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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래픽=이지혜 디자이너 |
어떤 어른도 한 때 청소년이 아니었던 사람은 없다. 누구나 인생의 한 부분을 청소년으로 보낸다. 그 기간도 청소년기본법에 따르면 15년으로 적지 않다. 그런데 10여년이라는 긴 시간을 청소년으로 보낸 이들 중 상당수는 청소년들과 대화하는데 어려움을 느낀다. 성인과 청소년들 사이에 갈등이 발생하는 이유는 다양하겠지만 가장 큰 이유는 청소년을 성인의 시각으로 판단하려하기 때문은 아닐까?
2015년 10월 8일 오후 4시 35분, 용인의 한 아프트 화단에 벽돌이 날아들었다. 50대 여성과 20대 남성이 벽돌에 맞았다. 여성은 그 자리에서 목숨을 잃었고 남성은 중태에 빠졌다. 이들은 들고양이들이 쉴 수 있는 집을 만들던 중이었다. 때문에 사람들은 들고양이들에게 먹이를 주는 이른바 '캣맘'에 대한 증오에서 비롯된 범죄일 거라고 생각했다. 캣맘에 대한 증오범죄로 판단되면서 사회적으로 큰 이슈가 되었고 경찰은 대대적인 수사에 돌입했다. 이른바 캣맘 사건이었다.
그런데 사건 발생 약 일주일 후 엄청난 반전이 일어났다. 만 9세, 초등학교 학생이 범인으로 밝혀졌기 때문이다. 벽돌을 던진 초등학생은 친구 두 명과 함께 옥상에 올라 학교에서 배운 낙하실험을 하고자 벽돌을 던졌다고 했다. 9살짜리 초등학생이 벽돌을 던져 사람을 죽였다는 사실에 많은 이들이 경악했다. 강력히 처벌해야 한다는 여론이 들끓었다. 그런데 경찰은 이들을 처벌할 수 없다고 발표했다.
만14세 미만은 형사미성년자…'캣맘'사건 터지자 "형사미성년자 연령 낮추자"
형법은 만 14세 미만의 소년을 형사미성년자로 분류하여 처벌하지 않는다. 다만 만 10세이상 14세 미만의 소년은 촉법소년(만 10세 이상 14세 미만으로 형벌을 받을 범법행위를 한 자)으로 분류하여 소년법상 보호처분이 가능하지만 캣맘 사건의 경우 만 10세조차 되지 않아 처벌이 전혀 불가능했다.
여론이 들썩였다. 사람이 죽었는데 범인을 처벌할지 못한다는 데 대한 불만이었다. 곧 형사미성년자의 연령을 더 낮추어야 한다는 주장들이 나오기 시작했다. 이들은 청소년 범죄의 잔혹성이 날로 증가하는 상황에서 형사미성년자의 연령을 만 14세 미만으로 계속 유지하는 것은 문제가 많다고 주장했다.
캣맘사건 보다 1년 전 국민들의 분노를 산 또 다른 사건이 있었다. 2014년 살을 애는 듯한 추위에 옷깃을 동여맨 사람들이 하나둘 서울고등법원 동문 앞에 모이기 시작했다. 한국여성단체연합 등 여성관련 시민사회단체 회원인 이들은 대법원의 판결에 항의하는 기자회견을 시작했다.
2011년, 당시 40대였던 모 연예기획사 대표는 27살이나 어린 여중생과 지속적 성관계를 가지고 있었다. 이 과정에서 여중생은 임심과 낙태를 경험해야 했다. 성폭행 혐의로 기소된 연예기획사 대표에게 1심과 2심은 각각 징역 12년과 9년을 선고했다. 하지만 대법원은 무죄로 판단했다. 대법원은 이들의 관계를 연인으로 판단했다. "피해 여중생은 자신보다 27살 많은 피고인에게 색색의 펜을 사용해가며 '사랑한다, 보고 싶다'는 편지를 보냈고, 추행·강간을 당했다면서 피고인과 계속 동거했다. 이에 비춰 피고인의 강간 혐의는 무죄"라는 것이었다.
형법 제305조는 만 13세 미만 미성년자와 성관계를 가진 자는 강간으로 간주하는 규정이 있다. 이를 ‘미성년자 의제 강간’이라 한다. 때문에 여중생이 13세 미만이었다면 그들이 정말 사랑하였더라도 처벌은 가능했다. 하지만 당시 여중생은 중학교 3학년으로 만 13세를 갓 넘기고 있었다.
40대 남성 여중생 성폭행 무죄받자 "중3이 무슨 사랑…미성년자 의제강간 연령 높이자"
또 다시 여론은 들썩였다. 자신보다 27살이나 어린 중학교 3학년 여학생과 지속적인 성관계를 가졌는데 이를 성범죄로 처벌할 수 없다는 것은 말도 되지 않는다는 주장이었다. 한편에서는 중학교 3학년이 무슨 사랑을 안다고 둘의 관계를 연인으로 판단하느냐는 비판도 제기되었다. 여론은 미성년자 의제 강간 연령을 더욱 높여야 한다는 주장으로 이어졌다. 만 13세는 너무 낮다는 것이었다.
두 사건은 청소년에 대한 극단적으로 상반되는 시각을 보여준다. 캣맘 사건에서 여론은 형사미성년자 연령을 더욱 낮춰야 한다고 소리 높였다. 반면 연애기획사 사건에서 여론은 미성년자 의제 강간의 연령을 높여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들은 14살, 15살 또는 그 이상이 되어도 성적판단능력이 부족하다고 생각한다. 쉽게 말하면 "어린 아이가 뭘 안다고 성관계를 가지냐"는 것이다.
우리는 '어려도 판단능력이 있으니 처벌을 받아야 한다'는 주장과 '어리니 성적판단능력이 없다'는 청소년에 대한 완전히 상반되는 두 시각이 같은 시공간에 공존하는 당황스러운 상황을 목격하고 있다. 이처럼 청소년을 성인의 시각으로 규정하는 태도는 어른들이 청소년과 대화를 할 수 없는 가장 큰 이유 중 하나다.
그 때 그 때 자신들을 다른 잣대로 규정하려는 어른들과 대화하고 싶어하는 청소년은 없을 것이다. 이미 청소년기를 지나쳐버린 어른들이 청소년의 시각으로 청소년을 판단하는 것은 어려울 것이다. 하지만 어른의 잣대로 그들을 판단하는 것이 아니라 최소한 그들을 이해하자 노력하는 자세 필요는 필요하다. 그래야만 일관된 시각으로 청소년을 바라볼 수 있고 그럴 때에야 어른들은 청소년과 대화를 할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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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광민 변호사는 부천시청소년법률지원센터 소장이다. 청소년을 만나는 일을 직업으로 가지고 있으면서도 언제나 그들과의 대화에 어려움을 겪는 자신의 모습에 오늘도 힘들어한다. 생물학적 회춘은 불가능해도 정신적 회춘은 가능하리라 믿으며 초겨울 마지막 잎새가 그러했듯 오늘도 멀어져가는 청소년기에 대한 기억을 힘겹게 부여잡고 살아가고 있다. 정신적 회춘을 거듭하다보면 언젠가는 청소년의 친구가 될 수 있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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