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수능 출제 잘못으로 대학 불합격…'잃어버린 1년'의 값은?

[the L][인물포커스]임윤태 태정합동법률사무소 변호사…'수능 피해학생에 손해배상' 판결 받아내

사진=임윤태 변호사
자그마치 12년이다. 초등학교 6년, 중학교 3년, 고등학교 3년. 아무리 '행복은 성적순이 아니다'고 해도 아직도 한국에서는 '어느 대학에 갔나'로 12년의 성패를 평가한다. 아무리 입시 형태가 다양해졌다고 해도 대학 '간판'을 좌우하는 것은 결국 단 한 번의 시험이다. 그래서 대학수학능력시험, 수능은 국내 그 어떤 시험보다도 무게감이 다르다.

그래서 수능날에는 수험생이 늦지 않고 시험장에 도착할 수 있도록 대중교통 운행 시간도 바뀌고 공무원 출근시간과 학생들의 등교 시간도 늦춰진다. 경찰들은 혹시나 수험생에게 무슨 일이 생기지나 않을까 곳곳에서 대기하며 이들을 살피고 언론은 시험 수일 전부터 수능날 아침 날씨는 어떤지, 도시락 메뉴는 뭐가 좋을지를 연일 보도한다. 수능은 우리에게 그런 의미다.

그런데 수능에 틀린 문제가 출제됐다면? 그래서 그 문제 때문에 성적이 바뀌었다면? 그래서 진학 대학이 바뀌었다면? 누군가에게는 인생이 뒤틀리는 사건임은 틀림없다. 당신이라면 어떻게 하겠는가.

◇2014년 수능 '세계지리 8번' 오류…행정소송에서 손해배상까지

지난 2013년 11월 치러진 수능에서 이런 일이 있었다. 이른바 '세계지리 8번' 사건이다. 당시 수능 정답이 발표되자 세계지리를 선택한 수험생들 사이에 논란이 일었다. 문제가 잘못됐다는 것. 수험생들은 수능을 출제한 한국교육과정평가원(평가원)에게 문제를 제기했지만, 평가원은 '문제 없다'는 입장을 내놨다. 결국 사건은 법원에 넘어갔다.

"2013년 말에 소송을 제기해서 18일만에 1심 선고가 나왔죠. 출제 오류가 명백하니 당연히 받아들여질 줄 알았는데 졌어요. 소송을 의뢰한 박대훈 강사와 학생들의 항소 의지도 강했고, 농락당한 느낌이 들더라고요. 누가봐도 명백하게 문제가 잘못된, 객관적 사실에 관한 오류인데 왜 이럴까 하는. 그래서 항소했죠."

태정합동법률사무소의 임윤태 변호사는 2013년 말 후배인 박대훈 세계지리 강사의 의뢰를 받아 이번 사건을 맡게됐다. 1심에서 패소한 지 10개월 뒤인 2014년 2심 법원에서 '문제가 잘못됐다'는 판결을 받아냈다. 그리고 지난 10일, '국가가 학생들에게 손해배상을 해줘야 한다'는 손해배상 판결까지 받아냈다. 2013년 말 수능 성적이 발표되고 3년 반만이다.

2014년 '문제에 오류가 있다'는 판결이 나오자, 국회는 '2014학년도 대학수학능력시험 출제 오류로 인한 피해자의 대학입학 지원에 관한 특별법'(수능구제법)을 통과시켰다. 평가원은 법원 판단에 따라 성적을 재산정해 추가합격 등 조치를 취했다.

하지만 이미 1년이라는 시간이 흐른 뒤. 어떤 학생은 1년간 학비를 내고 다니던 대학을 떠나 다른 대학에 신입생으로 입학해야 했다. 어떤 학생은 재수를 하느라 수백만원의 학원비를 쓴 뒤였다. 제대로 성적을 받았다면 지원할 수 있었던 대학에 원서조차 내지 못한 학생도 있었다. 평가원이 제때 오류를 인정했다면 피할 수 있었던 금전적, 시간적, 정신적 피해는 고스라니 학생들의 몫이 됐다.

◇평가원 출제 잘못으로 학생들의 '잃어버린 1년'의 값…200만원에서 1000만원

임 변호사는 바로 손해배상 청구 소송을 시작했다. 수임료는 받지 않았다. 만약 승소하면 손해배상 받은 돈에서 일부를 수임료로 받기로 했다. 만약 지면 비용만 쓰고 수임료는 한 푼도 못받는 셈. 이런 결정을 한 데는 개인적인 경험이 바탕이 됐다.

