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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L 리포트

'한국형 플리바게닝'…정의의 무기? 악마의 거래?

[the L 리포트] "거악 척결·진실 규명" 기대 vs "본인 범행 축소·허위진술" 우려



이른바 '한국형 플리바게닝'(Plea Bargaining·유죄협상제도) 도입 논의가 수면 위로 떠올랐다. 도입 여부를 놓고 법조계에선 찬반이 엇갈린다. 거악 척결과 진실 규명을 위해 도입해야 한다는 주장과 수사편의를 위한 남용 또는 공판중심주의 무력화 등이 우려된다는 주장이 맞서고 있다.

28일 법조계에 따르면 검찰개혁위원회는 조만간 '사법협조자 소추면제'(형벌감면) 제도의 세부안을 마련, 검찰에 도입 추진을 권고할 계획이다.  

검찰개혁위의 도입안에 따르면 이 제도의 적용 요건은 △5대 중요부패범죄에 해당하는 범죄일 것△피의자의 진술이 '타인(조직)의 범행'에 대한 진술일 것 △'타인의 범행'이 자신의 범행과 관련되어 있을 것 △피의자의 진술이 전체(조직) 범죄 규명에 기여하는 진술일 것 △피의자와 변호사, 검사 3자의 제도 적용에 대한 합의가 있을 것 △3자의 합의에 대한 법원의 승인이 있을 것 등이다. 이 같은 요건을 만족할 경우 진술을 한 피의자에 대한 기소를 면제해준다는 것이 골자다.

영미법계에서 플리바게닝(유제협상제도)의 요건은 '자신의 범행에 대한 고백' 한가지다. 해외의 플리바게닝은 협상을 통해 자신의 범행에 대한 죄를 스스로 인정하고 그 보답으로 형사처벌의 감면혜택을 약속받고, 곧장 기소인부절차에 따라 증거조사가 생략되고 곧바로 양형절차로 이전돼 재판을 신속하게 종결하게 되는 제도라는 점에서 검찰개혁위가 권고할 예정인 한국형 제도와는 구조가 다소 다르다.

◇"거악 척결·진실 규명" 기대

제도 도입의 가장 큰 명분은 '거악 척결'이다. 이른바 '깃털'을 처벌하지 않더라도 그의 자백이나 증언확보를 통해 '몸통'을 효과적으로 적발하여 처벌하는 것이 합목적적이고 실용적이라는 주장이다.

지능화되고 은밀화하게 진화하는 범죄실정에 대한 대처가 시급한 사회환경에서 조직범죄, 부패범죄, 구조적 범죄의 경우 그 증거를 발견하기란 쉽지 않기 때문에 내부가담자의 협조가 관련 범죄의 정보취득에 절대적으로 중요하고, 구체적 증거확보에 많은 도움을 줘 거악 척결의 단초를 마련할 수 있다는 것이다.

검찰개혁위 관계자는 "구조적·조직적 부패 범죄 척결을 위해 검찰의 유죄 입증부담을 크게 줄이는 효과가 있다"며 "다수인이 은밀하게 저지른 중대부패범죄의 경우 물증과 상당한 정황을 확보하고서도 진술이 없어 몸통을 처벌하지 못하는 사례가 없도록 인권침해의 요소가 적은 방식으로 진술을 유도해 증거를 취득할 수 있도록 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검찰은 제도의 도입 대상인 △뇌물 △알선수재 △알선수뢰 △배임 △횡령 등 중대부패범죄는 대부분 은밀하게 이루어져 가담자 이외에는 범죄의 직접적인 증거를 제공받기 어려운 경우가 대부분이라 내부가담자의 진술을 이끌어내기 위해 제도적으로 혜택을 부여할 필요성이 절실하다는 입장이다.

형사사법자원 운영 면에서도 경제성과 효율성을 추구할 필요가 있다는 것도 검찰의 주장을 뒷받침하는 논거다. 고등법원의 한 판사는 "사건이 많은 이상 검찰이 봐주기 식으로 장난치는 경우만 법원이 적절하게 통제할 수 있는 수단이 마련된다면 긍정적으로 검토해볼 만한 의견"이라며 "법원에서 승인하지 않을 경우 다시 정식으로 재판절차 거치도록 하는 식의 통제장치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본인 범행 축소·허위진술" 우려…'몸통'이 먼저 불면?

그러나 우려도 적지 않다. 우선 이 제도가 범죄의 실체적 진실발견과 사법정의 실현을 위한 최후수단이어야 함에도 검찰이 수사편의상 최우선 순위로 고려되는 수사 방법이 될 가능성이 높다는 비판이 제기된다. 형사소송의 기본 원칙인 검사의 거증책임은 물론 공판중심주의를 형해화시킬 수 있다는 것이다.

