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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회가 진상규명·법관 탄핵할 수도"…발 빼는 사법부

[the L]

재임 시절 일어난 법원행정처의 '재판거래' 파문에 휩싸인 양승태 전 대법원장이 1일 오후 경기 성남시 수정구 자택 인근 놀이터에서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사진=이동훈 기자

'재판 거래'와 '판사 블랙리스트' 등 양승태 전 대법원장 시절 '사법농단' 의혹에 대한 형사조치 문제를 놓고 내홍을 겪고 있는 사법부에서 국회로 공을 넘기는 방안까지 거론되고 있다. 검찰 대신 국회가 국정조사 등을 통해 진상을 규명하고 관련 법관을 탄핵하는 것도 대안이 될 수 있다는 주장이 나온다.

민중기 서울중앙지방법원장은 8일 기자들과의 오찬 간담회에서 "대법원장은 인사권을 갖고 있고 최종심을 심의하는 사람 중 하나인데 수사 의뢰 또는 고발을 하는 것은 조심해야 한다"면서 "수사가 시작되면 재판부가 수사 대상이 될 텐데 어떻게 감당하겠느냐"며 검찰 수사에 부정적인 입장을 밝혔다. 

이어 "소장 판사들과 노장 판사들의 의견이 갈라지는 것처럼 말하지만 사실 큰 틀에서는 같은 방향"이라며 "다만 검찰이든 국정조사든 외부 기관이 진상규명을 해야 한다는 걸 강조하거나 재판과 관련된 내용이니 직접 고발이나 수사의뢰는 신중하자는 입장이 있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국회가 나서서 진상규명을 하는 방법이 있다"며 "내부적인 징계는 정직까지가 한계인 만큼 국회가 조사를 하고 문제가 있는 법관은 헌법상 탄핵을 할 수 있다"고 했다. 검찰 수사와 기소 대신 국회의 국정조사와 관련자 탄핵소추를 대안으로 제시한 셈이다. 진보 성향의 법관 모임 '우리법연구회' 출신인 민 법원장은 올초 대법원 추가조사위원회의 위원장을 맡아 사법행정권 남용 의혹에 대한 2차 조사를 이끈 바 있다.

전날 전국 각급 법원장 등 36명은 서울 서초구 대법원에서 전국법원장 긴급 간담회를 열고 "사법부에서 고발·수사의뢰 등의 조치를 취하는 것은 적절하지 않고, 합리적인 근거 없는 이른바 ‘재판거래’ 의혹제기에 대하여 깊이 우려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대법원이 직접 고발 또는 수사의뢰를 할 경우 범죄 혐의에 대한 예단을 드러내 이후 수사 및 재판 과정에서 사법부의 독립성이 침해될 수 있다는 점이 주된 근거로 거론됐다. 

차관급 고위 법관들로 이뤄진 서울고법 부장판사회의도 지난 5일 "사법행정을 담당하거나 자문하는 기구가 형사고발, 수사의뢰, 수사촉구 등을 할 경우 향후 관련 재판을 담당하게 될 법관에게 압박을 주거나 영향을 미칠 수 있다"며 형사조치에 사실상 반대하는 입장을 냈다.

반면 부장판사급 이하 소장파 법관들은 판사회의를 통해 주로 고발 또는 수사의뢰 등 형사조치가 필요하다는 취지의 입장을 내면서 '사법농단' 사태가 법원의 신구(新舊) 갈등으로 비화되고 있다.

한편 김명수 대법원장은 이날 출근길에서 기자들과 만나 "원칙적으로는 법원 내에서 해결하는 것을 제일 중요한 한 부분으로 생각하고 있다"고 말했다. 검찰 수사 뿐 아니라 법원 자체 해결의 가능성까지 모두 열어두고 있다는 뜻으로 풀이된다. 그러나 김 대법원장은 '검찰 수사의뢰 등은 하지 않겠다는 의미냐'는 취재진의 질문에는 "그런 뜻으로 생각할 필요는 없고, 기본 마음가짐은 그렇다는 뜻"이라고 설명했다. 

김 대법원장은 오는 11일 전국법관대표회의의 논의 결과를 지켜본 뒤 양 전 대법원장 시절 사법농단 의혹에 대한 형사조치 여부를 최종 결정할 예정이다. 앞서 열린 전국법원장간담회과 사법발전위원회에선 고발과 수사의뢰 등 형사조치에 반대하는 의견이 다수였지만, 소장파 법관 중심의 전국법관대표회의에선 형사조치를 촉구하는 입장이 나올 공산이 크다. 

앞서 대법원은 지난 5일 양 전 대법원장 시절 작성된 법원행정처 문건 98건을 원문으로 공개했다. 이 문건들에는 법원행정처가 상고법원 도입에 반대하는 판사들의 활동과 재산 내역 등까지 사찰하고 반대 의견 표출을 억누르려 한 정황이 담겨 있다. 또 사법부가 상고법원 도입에 청와대의 도움을 받기 위해 "직간접적으로 대통령과 청와대에 힘을 보태 온 사례"라며 △KTX 승무원 정리해고△철도노조 파업 △과거사 국가배상 제한 △이석기·원세훈·김기종 사건 △통상임금 △국공립대학 기성회비 반환 △키코 사건 등을 적시한 문건도 공개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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