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자주'법관은 판결로 말한다'는 법언이 있다. 공직에 몸담은 법관들은 사회 현안에 대해 함부로 자신의 의견을 말하지 않는다. 오로지 판결을 통해 웅변할 뿐이다. 판결을 살펴 보면 우리 사법부에서 일하고 있는 법관들이 누구인지, 그들이 우리 사회에 어떤 말을 하고 있는지 알 수 있다. 법관들의 출신 지역이나 학력 등 판결에 대한 선입관을 형성할 수 있는 요소들은 기사에서 배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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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희대 대법관. /사진=뉴스1 |
조희대 대법관(59·연수원 13기)은 고등법원 재판장 시절 '노숙소녀 살인사건'에서 수사기관의 진술을 뒤집고 무죄 판결을 내려 주목받은 바 있다.
양승태 대법원장의 제청으로 박근혜 대통령이 임명했다. 임기는 2014년 3월 시작됐다.
다음은 조 대법관의 주요 판결들.
◇'노숙소녀 살인사건' 원심 뒤집고 무죄 판결
조 대법관은 서울고법에 재직하던 2009년 '노숙소녀 살인사건'으로 기소된 청소년들에게 원심을 뒤집고 무죄를 선고했다.
노숙 생활을 하던 A양(당시 15세)은 2007년 5월14일 경기 수원의 한 고등학교 화단에서 온 몸에 멍이 들어 숨진 채 발견됐다. 수원남부경찰서는 A양이 2만원을 훔쳤다고 의심하던 노숙인 정모씨(38)의 소행이고, 또다른 노숙인 강모씨(38)가 함께 A양을 때렸다고 판단했다.
이같은 판단은 검찰과 법원에서도 그대로 이어져 두 사람은 같은 해 12월 모두 유죄 판결을 확정받았다. 각각 정씨는 상해치사죄로 징역 5년, 강씨는 폭력행위처벌법상 공동폭행 혐의로 벌금 200만원을 선고받았다.
이후 수원지검이 이듬해 1월 진범이 따로 있다는 제보를 입수하며 사건은 새 국면을 맞았다. 재수사 끝에 검찰은 가출 청소년인 최모군(당시 18세)을 비롯한 청소년 5명이 범행을 주도했고, 정씨와 강씨는 단순 가담자라고 판단했다. 최군 등 4명은 모두 구속 상태에서 재판에 넘겨졌고, 1명은 형사미성년이라는 이유로 형사재판을 면했다.
최군 등은 검찰 수사 당시 '일행 중 한 명의 돈 2만원을 A양이 훔친 것으로 의심돼 추궁했지만 대답을 제대로 하지 못하자 폭행했다'는 취지로 진술했지만, 법정에서는 말을 바꿨다. 검사의 회유 때문에 자백했을 뿐 범행을 저지르지 않았다고 주장한 것이다. 사건 발생 8개월 만에 검찰이 재수사에 착수한 탓에 진술을 제외하면 뚜렷한 물증이 없는 상태였다.
1심 재판부는 불완전한 수사를 지적하면서도 검찰 조사에서 최군 등이 모두 자백한 점을 근거로 유죄 판결을 내렸다. 최군은 주도적 역할을 했다는 이유로 비교적 무거운 징역 4년형을 받았고, 나머지 3명은 단기 2년에 장기 3년형을 선고받았다.
그러나 조 대법관이 재판장을 맡은 2심 재판부(당시 서울고법 형사5부)는 2009년 1월 이같은 판단을 뒤집고 최군 등에게 모두 무죄를 선고했다. 최군 등이 당시 사건의 세부적인 내용에 대해 서로 엇갈린 진술을 하거나 명확하지 않게 설명했으며, 검찰이 제시한 사진을 보고 난 뒤에야 정황에 맞게 진술한 점 등을 고려할 때 허위자백이었을 가능성이 있다고 본 것. 앞서 정씨가 유죄를 선고받은 데 불복해 항소하면서도 최군 등의 범행에 대해서는 아무런 언급도 없었던 점도 중요한 판단 근거가 됐다.
특히 재판부는 혐의를 객관적으로 입증할 책임이 검사에게 있으며 피고인의 주장이 불합리할지라도 합리적 의심의 여지를 배제할 만큼의 입증이 있어야 유죄를 선고할 수 있다는 형사소송의 원칙을 강조했다.
이 판결은 그대로 대법원에서 확정됐고, 이미 유죄가 확정됐던 정씨와 강씨도 재심을 거쳐 무죄 판결을 확정받았다. 결국 A양을 살해한 진범이 누구인지는 끝내 밝혀지지 않았고 검·경의 수사가 무리했다는 지적이 잇달았다.
