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전쟁 학살자라도 '무죄추정·변호인 도움' 받을 권리는 있다"

[the L][인물포커스]권오곤 김앤장 국제법연구소장


여기 한 남자가 있다. 1995년 7월 11일 그의 말 한마디에 8000여명이 목숨을 잃었다. 그가 이들을 죽이기로 결정한 이유는 이들이 이슬람교도였기 때문이다. 공식 집계된 사망자 수는 8000여명이지만, 실제 얼마나 많은 이들이 목숨을 잃었는지는 확실하지 않다.

이들이 목숨을 잃은 곳은 보스니아-헤르치고비나 동쪽의 작은 도시 스레브레니타. 1992년 보스니아 내전 때 벌어진 이 사건은 '스레브레니타 대학살'이라고 불린다. 8000여명이 죽임을 당하는데 걸린 시간은 1주일. 학살을 주도한 이 남자의 이름은 '라도반 카라지치'다. 당신이라면 그에게 어떤 판결을 내릴 것인가.

권오곤 김앤장 국제법연구소장은 징역 40년을 선고했다. 국제유고전범재판소(ICTY) 재판장이던 지난 3월 권 소장은 6년 간의 재판 끝에 이같이 결정했다. 2600여 쪽에 달하는 판결문을 읽어내리는 데만 1시간 40분이 걸렸다. 이 재판은 '제2차 대전 이후 가장 중요한 재판 중 하나'로 평가받는다.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결의로 설립된 ICTY는 보스니아 내전 때 자행된 반인륜 범죄를 처벌하기 위해 구성됐다. 2001년 한국인으로는 처음으로 ICTY의 재판관으로 선출된 권 소장은 지난 3월 카라지치 판결을 끝으로 15년간의 임기를 마치고 한국으로 돌아왔다. 귀국 후 김앤장 국제법연구소로 자리를 옮긴 권 소장을 지난 7일 서울 광화문의 사무실에서 만났다.

6년 재판 끝에…'발칸의 도살자' 카라지치 징역 40년

1992년부터 3년간 치러진 보스니아 내전에서 사망한 것으로 추정되는 인원은 25만 명, 300만 명 이상이 난민이 된 것으로 추정된다. 카라지치는 보스니아에 살던 세르비아계 주민들을 모아 스르프스카공화국을 세우고, 이슬람계 주민들을 학살했다. 1995년 전쟁이 끝나고 유엔 전범 재판을 피해 도망을 다니던 그는 결국 2008년 세르비아의 수도 베오그라드에서 붙잡혔다.

그런 그에게 선고된 징역 40년. 앨런 티커 검사는 그를 기소하며 종신형을 구형했다. 죄에 비해 형이 너무 가볍다는 불평이 나왔다. 권 소장은 "기소한 검찰은 형이 가볍다고, 피고인은 괴물같은 판결이라며 양쪽에서 비판했다"며 "당시 연구관들과 양쪽에서 비난을 받았으니 잘한 판결이라고 얘기하곤 했다"며 말문을 열었다. 그는 왜 40년을 선고했을까.

"ICTY에서는 사형이 없고, 무기징역이 최고형인데 현재 보스니아의 유기징역 최고형이 20년이에요. 또 유럽 인권재판소에서는 감형 없는 무기징역은 고문이라고 평가하기도 했죠. 무기징역을 30년 형으로 해석하는 나라도 있어요. 사안의 중대성으로 보면 최고형을 받아 마땅한 면이 있죠. 대통령이었던 카라지치는 데이튼 평화조약으로 전쟁이 끝나자 미국의 조언에 따라 모든 공직을 스스로 내려놨어요. 평화 정착에 기여한 면이 있다는 점이 감경 사유가 됐고, 일흔 살에 이른 그의 나이도 고려했죠."

카라지치 재판은 2009년 시작해 2016년에야 끝이 났다. 일주일에 나흘은 오전 9시부터 오후 3시까지 재판이 열렸다. 관련 기록만 33만 페이지에 달한다. 법정에 선 증인만 600여명. 이들은 전쟁 당시 얼마나 많은 이들이 참혹하게 죽어갔는지를 말했다. 판사들은 현장 검증도 나갔다. 8000여명의 무슬림이 살해당한 현장과, 1000명을 창고에 가두고 수류탄을 터트려 3명만 살아남은 현장에 직접 가서 보고 이야기를 들었다.

"끔찍한 사건들이 많이 있었죠. 가장 화가 났던 것이 인공위성 사진을 이용해서 집단매장지를 찾아냈는데 세르비아인들이 이걸 알고 집단매장지에 묻힌 시신들을 파내서 다른 곳에 옮겨버렸어요. 워낙 시신이 많으니 그냥 포클레인으로 땅을 파헤쳐서 여기저기로 옮겨버렸어요. 온 몸이 다 헤어져 서로 다른 지역에서 발견된 시신도 있었어요. 어떻게 이렇게 끔찍할 수가 있나 싶었죠."

권오곤 김앤장 국제법연구소장 인터뷰

"사형제 반대…어떤 피고인도 변호인의 법률적 도움 받을 권리 있다"

전쟁 중 일어난 학살은 끔찍한 형태로 나타나기 마련이다. 그 학살을 주도한 이의 죗값을 결정하는 것이 판사의 역할이다. 15년 동안 전쟁 범죄자들이 어떤 일을 저질렀는지 보고 들으며 인간에 대한 회의가 생기지는 않았을까. '죽어 마땅한 인간'이란 있지 않을까. 하지만 그는 사형제에 반대한다.

