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고등법원 청사.

강제 낙태 또는 단종 피해를 입은 한센병 환자들에 대해 법원이 또다시 국가의 손해배상 책임을 인정했다. 다만 국가가 피해자들에게 지급할 위자료 액수는 1심보다 다소 줄었다.

서울고법 민사26부(부장판사 서경환)는 강모씨 등 203명이 국가를 상대로 낸 손해배상청구 소송 항소심에서 "국가가 단종 피해자 200명에게 1인당 2000만원씩 지급하라"고 판결했다. 재판부는 앞서 1심에서 피해 사실을 인정받지 못한 20명의 청구는 받아들이되 소송을 제기하기 전에 사망한 피해자 3명에 대해서는 청구를 각하했다.

재판부는 "재판 과정에서 소록도를 직접 방문해 실시한 현장검증 결과 등 제반 사정을 고려해 볼 때 배상액은 남녀 동일하게 1인당 2000만원이 적정하다"고 판단했다. 지난 23일 관련 소송 항소심을 맡은 다른 재판부가 피해자 139명의 손해배상청구에 대해 국가의 치료 체계 확립 노력 등을 고려해 1심보다 위자료 액수를 줄인 것과 같은 취지의 판결이다.

소송 대리인인 박영립 변호사는 위자료를 감액한 판결에 안타까움을 드러내며 상고 의사를 밝혔다. 그는 기자들과 만나 "법원이 한센인들의 한 많은 삶과 아픔에 대해 공감하고 국가의 불법행위 책임을 인정하면서도 위자료 액수를 줄인 것은 납득하기 힘들다"며 "생색내기 판결이라는 비난을 피할 수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이 사건은 사회적 약자에 대한 국가의 보호 의무와 정책적 배려를 요구하는 상징적 사건이다"며 "애초 손해배상액으로 5000만원을 청구한 것도 그런 의미다"고 설명했다.

피해자들은 1940~1970년대 국립 소록도 병원과 익산 소생원 안동성좌원, 부산 용호농원 등에서 단종 또는 낙태 수술을 당했다. 이후 2007년 제정된 '한센인 피해사건의 진상규명 및 피해자생활 지원 등에 관한 법률'에 따라 설치된 진상규명위원회는 조사 끝에 한센병 환자들의 피해 사실을 인정했다.

이에 피해자들은 진상규명위원회의 조사 결과를 바탕으로 총 5차례에 걸쳐 집단 소송을 제기했다. 법원은 소록도 병원을 직접 찾아 특별 재판을 열기도 했다. 당시 단종과 낙태 수술이 행해진 장소에 대한 현장검증을 실시하고 피해자 본인들을 신문하는 등 관계자들의 증언을 들었다.

이를 바탕으로 법원은 관련 소송들에서 한센인들에 대한 국가의 배상 책임을 인정하고 있다.

앞서 1심은 "단종 피해자 171명에게 3000만원, 낙태 피해자 12명에게 4000만원을 보상하라"며 원고 일부 승소로 판결했다. 소송을 제기한 이들 중 20명에 대해서는 강제 단종·낙태 피해를 인정할 만한 증거가 충분하지 않다고 판단, 손해배상 대상에서 제외했다.

1심 재판부는 "한센인들에 대한 일반인들의 냉대와 멸시는 그들에게 사회로부터 배제되고 인간으로서 인정받지 못한다는 심한 정신적 고통과 모욕감을 줬다"며 "국가가 단종·낙태 수술로 한센인들 인간 본연의 욕구와 기본적인 행복추구권을 제한해 죄의식과 수치심을 느끼게 했다"고 지적했다.

아울러 "국가가 행한 불법 행위로 한센인들이 대부분 노후를 보살펴줄 자식도 없는 처지가 돼 외롭고 쓸쓸한 노년을 보내게 됐다"며 "금전으로나마 고통을 보상할 필요가 크다"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