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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클리

[서초동살롱] '불금'에 느닷없는 문자 "변호사님, 내일 찾아갈께요"

[the L] 잦은 연락 '진상' 의뢰인에 혹사 당하는 변호사들…경쟁 치열해진 탓

/그래픽=이지혜 디자이너

# 법학전문대학원(로스쿨) 출신 변호사 A씨는 최근 시도 때도 없이 울리는 휴대폰 때문에 밤에도 잠을 잘 이루지 못합니다. "변호사님∼"으로 시작하는 의뢰인 B씨의 문자메시지가 하루에도 대여섯통 이상 오기 때문입니다. 잊을만 하면 전화도 한번씩 옵니다.

변호사가 한 의뢰인의 사건만 맡는 경우는 흔치 않죠. A씨도 현재 3건 이상의 사건을 맡고 있습니다. 이 탓에 B씨에게만 집중할 수 없는 상황입니다. 다른 일을 하다가 쌓여 있는 B씨의 문자메시지에 뒤늦게 답변을 하곤 합니다. B씨 입장에선 A씨의 응대가 마음에 들지 않을 수 있죠. B씨는 어느 금요일 밤 A씨에게 이렇게 문자메시지를 보냈다고 합니다. "변호사님, 제가 그냥 서류 들고 내일 찾아뵙고 설명드릴게요."

최근 젊은 변호사들 사이에선 B씨처럼 자주 연락을 하는 의뢰인들을 속되게 일컫는 '잔잔한 진상'이라는 말이 유행처럼 돌고 있다고 합니다. 밤과 낮, 주말을 가리지 않고 사건에 대해 문의를 하거나 자신이 수집한 자료를 전달하는 의뢰인들이 늘어났기 때문입니다. 심지어 명절 연휴에도 전화를 하는 의뢰인들이 있다고 하는데요. 이 때문에 명함에 휴대폰 번호를 적지 않거나 업무용 휴대폰과 개인 휴대폰을 따로 사용하는 변호사들도 늘어나는 추세라고 합니다.

이 같은 의뢰인들의 무리한 요구는 어제오늘의 일이 아닙니다. 중견 로펌에서 10년 넘게 근무하고 있는 한 변호사는 "진상 의뢰인은 언제나, 어디에나 있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심지어 "사무실 밖에서 만나자"며 변호사에게 추파를 던지는 의뢰인이나 윽박을 지르고 소리를 치는 의뢰인들도 허다하다는데요. 사건이 끝난 뒤 만족할 만한 결과를 얻지 못했다며 수임료를 제대로 치르지 않은 의뢰인들도 있다고 합니다.

남들이 보기엔 화려해 보일 수 있어도 사실 대부분의 변호사들은 격무에 시달립니다. 한 설문조사에 따르면 주당 법정근로시간(40시간)을 넘겨 일한다는 변호사가 90%를 넘는 것으로 집계됐습니다. 야근은 다반사고, 주말에 출근하는 경우도 많습니다. 근로계약서를 제대로 작성하지 않는 경우도 있습니다. 법을 다루는 변호사들이 오히려 법의 보호를 받지 못하는 셈인데요. 

법조계 관계자들은 최근 부쩍 무리한 요구를 하는 의뢰인들이 늘어난 이유를 변호사 시장의 경쟁이 치열해진 데서 찾았습니다. 서초동의 한 변호사는 "변호사 2만명 시대에 돌입하면서 경쟁이 매우 심해졌다"며 "이 때문에 변호사들이 의뢰인들에게 더 친절히 응대를 해야 한다는 강박관념이 생겼고, 이를 악용하는 진상 의뢰인들이 더 많아지는 것 같다"고 말했습니다. 이어 "예전에는 의뢰인들에게 다소 뻣뻣하게 대하는 변호사들도 있었는데 지금은 전혀 그럴 수가 없다"고 덧붙였습니다.

의뢰인들이 인터넷 등을 통해 다양한 법률정보를 쉽게 얻을 수 있게 된 점도 한가지 원인으로 꼽힙니다. 변호사를 믿고 따르는 것이 아니라 능동적으로 구체적인 요구들을 한다는 것인데요. 한 법조계 관계자는 "과거의 변호사들은 법률전문가로서의 위치가 공고했지만 지금은 그렇지 않다"며 "최근 의뢰인들은 다양한 방법으로 자신의 사건과 관련한 각종 법률정보를 수집해 변호사를 찾는 경향이 있다"고 했습니다.

요즘 변호사 업계에선 '변호사 하기 점점 팍팍해진다'는 푸념이 나온다고 합니다. 갈수록 경쟁이 치열해지는 상황에서 의뢰인들의 무리한 요구까지 늘어나기 때문이겠죠. 한 40대 변호사는 "쉬는 날 의뢰인 전화까지 받을 이유는 없는 것 같다"며 "긴급한 일이 아니면 업무시간에 상담을 할 수 없다고 냉정하게 말하되 최선을 다해 사건을 처리해주는 자세를 보여주면 될 일"이라고 조언했습니다. 그러면서 "일한 시간 만큼 보수를 받은 '타임차지'(time charge·시간제 보수) 방식이 널리 확산되면 진상 의뢰인들의 문제도 일부 해결될 것"이라고 덧붙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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