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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클리

성균관대는 어떻게 성추행 피해자를 내쫓았나

[the L] [그일, 그 후] 남정숙 전 성균관대 교수 "성추행 말하자 '덮자'…학교 이미지 실추시켰다 경고까지"

편집자주"꽃뱀 아니야?" "왜 이제야 말해?" 성폭력을 고발한 피해자들에게 되돌아오는 질문 중 하나입니다. '#미투'( Me Too) 라는 이름으로 피해자들이 자신의 이야기를 꺼내놓기 시작했지만, 여전히 한편에서는 이들을 의심스러운 눈으로 바라보는 이들이 있습니다. 성범죄 기사가나오면 사람들은 '반짝' 관심을 보이지만, 어느덧 시간이 지나면 기억은 잊혀집니다. 하지만 그 이후에도 당사자들의 삶은 계속돼죠. '그 일'을 말한 후 이들은 어떤 삶을 살고 있을까요? '진실'은 밝혀지고, 이에 맞는 결과가 나왔을까요? '그일, 그 후' 이들의 삶을 살펴보려고 합니다. 이들의 삶 안에서 피해자가 참았던 이유를, 말하기 망설였던 이유를, 오랜 시간이 지나고도 잊지 못하고 말할수밖에 없었던 이유를 찾아보려 합니다. 제보도 받습니다. 성폭력 피해자가 된 이후, 당신은 어떤 삶을 살고 계시나요. 당신의 이야기를 기다립니다. (tanbbang15@mt.co.kr)
동료 교수에게 성추행을 당했다고 폭로한 남정숙 전 성균관대 교수가 5일 서울 성균관대에서 1인 시위를 벌이고 있다/사진=남정숙 전 성균관대 교수(현 인터컬쳐 대표)

"혹시 사진도 찍나요? 인터넷에 사진을 보고 외모 지적하면서 진짜 성추행당한 것 맞냐고 욕하는 사람들도 있더라고요. 사진 잘 나오게 화장이라도 해야 하나 해서요."

인터뷰를 앞두고 농담처럼 던지는 남정숙 전 성균관대 교수(현 인터컬쳐 대표)의 말끝이 맵다. 성폭력 피해자는 피해 사실을 밝힌 후 '추행을 당할만한 외모'인지 평가까지 받는다.

지난달 14일 남 전 교수를 성추행한 혐의로 같은 대학 교수 A씨가 1심에서 유죄 선고를 받았다. 재판부는 벌금 700만원과 40시간의 성폭력 치료프로그램 이수를 명령했다. 앞서 정신적 고통에 따른 손해배상 청구 소송에서도 법원은 위자료 700만원을 지급하라고 선고했다. 민·형사 소송에서 모두 법원은 남 전 교수의 손을 들어줬다.

이 선고를 받기까지 2년 8개월이 걸렸다. 그 사이 남 전 교수는 2004년부터 섰던 성대 교단에 더이상 설 수 없게 됐다. 성대 동료 교수 누구와도 연락하지 않는다. 남 전 교수가 12년간 쌓아온 삶과 교수라는 꿈이 성추행 피해를 말한 순간 사라졌다.

◇학생 투서로 시작된 성추행 사건…가해자 "학교가 걱정말라니 경위서나 써달라"

시작은 학생들의 투서였다. 당시 성대 문화융합대학원장이었던 A교수가 대학원장으로 연임된다는 소식이 알려지자 2015년 2월 몇몇 학생들이 A교수가 성추행을 일삼았다는 내용의 투서를 학교에 보냈다. 남 전 교수와 또다른 여교수, 그리고 대학원생 등이 피해자로 지목됐다.

"A교수가 전화해서 '투서는 학교에서 걱정하지 말라고 한다. 경위서나 잘 써달라'더라고요. 실명이 적힌 투서를 경위서 한 장으로 해결한다는게 좀 이상했는데, 나중에 들으니 학교에서 '여교수 추행건은 없었던 일로 하자'고 했다더라고요."

A교수의 성추행은 새삼스러운 일은 아니었다. 학생들 앞에서 '남 교수와 둘이 잘테니 방을 따로 잡아라'는 식의 언어적 성희롱부터 어깨를 감싸는 등 강제추행까지 2011년부터 수년간 이어졌지만 남 교수는 참았다.