"1999년에 사시 2차를 준비하고 있었는데 전년도에 치른 시험이 출제에 오류가 있었다면서 2차를 두 번 볼 수 있다는 연락을 받았어요. 1998년에 본 1차 시험에서 떨어졌는데 합격으로 바뀌었다는거에요. 그때 집단 손해배상 청구 소송을 냈는데 결국 대법원에서 졌어요. 그때 불합리하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출제에 오류가 있었다면 보상해주는게 맞지 않나. 이번 사건을 접하고 그때 품었던 생각을 실현할 수 있는 기회라고 생각했어요. 한번 해보자 싶었죠."

지난 1999년 대법원이 제40회 사법시험 1차 시험 문제 일부가 잘못됐다는 판결을 내리면서 당시 527명이 추가 합격됐다. 이중 한 명이 임 변호사였다. 사법시험 사상 처음 있던 일이다. 법원은 출제 오류는 인정했지만, 손해배상 청구는 받아들이지 않았다.

임 변호사는 이번에는 다를 것이라 생각했다. 명백하게 문제에 오류가 있다는 사실이 밝혀졌으니 손해배상 청구 역시 받아들여질 것으로 봤다. 학생들의 손해배상 청구 소송에 평가원은 대형 로펌으로 맞섰다. 지난해 7월 1심 법원은 수험생들의 손배해상 청구를 기각했다. 1심에서 패소하면서 함께 소송을 하던 변호사 중 두 명이 그만뒀다. 처음에는 세 명의 변호사가 시작했지만 결국 임 변호사 혼자서 항고를 준비했다.

"평가원은 수능 출제를 제대로 관리·감독할 의무가 있는데 제대로 안했으니 손해배상을 하라고 했죠. 잘못한 쪽에서 깔끔하게 인정했으면 했는데, 대형 로펌을 선임해 각종 이론을 내새우면서 법리 공방을 하는 모습을 보면서 벅차다는 느낌이 많이 들었어요. 객관적 사실의 오류를 두고 '학문의 해석'이라는 영역으로 끌어와 여러 각도에서 해석될 수 있다고 주장하는데 주장 하나하나를 모두 반박해야 했거든요. 힘들더라고요."

◇"인생이 걸린 시험…상식적인 판단이 이뤄지길"

1심에서 지고, 10개월만에 판결이 뒤집혔다. 2심을 맡은 부산고법은 "지문자체에 오류가 있거나 객관적 사실에 위배돼 명백히 틀린 지문임에도 문제 출제과정과 이의처리 과정에서 요구되는 주의의무를 다하지 않은 과실이 있다"며 대학에 1년 가량 늦게 추가 합격한 수험생 42명에게는 각 1000만원을, 점수를 제대로 받지 못해 지원할 수 있는 대학 범위가 줄어서 손해를 입은 수험생 52명에게는 각 200만원의 위자료를 지급하라고 결정했다.

당초 이들은 추가 합격 전 다닌 대학의 등록금, 재수를 하느라 들인 학원비 등을 포함해 1500만원에서 6000만원까지 배상금을 청구했다. 임 변호사와 소송에 참여한 수험생들은 만족스러운 액수는 아니지만 잘못된 출제로 피해를 본 이들에게 처음으로 금전적 배상을 결정한 판결을 받아냈다는 데 의미를 뒀다.

"수능은 학생들이 일생에 처음으로 사회 관문을 통과하는 절차잖아요. 한 사람 한 사람 따지고 보면 인생이 걸린 시험이고요. 평가원이 빨리 인정했다면 이렇게 피해가 커지지 않았을텐데 아쉽죠. 평가원이 상고를 할지는 모르겠어요. 개인적인 욕심으로는 아예 대법원까지 가서 선례를 남기는 것도 좋을 것 같아요. 수능은 객관적으로 출제해야 하고, 잘못하면 손해배상까지 당한다는 경종을 울리기 위한 의미에서요. 하지만 지금까지 피해를 본 학생들은 빨리 배상을 받는게 무엇보다 중요하죠. 우리가 상고하지는 않을 겁니다. 상식적인 판단이 이뤄졌으면 좋겠다는 바람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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