

-그만두는 게 망설여지지는 않았나.

▶국제선 비행때 외국 호텔에서 동료 승무원이 현금 수백달러를 청소 담당자에게 도난당하는 사건이 있었다. 다들 포기하려는 와중에 '선례가 남고 승무원들이나 한국인들이 계속 피해를 볼 것이다'란 생각이 들더라. 결국 내가 중간에서 지배인을 부르고 CCTV를 확인하는 등 절차를 밟아서 보상을 받아냈는데, 이때 법률지식에 대한 필요성을 절실히 느꼈다. 또 이런 방향으로 내가 뭔가 할 수 있는 일이 있겠다는 생각도 품게 됐다.

▶주변에서 '안정적인 대기업을 다니는데 왜 그만두느냐'며 말리는 사람들이 많았다. 그런데 거기서 직장상사의 모습을 보니 10년, 20년 후의 내 미래 모습이 보였는데 그게 내가 원하는 삶이 아니었다. 나는 내 인생이 정체되는게 싫었다. 돌아보니 나는 새 기회가 오면 그걸 잡는 부류였다. 기회비용이란 건 애초에 없다. 그 경험조차 새로운 무언가를 이루기 위한 초석이 될 뿐이기 때문이다. 자기확신이라고 해야겠다(웃음).

-휴직 없이 바로 사표를 썼나. 다시 공부하는 게 쉽지 않았을 것 같다.

▶당연하다. 휴직할 필요 없다. '이것 아니면 죽는다'로 배수의 진을 쳐야 한다. 사람은 절박해야 초능력이 나온다(웃음). 승무원 생활을 마치니 마지막으로 펜을 잡은지 4년이 지났더라. 처음에는 머리가 새하얬고, 활자가 읽히지 않았다. 로스쿨 공부에는 시간투자가 절대적으로 중요했던 것 같다.

-승무원 경험이 이후 진로에 도움을 주기도 했나.

▶승무원도 변호사도 서비스업이다. 의뢰인과 소통할 때 승무원 시절 쌓은 경험이 유용했고, 국제중재센터에서 상근변호사로 일할 때 외국인들 상대할 때도 도움이 됐다.

기미진 변호사. /사진=김휘선 기자 hwijpg@

-변호사 자격 취득 이후 대한법률구조공단, 대한상사중재원 국제중재센터를 거쳤는데.

▶로스쿨에 갈 때 공익적인 일을 하고 싶다는 생각이 강했다. 그리고 장학금을 받다보니 '국민과 사회에 보답해야한다'는 생각이 들어서 공단으로 갔다.

▶국제중재센터에서 상근 변호사로 일한 것도 뿌듯한 경험이었다. 분쟁을 꼭 법원에서 승패로 결정할 필요는 없다. 다국적 기업들끼리 분쟁이 생기는 경우 둘 다 피해가 커지기 때문에 중재나 화해로 해결하는 경우도 많다. 상당히 매력적인 영역이었고 당시 우리나라에서는 대한변호사협회·서울시·법무부가 컨소시엄을 구성해 센터를 설립한 바 있다. 중재센터에서 심리가 진행된 초기 사건은 해외 잡지에도 우수 사례로 소개되어 뿌듯했다.

-자신을 항상 새로운 분야에 도전하게 만드는 원동력이 있다면.

▶뭐라고 표현해야 할지 잘 모르겠지만, 가슴 뛰고 항상 살아있음을 느끼는 삶을 살고 싶었다. 내 심장을 뛰게 하고 열정을 갖게 하는 일을 만나면 힘이 솟는다. 모든 기회에 열려 있는, 자유로운 영혼이라고 해달라(웃음).

▶비슷한 맥락에서, 최근에는 잠시 쉬면서 2종 소형 운전면허 취득을 준비하고 있다. 할리데이비슨 바이크에 관심이 생겼는데 그걸로 세계일주를 해봤으면 한다.

할리데이비슨 오토바이에 앉아 포즈를 취하는 기미진 변호사./사진=본인제공

-1회 변호사시험 합격자 발표가 난지 딱 10년이 지났다. 그간의 소회나 후배들에게 해주고 싶은 말이 있다면.

▶후배들은 변호사가 마지막 커리어라고 생각하지 말았으면 좋겠다. 또 자신의 인생을 멋지게 살았으면 좋겠다. 초기에는 나와 동기들은 좌충우돌이라 모든게 힘들었지만 꾸준히 노력하니 다들 멋진 구성원이 다 되어 있더라. 로스쿨 1기도 처음에는 사회의 '뜨거운 감자'로 취급되었는데, 10년이 지나니 모두가 자신의 분야에서 자리잡고 전문인력으로 국가와 사회에 이바지하고 있다. 시간이 해결해줬다고 본다.

▶처음에 말도 많고 탈도 많던 로스쿨 제도가 수정을 통해서 자리를 잡고 있다. 개인적으로도 뿌듯하고, 다양한 분야에서 선후배들이 자리잡고 있는 걸 보니 행복하다. 내가 앞으로 하는 일도 선후배들에게 누가 되지 않고, 한 티끌 정도 빛을 밝힐 수 있는 법조인으로 역할을 다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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