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L 리포트

너무도 쉬운 입양…반복되는 비극

[the L][Law&Life-세상의 빈틈]① 입양, 수십년째 '법 사각지대'…'민간'에 맡겨둔 입양, 이제 '정부'가 맡아야

편집자주톱니바퀴가 굴러가듯 정교하게 돌아가는 것처럼 보이는 세상에도 빈틈이 있습니다. 법은 있지만 지켜지지 않아 생긴 빈틈, 법끼리 부딪혀 생긴 모순이 만든 빈틈, 소수자라서 법이 없어서 생긴 빈틈, 세상에서 보이지 않는 소외된 곳에 서 있어서 생긴 빈틈, 세상이 변하면서 생긴 빈틈까지…우리가 모르는, 하지만 어느날 우리가 서있게 될 수 있는 빈틈을 찾아, 틈을 메우기 위해 고군분투하고 있는 이들의 이야기를 들어봅니다.
사진=남인순 국회의원실

#1984년 미국으로 입양을 갔다가 27년만에 한국으로 추방된 필립 클레이씨(42)는 지난달 21일 고국의 한 아파트에서 몸을 던졌다. 그는 입양 당시 양부모가 시민권을 얻어주지 않아 시민권이 없다는 사실을 폭행 사건에 연루되서야 알게됐다. 그가 미국인이라고 알고 살아가던 동안 한국 정부도 그를 입양보낸 기관도 해외 입양의 가장 기본이 됐어야 할 국적 취득 여부 조차 알지 못했다. 

#필립 클레이씨가 입양을 간지 32년 뒤인 2016년, 대구의 한 가정에 입양된 3살 은비는 심장이 멈춘 채 응급실에 실려왔다. 뇌사판정을 받은지 3개월만에 은비는 사망했다. 아이의 온 몸에는 멍자국과 화상자국이 남아있었고 손톱은 깨져있었다. 아이의 심장을 먿게 한 것은 양부모였다. 은비가 뇌사 상태로 누워있던 무렵 경기도 포천에서 또 다른 아이가 숨졌다. 양부모에게 학대를 당하다 결국 사망한 6살 아이를 전과 10범이던 양아버지는 몰래 화장해 암매장했다.

30여년의 시차가 있지만 입양아들은 여전히 같은 시간대에 살고 있다. 지난해 국내외 입양된 아동은 880여명, 현재까지 정부가 파악하고 있는 국내외 입양아는 총 24만5600명이다. 이들은 입양이 시작된 후 수십여년이 흐르도록 법과 제도의 사각지대 속에 살고있다. 지난해 잇달아 입양아 학대 사건이 발생하자 국회와 시민단체, 전문가들은 '대구·포천 입양아동 학대·사망사건 진상조사와 제도개선위원회'를 만들어 진상 조사에 나섰다. 위원회는 7개월간의 조사 끝에 지난달 31일 '아동권익 보호를 위한 입양 및 학대예방 제도 개선방안'을 발표했다.

◇입양, '민간' 아닌 '정부'가 맡아야

전문가들은 입양 과정과 권한, 사후관리까지 모두 '민간' 기관에 맡겨져있다는 점을 가장 큰 문제로 지적했다. 최종적인 입양 허가는 법원이 결정하지만 그 전에 입양가정을 선정해 아동과 연결하는 것부터 양육 위탁까지 모두 개별 민간 입양기관이 맡는다. 법원은 최종 결정을 내리는 역할에만 머물러 있다.

이런 상황에서 법원이 개별 입양 가정의 상황을 알고 적절히 대처하기는 힘들다. 실제 은비의 경우 입양 허가를 받기 전, 입양을 전제로 양부모에게 위탁된 상황에서 뇌사상태에 빠졌지만, 입양 기관은 이를 법원에 알리지 않았다. 이를 몰랐던 법원은 은비가 뇌사에 빠진지 일주일 뒤 입양을 허락했다.

전문가들은 입양 절차가 시작되는 순간부터 정부가 개입해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정부가 입양업무를 직접 담당하거나 최소한 기관에 위탁을 하고 관리·감독하는 형태로 바뀌어야 한다는 이야기다. 김진석 서울여대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많은 문제는 공적기관의 역할이 미비한 데서 기인한다"며 "궁극적으로 입양업무는 정부차원의 전문공공기관에 의해 수행돼야 하지만 현실을 고려했을 때 중앙정부 차원에서 관리·감독할 수 있는 규정이 마련돼야 한다"고 지적했다.

최종 결정 권한을 가진 법원이 실질적인 관리·감독 기관이 될 수 있도록 역할을 강화하자는 방안도 있다. 지난 3월 금태섭 의원은 이같은 내용을 골자로 하는 입양특례법 일부 개정안을 발의했다. 가정법원 내 입양조사관제도와 전문가 의견조회제도를 만들어 법원이 예비 양부모가 자녀 양육 능력이 있는지, 심리적인 문제는 없는지 등을 직접 확인한 후 결정하도록 하자는 것이다.