"교수가 되고 싶었어요. 제 꿈이 이론과 실무를 겸비한 문화기획자를 양성하는 거였거든요. 문제를 만들고싶지 않았어요. 처음에는 이런 일로 이름이 알려지는 것도 창피했고, 왜 투서에 내 이름이 들어갔나라는 생각도 했어요. 그런데 학교가 점점 이상해지더라고요."

처음 사건 소식을 듣고 남 전 교수는 학교를 믿었다. 동료 교수에게 "학교에서 남 교수가 기획한 일로 몰아가려 하니 조심하라"는 얘기를 들었을 때도 그럴리 없다고 생각했다.

"부총장이 연락해 밥을 사며 '없던 일로 하자'고 했지만 그럴 수는 없다고 했어요. 학생들이 걸려있는 일이니까요. A교수가 '남 교수가 대학원장이 되려고 꾸민 일'이라 말하고 다닌다는 얘기도 들었지만 학교를 믿었죠."

◇조사 시작 후 이상한 학교의 대응 "좋은게 좋은거니 덮자"

학교는 '진상조사 후 대처하겠다'고 했지만 분위기는 이상하게 흘러갔다고 남 교수는 말했다. 함께 피해자로 지목된 여교수는 '없던 일로 하겠다'며 선을 그었다. 학교는 사진까지 대조해가며 익명 투서를 낸 학생을 색출하려 했다. 조사위원회에서는 '학생들을 이용하지 말라'며 '좋게 넘어가자'고 했다고 남 전 교수는 기억한다. 

"잘못한 사람을 처벌하는게 맞는데 왜 나에게 이럴까 처음에는 이해가 안됐어요. 주변에서 그러더라고요. 가장 약한 고리가 나라고. 피해자로 함께 지목된 여교수는 전임 교수였고, 전 매년 계약을 갱신하는 대우교수였어요. 학생들은 분위기가 험해지자 숨어버렸고, 결국 나에게 모든 책임을 묻고 정리하려던 거였겠죠."

2월 투서로 시작된 사건은 5월까지도 해결되지 않았다. 오히려 학교는 남 전 교수의 강의를 다른 교수에게 넘겼다. 더이상 학교의 도움을 기대하기 힘들게 된 남 전 교수는 학교 안팎의 관련 단체들을 찾아 도움을 요청했다.

가장 먼저 찾은 민교협(민주화를 위한 전국 교수 협의회) 소개로 당시 성균관대 지회 여성 회원인 정현백 당시 사학과 교수를 만났다. 남 전 교수는 "성추행 사실을 얘기하자 '학교 망신인데 덮고 가라'고 했다"고 말했다. 정 교수는 현재 여성가족부 장관으로 재직 중이다. 

"정 장관은 여성 단체 등을 소개시켜줬다고 하는데 여성 단체 등은 제가 수소문해서 찾아다녔어요. 그런데 실질적인 도움을 주는 곳을 찾기는 힘들더라고요."

◇"여가부에 고발하자 '고발은 인권센터에 하라'고 하더라"

정부 기관 역시 도움이 되지 못했다. 남 전 교수는 "여성가족부에 고발하자 '여가부는 통계와 연구기관이니 고발은 인권센터에 하라'는 답을, 교육부에 도움을 요청하자 '성대에 연락해보니 잘 해결했다고 한다'는 답을 들었다"고 말했다. 수십여곳의 문을 두드린 끝에 한국여성변호사회에서 법률 지원이 가능하다는 답을 얻었다. 결국 사건 발생 4개월 만인 2015년 6월 민형사 소송을 냈다.

"소송까지 할 생각은 없었어요. 그래서 형사 고소는 끝까지 고민했죠. 학교 안에서 해결되길 바랬는데 답이 없더라고요. 주변에서도 다 말렸어요. 학교를 상대로 해봤자 너만 힘들다고. 하지만 잘못된 구조를 밝히고 싶었어요. 가해자도 잘못이지만 이미 문제가 드러났는데도 덮으려는 학교, 이를 방조하는 주변 사람들이 오히려 문제를 더 키우고 있다는 것을요. 또 여성계나 문화계에 안좋은 선례를 남기고 싶지도 않았어요. 피해자 개인에 책임을 지워 잘라버리고 가해자와 주변 인물들은 오히려 조직에서 살아남는 구조, 이건 잘못된 거잖아요."

