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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서초동살롱] 돌아온 디가우저…대법원장 PC의 비밀

[the L] 대법원, 전직 대법원장 PC 데이터 완전 파괴…2014년 하반기 '상고법원 총력전' 당시 디가우저 구입, 단순한 우연?

양승태 전 대법원장이 1일 오후 경기도 성남시 자택 인근에서 '재판거래 의혹' 관련 입장을 발표 후 취재진 질문을 경청하며 굳은표정을 짓고 있다. 2018.6.1/뉴스1 <저작권자 © 뉴스1코리아,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디가우저'(Degausser)라는 단어가 대법원 판결문에 처음 등장한 건 2013년입니다. 이명박정부 시절 국무총리실 공직윤리지원관실의 민간인 사찰 사건에서 증거인멸교사 및 공용물건손상교사 혐의에 대한 유죄 판결문에 적시됐죠. 디가우저란 하드디스크 등 저장장치의 정보를 강력한 자기장을 이용해 복구할 수 없도록 물리적으로 완전히 파괴하는 장비입니다. 국가정보원에서나 쓸 만한 장비죠.

그런 디가우저라는 단어가 2018년 여름 다시 신문 지상에 등장했습니다. 대법원이 전직 대법원장의 PC 데이터를 디가우저로 삭제했다는 겁니다.

검찰은 지난 26일 법원행정처로부터 양승태 전 대법원장과 박병대 전 대법관이 사용했던 컴퓨터 하드디스크의 모든 데이터가 지난해 10월 '디가우징' 방식을 통해 완전히 복구불가능하게 삭제됐다는 사실을 전달받았다고 밝혔습니다. 대법원과 청와대간의 재판 거래·법관 사찰 등 사법행정권 남용 의혹에 대한 수사를 위해 검찰이 대법원에 컴퓨터 하드디스크와 대법관 관용차 운행일지, 업무추진비 내역 등의 임의제출을 요구한지 일주일만에 전직 대법원장의 PC 데이터가 완전히 삭제됐다는 답이 돌아온 겁니다. 양 전 대법원장은 '재판거래' 등 사법농단 의혹의 정점으로 의심받고 있는 당사자입니다. 

대법원은 "관련 규정과 '통상적'인 업무처리 절차에 따라 디가우징한 것"이라고 해명했습니다. 퇴임한 이상훈, 이인복, 박병대 대법관이나 김명수 대법원장 청문회 참여팀의 PC도 같은 절차로 디가우징됐다는 겁니다. 또 양 전 대법원장 PC 디가우징은 대법원장실에서 요청해왔고, 양 전 대법원장이 직접 요청했는지는 확인할 수 없다고 했습니다.

대법원이 디가우징의 근거로 제시한 지침은 다음과 같습니다. "전산장비에 대하여 △사용불능 상태가 되거나 훼손 또는 마모되어 수리하여도 원래의 목적대로 사용할 수 없는 경우 △내용기간 경과 등으로 수리 사용할 수 없거나 수리하여 사용함이 비경제적인 경우에는 물품관리관계법령에 따른 불용품처리절차를 밟아야 한다. 개인용 컴퓨터를 불용처분하여 매각, 양여, 폐기, 해체 등을 할 때에는 모든 자료화일을 완전히 소거조치 해야 한다."

대법원은 대법관 이상이 사용하던 컴퓨터는 '직무 특성상 재사용이 불가능한 장비'에 해당한다며 2009년 개정된 전산장비운영관리지침 제31조 등에 따라 완전히 소거조치해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그러자 법조계에선 의문을 제기합니다. '사용불능 상태'란 적어도 같은 조항에 적시된 '훼손 또는 마모되어 수리하여도 원래의 목적대로 사용할 수 없는 경우'에 준하는, 물리적으로 사용이 불가능해진 것을 말하는 것 아니냐는 겁니다. 또 상위법인 공공기록물관리에관한법률은 '모든 공무원은 법이 정하는 바에 따라 공공기관이 업무와 관련하여 생산하거나 접수한 문서·도서·대장·카드·도면·시청각물·전자문서 등 모든 형태의 기록정보 자료와 행정박물을 보호·관리할 의무가 있다'고 명시하고 있기도 합니다.

게다가 양 전 대법원장 PC가 디가우징된 건 '판사 블랙리스트' 등 김명수 대법원장 취임 이후 사법행정권 남용 의혹에 대한 2차 조사가 시작되기 전이었습니다. 사법농단 사건을 수사 중인 서울중앙지검 특수1부는 이게 증거인멸에 해당하는지 여부를 검토 중입니다.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민변)은 논평을 통해 "대법원의 법원기록물 관리규칙에도 '각급기관은 공식적으로 결재 또는 접수한 기록물을 포함하여 결재과정에서 발생한 수정내용 및 이력 정보, 업무수행과정의 보고사항, 검토사항 등을 기록물로 남겨 관리해야 한다'고 돼 있다"며 "법원행정처 심의관이 지난해 관련문서 2만4500건을 무더기로 삭제한 것처럼 대법원이 증거인멸을 위해 하드디스크를 임의로 훼손한 것 아니냐"고 의심했습니다.

양 전 대법원장의 PC 데이터를 삭제한 디가우저는 지난 2014년 하반기 대법원청사 정보화심의담당실에 도입됐습니다. 공교롭게도 당시는 대법원 사법정책자문위원회에서 상고법원을 설치하자는 건의문을 의결한 뒤 법원행정처가 상고법원 입법화를 최우선 순위 정책목표로 삼고 청와대 등을 설득하기 위해 총력전을 펼치던 시기였습니다. 단순한 우연일까요? 진실이 궁금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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