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K그룹 최태원 회장 /사진=김창현 기자

최태원 SK그룹 회장이 지난해 2월 박근혜 전 대통령을 독대한 자리에서 동생 최재원 SK 수석부회장의 가석방을 넌지시 부탁한 것으로 확인되고도 처벌을 받지 않아 그 배경에 관심이 쏠린다.

26일 법조계에 따르면 최 회장은 지난 22일 박 전 대통령과 최순실씨 등의 공판에 증인으로 출석해 박 전 대통령과 삼청동 안가에서 독대한 당시 상황에 대해 설명했다. 증언에 따르면 그는 박 전 대통령에게 “저는 잘 지내고 있습니다만 저희 집이 편치 않다. 동생이 아직 못 나와서 제가 조카를 볼 면목이 없다”고 말했다. 동생인 최 수석부회장의 가석방을 부탁한 셈이다.

그러나 박 전 대통령은 최 회장의 부탁에 이렇다 할 답을 주지 않았고, 최 회장 역시 더 이상 동생 이야기를 꺼내지 않았다. 이들은 이후 투자와 고용 등 경영 현안과 관련한 문제에 대해서만 대화를 주고 받은 것으로 조사됐다.

검찰은 박 전 대통령을 제3자 뇌물수수 등의 혐의로 기소하면서 최 회장은 재판에 넘기지 않았다. 박 전 대통령이 최 회장의 부탁을 들어주는 대가로 K스포츠재단의 체육인재 해외전지훈련 예산 명목으로 89억원을 추가로 지원해 달라고 요청했지만 최 회장이 이를 거절한 탓이다.

뇌물죄는 금품을 요구하기만 해도 성립한다. 이 경우 금품을 주기로 약속한 사람도 처벌될 수 있다. 실제로 오간 금품이 없더라도 공여자와 수수자 모두 대가성이 있는 금품을 주고받기로 약속한 정황이 인정된다면 처벌을 받을 수 있다는 뜻이다.

최 회장의 경우 지난해 2월 박 전 대통령과 단독으로 면담한 뒤 K스포츠재단 사업과 관련해 총 89억원을 지원해 줄 것을 요구받았다. 특히 그 중 50억원은 최씨가 소유한 것으로 알려진 독일의 비덱스포츠로 직접 송금해줄 것을 요청받았다.

그러나 당시 SK 측은 명시적으로 금품을 주겠다는 의사는 밝히지 않은 것으로 파악됐다. 오히려 SK 측은 “사업 실체가 불분명하다”는 등의 이유로 난색을 표했고, 이후 협의를 통해 당초 요구보다 적은 30억원을 지원하려 했다가 최종적으로 지원을 거절했다. SK 측이 명시적으로 요청을 거절한 만큼 최 회장의 행위가 뇌물공여죄의 구성요건에 해당하지 않는다는 것이 검찰 입장이다.

만약 최 회장이 박 전 대통령에게 동생의 가석방과 관련한 언급을 한 시점이 지난해 12월 이후였다면 이야기가 달라질 수 있다. 이른바 ‘김영란법’으로 불리는 ‘부정청탁 및 금품 등 수수의 금지에 관한 법률’(청탁금지법)이 지난해 11월30일부터 시행됐기 때문이다. 청탁금지법은 기존 형법상 뇌물죄 등과 달리 부정한 청탁을 하기만 해도 처벌토록 규정하고 있다.

청탁금지법 제5조는 ‘누구든지 직접 또는 제3자를 통해 직무를 수행하는 공직자 등에게 부정청탁을 해서는 안 된다“고 적시하고 있다.

그러나 최 회장이 박 전 대통령과 독대를 한 시점이 청탁금지법이 시행되기 전인 지난해 2월인 만큼 이 행위를 소급해 청탁금지법으로 처벌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법령에서 예외적으로 소급 처벌에 대한 규정을 두고 있지 않은 경우 법이 생기기 전의 행위는 처벌하지 않는 것이 원칙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