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고문의 02-724-7792

the L 리포트

피해자 몰라도 합의금만 맡기면 감형한다고?

[the L 리포트] "피해 회복할 길 터줘야" vs "돈으로 사는 감형, 국민정서와 안 맞아"

서울 서초구 대법원 청사 전경./사진=뉴스1

통상 형사사건에선 피해자가 합의를 원하지 않아도 합의금을 공탁하면 처벌이 줄어들고 집행유예 가능성이 높아진다. 다만 공탁을 하려면 최소한 피해자의 인적사항은 알아야 한다.

그러나 앞으로 피해자의 인적사항을 몰라도 합의금을 공탁할 수 있도록 하는 방안이 국회에서 추진되고 있다. 피해자와 합의하긴 커녕 피해자가 누구인지도 모르는 채 합의금을 공탁해도 감형할 경우 피해자가 재판에서 소외되고 국민정서와도 어긋날 수 있다는 우려가 일각에서 제기된다.

29일 법조계와 국회에 따르면 박경미 더불어민주당 의원 등이 지난해 5월 피해자의 인적사항을 알 수 없는 경우에도 사건번호 등을 기재하면 합의금을 공탁할 수 있도록 하는 내용을 골자로 발의한 공탁법 개정안이 현재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에서 심의를 기다리고 있다. 곽상도 자유한국당 의원 등이 지난해 10월 같은 취지로 발의한 개정안도 법사위에 계류 중이다.

공탁은 민사사건에서 주로 쓰이지만 형사사건에서도 사죄의 표시로 상당한 금액을 피해자 앞으로 법원에 맡기면 양형에서 감형 요인으로 작용한다. 양형위원회의 양형기준에 따르면 피해자가 있는 범죄에서 피해자와 합의가 되지 않아도 상당한 금액을 공탁한 경우에는 형이 줄어들 수 있다. 또 이는 집행유예의 긍정적 참작사유에도 해당돼 집행유예가 선고될 가능성도 높여준다.

형사사건 2심에선 다른 사정이 변경되지 않았을 경우 법원은 대개 1심 판결을 그대로 받아들이는 항소기각 판결을 내리지만 공탁이 이뤄졌다면 감형 가능성이 생긴다. 지난달 28일 아들이 사망한 뒤 며느리 A씨를 1년9개월 동안 20차례에 걸쳐 성폭행하고 낙태까지 시킨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70대 남성이 2심에서 감형을 받은 것이 대표적인 사례다. 이 남성은 피해자와 합의는 하지 못했지만 5000만원을 공탁해 1심 징역 7년에서 2심 징역 5년으로 형이 줄었다.

형사사건, 특히 성범죄 사건에서는 피해자가 합의를 거부하는 경우가 많다. 이 경우 공탁을 해야 하는데 인적사항을 몰라 공탁을 하지 못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 가해자에 의한 2차 보복 위험이나 개인정보보호 등의 문제로 형사 사건에서 가해자는 피해자의 신상을 알 수 없게 돼 있다. 피해자에게 변호사 등 고소대리인이 없는 경우라면 연락할 수 있는 통로가 없다.

공탁에 필요한 성명, 주소, 주민등록번호 등을 모르는 경우 아는 것만 적어 공탁을 신청하고 법원으로부터 보정권고서를 발부받아 인적사항을 파악하기도 하지만 이는 민사사건에서 공탁을 처리하는 방식으로, 형사사건은 다르다. 공탁법 개정안이 발의된 건 이런 배경에서다.

이 개정안들의 핵심은 ‘형사공탁의 특례’ 규정을 신설해 피해자의 인적사항을 몰라도 사건번호와 담당 법원 등 일정한 정보만 있으면 합의금을 공탁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변호사들은 대체로 개정안에 찬성했다. 비록 가해자가 피해자와 합의를 못했고 피해자의 인적사항을 몰라도 피해 회복의 길을 열어줘야 한다는 의견이 다수였다. 하희봉 변호사(로피드 법률사무소)는 “피고인이 반성하고 있고 피해자의 피해 회복을 위해 노력하려 한다면 그 방법을 제공해 주는 게 맞다”고 했다.

그러나 공탁은 사실상 감형으로 이어질 수 있는 만큼 신중해야 한다는 의견도 있다. 서초동의 한 변호사는 “피해자의 의사와 무관하게 공탁이 이뤄질 수 있기 때문에 돈을 이용해 형을 줄이는 것은 국민 법감정에 반한다”고 했다. 정현우 변호사(현율 법률사무소) 역시 “단순히 공탁을 이유로 처벌수위를 낮추기 보다는 피해자의 입장과 가해자의 진지한 사죄 태도 등을 잘 따져 양형에 반영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페이스북 공유트위터 공유
목록
 
세상과 잘 사는법, 내가 잘 사는법 - 네이버 법률 KLA - 제1회 대한민국 법무대상 신청하기
모든 법령정보가 여기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