언론 제보로 사건이 기사화되기도 했지만 달라진 것은 없었다. 오히려 학교는 "비밀 준수가 중요한 징계위원회 과정을 무단 녹음해 법정에 제출하고, 언론에 제보해 학교 이미지를 실추시켰다"며 남 전 교수를 탓했다. 유명 사립대의 교수 성추행 사건은 반짝 세간의 이목을 끌었지만 곧 사라졌다.

진짜 싸움은 그후 시작됐다. 그해 9월 연구실에 들어가려던 남 전 교수의 출입 카드가 작동하지 않았다. 그때 학교가 사전 통보도 없이 연구실을 폐쇄했다는 사실을 알게됐다. 짐을 정리할 시간도 없었다. 석 달 뒤인 12월 학교는 기간 만료를 이유로 남 전 교수와 계약을 해지했다. 그렇게 남 전 교수는 교단을 떠났다. 그 사이 가해자인 A교수는 '정직 3개월'의 징계를 받고 교단에 복귀했다.

◇"단계별 피해자 지원할 공적 기구 필요…교육 시스템 먼저 변해야"

"혼란스러웠어요. 나는 옳은 일을 하고 있는데 왜 사람들은 저 가해자 편에 설까, 내가 비정상인가 하는 생각이 많이 들었죠. 지금에서야 내가 정상이었구나 생각해요."

남 전 교수는 가해자보다 외면하는 주변인들의 모습이 더 힘들었다고 말했다. 학교와 맞서자 믿었던 동료들은 등을 돌렸고 아꼈던 학생들은 보이지 않았다. 일부 동료 교수들은 남 교수가 재임용을 위해 꾸민 일이라는 소문을 내기도 했다. 

"문화기획으로 성공할 줄 알았는데 제가 투사가 돼있더군요. 한 번도 투사가 되리라 생각한 적이 없는데. 열심히 살았는데 성추행 피해를 말하고 끝까지 싸웠다는 이유 때문에 한 순간 갈 곳이 없어지더라고요."

남 전 교수는 35년여를 문화기획자로 일하며 수많은 축제를 기획했다. 문화마케팅이라는 단어조차 생소하던 시절부터 집필한 관련 저서와 논문만 수십건에 달한다. 이같은 경력을 인정받아 남 전 교수는 대우교수로 위촉됐다. 하지만 성추행을 당하고, 피해 사실이 알려지자 학교 밖으로 쫓겨났다. 이를 계기로 남 전 교수에게는 새로운 목표가 생겼다.

"성폭력 없는 교육 시스템을 만드는게 제 최종 목표에요. 교육은 전국민의 통과의례잖아요. 여성 중에 대학, 석박사 과정을 거치며 성폭력 안겪는 사람이 있을까요? 다 겪어요. 이제 그만 끝내야 해요. 피해자 지원도 생각하고 있어요. 막상 당하니 어떻게 해야할지 아무 것도 모르겠더라고요. 여전히 어쩔줄 몰라하는 이들이 있겠죠. 방법을 알려주고 도와주고 싶어요."

남 전 교수는 끝까지 학교의 책임을 물을 생각이다. 학교 앞에서 1인 시위를 시작했다. 남 전 교수가 1인 시위를 시작하자 함께 하겠다는 이들이 옆에 섰다. 혼자서 3년여 되는 시간을 싸웠지만 이제 혼자가 아니다.

"권력형 성폭력은 이에 동조하는 이들이 있기 때문에 가능해요. 이에 대응하기 위해서는 연대해야 돼요. 그리고 꾸준히 문제제기를 해야죠. 피해 단계별로 필요한 지원이 달라요. 이를 수행할 객관적이고 독립적인 공적 기구 마련이 가장 시급하다고 생각합니다. 이제는 정말 바뀌어야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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