"같은 생명이니까요. 저도 한국에서 판사로 있을 때 사형을 선고한 적이 있어요. 극악무도한 범죄를 저지른 이에게는 최고형인 사형을 선고할 수 있다고 도식적으로 생각했죠. 하지만 지금은 갇혀있는 것만으로도 충분한 형벌이 된다고 생각해요."

카라지치는 변호인 없이 스스로를 변호했다. 영미법과 국제법은 이를 인정하고 있다. 하지만 재판부가 선임한 유력 변호인단의 도움을 받아 화제가 되기도 했다. '발칸의 도살자'라 불리는 이를 대리해 '무죄'를 주장하는 변호사를 두고 '악마를 변호한다'는 비난도 있었다. 잔혹한 범죄자를 대리해 '무죄'를 주장하는 변호를 들으며 권 소장은 어떤 생각을 했을까. 권 소장은 "수십만 명을 학살한 혐의로 법정에 선 피고인들도 변호사의 조력을 받을 권리가 있다"고 잘라 말했다.

"피고인이 공정한 재판을 받을 수 있도록 법률적으로 돕는 것은 재판에 큰 기여를 한 거에요. 어떤 경우라도 피고인이 가능한 모든 법적 방어를 할 수 있도록 돕고 법치주의 절차에 따라 정당한 재판을 받도록 하는 것은 변호사의 중요한 의무죠. 어떻게 이런 사람을 변호할 수 있느냐는 비난은 형사소송의 근간을 흔드는 주장인거죠. 어떤 피고인도 공정한 재판을 받을 권리가 있고, 형이 확정되기 전까지는 무죄라는 것을 부인해서는 안돼요. 그렇게 공정한 재판을 해야 재판의 정당성이 확보되는 거지요."

권 소장은 15년간의 국제형사 재판 경험을 돌아보며 한국의 형사사법제도가 개선해야 할 점으로 피고인에 대한 인식을 말했다. 법은 피고인의 무죄추정의 원칙을 말하지만, 인식은 그렇지 못하다는 이야기다.

"우리가 여러 발전된 제도를 가지고 있는데 실제 취지를 못살리는 면이 있어요. 형사사법제도를 국제적 기준에 맞게 개선할 부분들도 있죠. 피고인의 인권을 보호하는 측면인데, 법은 무죄추정의 원칙을 정해놓고 있어요. 판결이 나기 전 모든 피고인은 무죄라는 거죠. 법을 배울 때는 99명의 진범을 놓치더라도 한 명의 억울한 사람이 생겨서는 안 된다고 하지만, 실제로는 한 명이 억울하더라도 99명을 빨리 처벌하는 게 좋다는 인식이 더 강하죠. 피고인 인권보호를 위한 적법절차에 대한 배려가 적은 것 같아요."

"판결문으로 국민 설득할 수 있을 때 사법부 신뢰 찾아올 것"

대구고법 부장판사로 재직하던 권 소장은 2001년 ICTY 재판관으로 선출돼 유럽으로 떠났다. 떠날 때만해도 15년이나 걸릴 줄은 몰랐다.

"4, 5년이면 끝날 줄 알았어요. 첫 재판이 슬로보단 밀로셰비치 전 유고 대통령이었는데, 판결이 나기 전 사망했어요. 그러다 카라지치가 잡혔는데 재판장을 하라고 하더라고요. 역사적인 재판에 재판장으로 참여할 수 있는 기회를 놓칠 순 없었죠. 그래서 남았어요."

인종 갈등으로 촉발된 내전이 끝나고 유고 연방은 각 나라로 분리 독립됐다. 각국의 협조가 없으면 제대로 된 재판을 진행하기 힘들다. 권 소장은 복잡한 절차와 새로운 선례를 만들어 나가야 하는 점이 힘들었다고 말했다.

"재판 절차가 영미법과 대륙법을 절충한 형태로 진행이 되는데, 증거능력이 있는지 없는지부터 매일 새로운 문제가 드러났어요. 결정은 국제관습법에 따라서 해야 하는데 선례가 없으니 사안 하나를 두고도 각 나라들이 어떻게 해석하고 적용하고 있는지를 다 들여다봐야 해요. 그리고 재판부에서 '국제관습법은 이것이다'라고 선언을 하는 거죠. 예를 들어 성폭력도 전쟁 범죄에 해당된다고 우리 재판소에서 처음으로 선언을 했어요. 내전에서 일어난 범죄를 국제적으로 적용한 것도 처음이었죠. 판례를 처음 만들어나가는 일이라 쉽지 않았죠."

권 소장은 사법부가 신뢰를 회복하기위해서는 국민을 설득할 수 있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재판을 받는 사람들은 구속이나 보석, 집행유예 여부 등에 관심이 많아요. 그런데 판결문을 보면 결과만 나와 있고 이유는 없거나 한두 줄에 불과한 경우가 많죠. 결정의 이유가 납득이 안 되니, 사람들은 변호사를 잘못써서 그런가 같은 생각을 하는 거죠. 그리고 변호사를 바꿔 항소를 하기도 하고요. 재판부가 법률 논리로 국민을 설득할 수 있을 때 비로소 사법부 신뢰가 찾아온다고 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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