◇'입양특례법' 모든 아동에 적용해야

모든 입양 아동에게 '입양특례법'을 적용하도록 법이 바뀌어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현재 국내 입양은 '입양특례법 입양'과 '민법상 입양'으로 나뉜다. 시설에 있거나 부모가 양육을 포기해 기관을 통해 입양되는 경우 '입양특례법'이 적용돼 양부모가 재산은 충분히 가지고 있는지, 전과는 없는지, 입양교육은 받았는지 등을 확인하도록 하고 있다.

하지만 친부모와 양부모가 사적으로 동의해 입양할 경우 양부모 자격 요건은 사실상 없는 것과 다름 없다. 특례법상 입양의 필수 요건인 '예비 양부모 교육'도 필요없다. 포천 사건의 경우 양부모는 민법상 입양으로 아이를 입양했다. 양부모가 전과기록이 있었지만 문제는 없었다. 양부모 교육 역시 받지 않았다.

이는 입양특례법이 대상을 '요보호 아동', 즉 '보호자가 없거나 보호자가 아동을 학대하는 경우, 보호자가 아동을 양육하기 적당하지 않거나 능력이 없는 경우의 아동'으로 한정하고 있기 때문이다.

전문가들은 입양특례법 적용 대상을 '모든 아동'으로 확대해야 한다고 말했다. 김 교수는 "아동을 대상으로 한 입양인데 입양특례법 적용이 안돼 양부모에 대한 최소한의 관리도 이뤄지지 않았다"며 "민법상 입양이라도 아동을 대상으로 할 경우 입양특례법의 적용을 받도록 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지적했다. 목경화 한국미혼모가족협회 전 대표 역시 "구멍이 많은 민법상 입양 절차는 폐지하고 입양특례법으로 통합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포천 사건 이후 민법상 입양 문제가 수면 위로 떠오르자 법원과 보건복지부는 '민법상 입양'도 양부모 교육을 받도록 하는 방안을 추진 중이다. 지난 4월 시범 교육을 진행했고 올해 하반기에는 전국적으로 확대할 계획이다. 하지만 3시간동안 1회성으로 진행되는 교육은 형식에 그칠 가능성이 높다는 지적이 많다.
그래픽=이지혜 디자이너

◇양부모에게 '파양절차' 가르치는 '입양교육'

그나마 까다롭다는 '특례법상 입양'도 양부모 교육은 8시간에 불과하다. 9회에 걸쳐 27시간 교육을 받은 영국, 7회에 걸쳐 21시간 교육을 받는 스웨덴과 대조적이다. 그나마도 민간 입양기관이 교육을 하고 있어 제대로 이뤄지고 있는지 확인이 어렵다. 실제 은비의 사례에서 양부모는 입양 기관의 원장에게 개인적인 설명을 들은 것으로 교육을 대체한 것으로 드러났다.

교육 내용도 문제로 지적된다. 주요 입양기관의 양부모 교육 과정에는 '파양의 요건과 절차'에 대한 내용이 포함돼 있다. 노혜련 숭실대 사회복지학부 교수는 "아동 보호를 위한 '완전입양'은 친부모와 모든 혈연관계를 완전히 단절하기 때문에 파양은 원칙적으로 불가능하다"며 "교육 내용에 파양의 요건과 절차를 넣는 것은 양부모에게 아동을 키우다 힘들면 파양해도 된다는 잘못된 메시지를 전달할 수 있어 삭제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노 교수는 "일회성 교육으로는 예비 양부모가 입양 후 겪을 수 있는 수많은 어려움을 알고 입양을 신중히 결정하고 준비하기 부족하다"며 "공적 기관에서 입양 교육의 내용 등에 대해 입양아동과 가정 특성을 고려한 세분화된 표준안을 만들고 전문 강사가 교육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입양보다 중요한 것…친부모와 아이가 함께 살 수 있도록 하는 것

전문가들은 입양제도 개선 이전에 더 중요한 것은 '아이가 친부모와 함께 살 수 있는 방안을 찾는 것'이라는 데 의견을 모았다. 위원회 조사에 따르면 미혼모였던 은비 엄마는 아이를 키우려 2년여간 고군분투했다. 아르바이트와 학업을 병행하며 혼자 아이를 키우기는 역부족이었던 은비 엄마는 입양을 보내면 아이가 더 잘 살 수 있다는 말에 입양을 결정했다. 이후 은비가 뇌사 상태에 빠졌다는 소식을 듣고 입양을 취소하려 했지만 병원비를 내야 한다는 입양 기관의 말이 발목을 잡았다. 포천 사건 친모 역시 이혼 후 양육비를 전혀 받지 못했고 생활고를 이기다 못해 입양을 결정했다.

목 전 대표는 "아이를 입양 보내기 전 친부모가 양육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방안을 먼저 검토해야 한다"며 "아이에게 입양이 최선인지 판단할 수 있는 공적 심사를 거쳐 입양이 시작돼야 한다"고 말했다. 또 "미혼모나 미혼부가 아이를 양육하고 자립할 수 있도록 지원해야 한다"며 "주거안정, 자립교육, 아이 돌봄서비스, 심리 상담 등 생활안정시스템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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