특히 현재 기소편의주의에 의한 검사의 재량권 행사가 경한 범죄에서 행해지는 상황에서 제도가 도입될 경우, 검사가 중대부패범죄에까지 합법적으로 사법협조자에게 형벌감면을 결정할 수 있어 이른바 불기소재량이 합법적으로 확대될 것이라는 비판도 나온다. 재경지법의 한 판사는 "검찰의 기소권 남용으로 이어지지 않을까 하는 걱정이 든다"며 "수사에 협조해줬다고 해서 죄질이 좋지 않은 사람을 다른 혐의로 의율할 수 있음에도 기소조차 안하거나 하는 부분"이라고 우려했다.

게다가 범행에 주도적 역할을 수행한 정범이 오히려 종범에게 책임을 전가시키고 법망을 피할 여지도 있다. 이른바 사법협조자의 선정기준은 주된 피고인에 비해 주변적인 역할을 수행해 형사책임이 가벼운 자가 선정되어야 할 것인데, 이른바 맨 '윗선'이 면책특권을 조건으로 진술한다면 제도의 취지를 왜곡하는 결과가 발생하는 셈이다. 또 사법협조자들이 형사면책을 받기 위하여 전반적으로 자기범행은 축소·누락하는 반면 공범의 범행을 과장하거나 왜곡하고, 심지어 무고한 제3자를 범인으로 지목할 가능성도 높다. 진술하는 자가 여러 명이라면 누가 제도의 특혜를 받을 것인지 그 기준이나 순서, 방법에 대해 형사소송법상 명시적으로 규정할 필요도 있다.

아울러 플리바게닝과 마찬가지로 피해자가 아예 배제된 상태에서 사법거래가 이루어진다는 비판도 제도 도입의 걸림돌이다. 한 전관 출신 변호사는 "범죄자임에도 불구하고 사법협조를 이유로 형사책임을 감면하고 있어 일반국민의 법감정에 부합하지 않는다는 점이 있다"고 말했다.

이 때문에 검찰개혁위 내부에서도 세부안에 대해 찬반이 갈린다. 검찰개혁위 관계자는 "기소법정주의 보완사항으로 도입되는 것이라 세부안 작성에 시간이 다소 걸릴 수 있다"고 말했다.

◇미국·독일 이어 일본도 도입

미국은 사법협조자에 대한 형벌감면과 관련해 '면책조건부 증언취득제도'를 도입하고 있다. 면책조건부 증언취득제도는 증언거부권을 근거로 진술을 거부하는 자에게 국가가 일방적으로 증인에게 형사처벌을 하지 않겠다는 보장을 해줌으로써, 증인으로 하여금 증언거부권을 행사할 수 있는 여지를 제거한 후, 증언을 강제하는 제도다.

미국에서는 수정헌법 제5조의 자기부죄거부특권, 즉 '누구든지 형사사건에 있어서 자기에게 불리한 증언을 하도록 강요받지 아니한다'는 기본권을 통해 증언을 거부할 수 있는데, 법원의 판단으로 형사처벌위험을 제거해 증언을 하도록 하는 것이다.

독일은 지난 2009년 9월 개정형법에 '중대한 범죄행위의 사건규명 및 방지를 위해 협조를 한 증인에게 그 형을 감경 또는 면제할 수 있'다는 내용의 형법 제46조의b조를 신설했다.

피고인이 자신과 관련된 범죄에 대한 진술로 수사기관이 다른 자의 범죄를 규명할 수 있도록 자발적으로 증인으로 나서 협조할 경우 법원이 임의적으로 형벌을 감면해주는 제도다. 내란·외환, 범죄조직을 통한 절도·장물취득, 강간, 아동성폭행 등 이른바 중대범죄행위에 한하고 피고인은 자신에게 분담된 범죄기여행위를 넘어선 부분까지 진술해야 한다.

일본은 내년 5월부터 형사소송법 제350조의2 이하에 수사·공판협력형 합의제도라는 이름으로 형벌감면제도를 시행한다. 피의자나 피고인이 증거나 정보를 제공하여 제3자에 대한 다른 사건의 수사․공판에 협력하는 대가로 자신에 대한 사건에 대해서는 불기소, 가벼운 형의 구형을 하는 형태로 가벼운 처분을 얻는 제도다.

일본 형사소송법은 '검사는…특정범죄의 피의자 또는 피고인이 그 특정범죄와 관련된 타인의 형사사건…에 대해… 필요하다고 인정할 때, 피의자 또는 피고인이 타인의 형사사건에 대해…행위를 하고…합의할 수 있다'라는 문구로 제도를 구체화시켰다. 제도가 적용되는 '특정범죄'는 공무집행방해죄와 공문서위조죄, 사문서위조죄, 증수뢰죄, 사기, 배임, 횡령, 공갈 및 주로 약물 ․ 총기범죄를 중심으로 하고 조직범죄로 이뤄질 가능성이 높은 범죄와 재정경제범죄 등이다.

국내에서 비슷한 제도를 찾자면 독점규제 및 공정거래에 관한 법률(공정거래법)상의 리니언시(leniency) 제도가 유사하다. 가격담합행위에 있서 자진신고자에 대해서는 과징금을 감경 또는 면제할 수 있도록 인센티브를 부여하는 제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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