◇논란 된 형사사건 상고심에서 잇달아 중형 확정
조 대법관은 소부 주심으로서 사회적으로 논란이 된 여러 형사사건에 대해 중형을 선고한 원심을 잇달아 확정했다.
대표적인 사건이 주식 투자에 실패했다는 이유로 비관한 끝에 가족들을 살해한 가장 박모씨(51) 사건이다. 박씨는 실직한 이후 별다른 직업 없이 주식 투자로 생활하던 중 실패하자 2014년 12월 아내와 17세였던 딸에게 수면제를 먹인 뒤 살해하고 스스로 목숨을 끊으려다 실패하고 도주했다.
박씨는 동반자살을 제안해 아내와 딸이 동의했다고 주장했지만 인정되지 않았고, 징역 35년형을 선고받았다. 조 대법관이 주심을 맡은 대법원 2부는 최근 원심이 선고한 형이 무겁지 않다고 보고 판결을 확정했다.
70대 할머니를 성폭행하려다 저항하자 살해하고 시신을 여행용 가방에 담아 유기한 정모씨(56) 사건에서도 대법원 2부는 무기징역을 선고한 원심을 그대로 확정했다.
정씨는 2014년 12월 인천에 있는 자신의 집에서 함께 술을 마시던 A씨(당시 71)를 여러 차례 흉기로 찔러 숨지게 한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다. 정씨는 술을 마시던 중 "좋아한다"며 성폭행을 시도했지만 거부당하자 범행을 저지른 것으로 드러났다.
◇'쿠데타 모의 혐의' 윤필용 사건 최종 판단
조 대법관은 또 대법원 소부 주심으로서 고(故) 윤필용 전 수도경비사령관(소장)의 혐의에 대한 최종 판단을 내렸다.
'윤필용 사건'은 1973년 4월 수도경비사령관이었던 윤 전 소장이 이후락 당시 중앙정보부장에게 "박정희 대통령이 노쇠했으니 물러나게 하고 후계자는 형님이 해야 한다"고 말해 쿠데타를 모의한 것으로 몰리며 불거졌다. 쿠데타를 모의한 혐의는 끝내 입증되지 못했고, 윤 전 소장은 업무상횡령과 수뢰 등 혐의가 적용돼 재판에 넘겨졌다.
윤 전 소장은 재판에서 유죄가 인정돼 징역 15년에 벌금 1000만원을 선고받았고, 이후 징역 12년으로 감형받았다. 가석방 상태였던 윤 전 소장은 1980년 2월 특별사면을 받았다.
이후 윤 전 소장이 2010년 숨지자 유족들이 청구한 재심이 인정됐고, 서울고법은 윤 전 소장의 일부 혐의에 대해서만 유죄를 선고했다. 1972년 공사도급 청탁과 함께 총 80만원을 받은 부분을 사실로 인정해 징역 3년을 선고한 것이다.
그러나 대법원 2부는 이미 특별사면으로 형사처벌이 면제된 만큼 재심에서 다시 형을 선고해 불이익을 줄 수 없다는 이유에서 '유죄를 선고하지 않는다'는 판결을 내렸다.
이 판결은 특별사면을 받은 경우 재심에서 원래 판결보다 더 무거운 형벌을 선고하지 못한다는 원칙에 따라 나온 대법원의 첫 판결이다.
◇세월호 사고 책임에 대한 형사재판 중 첫 대법원 확정판결
이 밖에도 조 대법관은 세월호 사고 책임자들에 대한 형사재판 가운데 첫 대법원 확정판결에서 소부 주심을 맡은 바 있다. 그가 주심을 맡은 대법원 2부는 지난해 10월 업무상과실치사 등 혐의로 기소된 김한식 청해진해운 대표(74)에게 징역 7년형을 선고한 원심을 확정했다.
김 대표는 증축으로 복원성이 약해진 세월호에 지나치게 많은 화물을 싣고 출항 전 화물이 제대로 고정됐는지 등을 제대로 점검하지 않아 사고 원인을 제공한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다. 이 밖에 유병언 전 세모그룹 회장의 사진을 구입하는 등 명목으로 회삿돈을 건넨 혐의도 받았다.
징역 10년을 선고한 1심과 달리 항소심에서는 다른 세모그룹 계열사 대표들과의 형평성이 고려돼 징역 7년으로 감형됐고, 대법원 소부는 이 판결을 그대로 확정했다. 이 판결은 세월호 선사인 청해진해운 임직원의 책임을 엄격히 물었다는 점에서 의의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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