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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L 리포트

"VIP와 회장님들끼리 얘기 됐으니 돈 걷으면 돼"

[the L] [비선실록(秘線實錄) 제9화-미르·K스포츠재단의 시작] 박근혜 "최순실이 지인 추천한 것이라곤 생각 못했다"

편집자주박근혜정부 국정농단 사건의 진실은 뭘까? 우리가 알고 있는 게 과연 다일까? 수많은 진실들이 검찰과 특검의 피의자 신문조서 등 수사기록 속에 아직 숨어있다. 그 무수한 비밀을 품은 수사기록을 머니투데이 법률미디어 '더엘'(the L)이 단독 입수했다. "그때 정말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그 해답을 방대한 자료 더미 속에서 하나 하나 건져올려 차례로 연재한다. '비선실세'에 대한 '수사기록'을 재구성한 '비선실록'(秘線實錄)이다.

"일주일 안에 재단을 만들라고요? 그런 얘긴 오늘 처음 듣습니다. 저희들이 재단을 설립하는 절차나 방법을 모릅니다."

2015년 10월21일 청와대 위민관(비서동) 경제금융비서관 사무실. 당시 이용우 전국경제인연합회(전경련) 사회본부장이 최상목 청와대 경제금융비서관에게 깜짝 놀라 되물었다.

미르재단 설립을 위한 첫 회의인 이날 만남에서 최 전 비서관은 "중국 리커창 총리가 10월말 방한하는데 그때까지 재단을 하나 설립해서 중국 문화재단과 MOU(양해각서)까지 체결을 해야 하니 27일까지 재단이 만들어져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재단 규모는 300억원 정도가 돼야하고 재단이 만들어지면 정부가 진행하는 문화 사업들을 이 재단에 맡길 것이니 전경련에서는 재단 설립까지만 해주면 된다"고 했다.

이날 회의에는 당시 최 비서관과 이 본부장 뿐 아니라 이모 청와대 행정관과 이모 사회공헌 팀장도 참석했다. 이승철 전경련 부회장의 지시로 회의에 참석한 이 본부장은 "(이날 회의에 갈 때까지만 해도) 전경련에서 재단 창립 총회나 한중간 재단의 MOU 체결식 행사만 주관하면 되는 줄 알았다"고 2016년 10월25일 검찰에 진술했다.

이날 이후 청와대에서는 22일부터 24일까지 3차례 추가 회의가 열렸다. 그리고 27일 486억원 규모의 미르재단이 설립됐다. 첫 회의가 열린 지 불과 일주일만에 16개 기업이 500억원에 가까운 기부금을 출연한 초대형 문화 재단이 탄생한 셈이다.

그리고 두달여 뒤인 12월 미르재단과 판박이인 K스포츠재단 역시 비슷한 과정을 거쳐 설립됐다. K스포츠재단의 기업 출연금은 288억원. 기업들이 미르재단과 K스포츠재단 설립을 위해 내놓은 돈은 총 774억원에 달했다. 이 돈은 이후 박근혜 전 대통령 등에 대한 '국정농단 사건' 재판에서 뇌물성 여부를 놓고 논란이 된다.

미르재단과 K스포츠재단은 청와대가 민간 기업들의 팔을 비틀어 재단 출연금을 받아냈다는 논란으로 비화되며 국정농단 사건과 박 전 대통령 탄핵 사태의 기폭제가 됐다.

실제 미르재단 설립을 추친한 건 전경련이다. 하지만 전경련 측은 "자발적인 설립이 아니라 안종범 청와대 경제수석의 지시에 따른 것"이라고 했다. 청와대의 지시가 있었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설립하게 됐다는 주장이다. 그렇다면 청와대와 전경련은 왜 이같이 급박하게 재단을 설립하게 된 걸까? 당시 청와대에서는 어떤 일이 있었던 걸까?

◇"그렇게 일하면 큰일난다…청와대 얘기 안 나오게 해달라"

전경련이 재단 설립 작업에 본격 착수한 건 2015년 10월21일 청와대 회의 직후지만, 실제 재단 설립 준비는 그해 여름부터 시작됐다.

다음은 이 전 부회장이 2016년 10월28일 서울중앙지검 702호 조사실에서 검사에게 한 진술이다. "2015년 여름으로 기억하는데 안 수석이 전화를 해 대뜸 '문화와 체육 관련 재단을 각각 1개씩 설립해주셔야겠습니다'라고 하면서 VIP(대통령)와 주요 그룹 회장님들 간에 이미 이야기가 됐으니 이 그룹들로부터 출연금을 걷어서 재단만 설립해주면 됩니다'라고 말했다. 그래서 안 수석에게 '이런 재단은 왜 설립하는 겁니까'라고 물었더니 안 수석이 '문화계 쪽에는 좌파 인사들이 많고 체육 쪽으로는 문제 많은 단체들이 대다수여서 정부의 의도대로 정책을 추진하기가 힘이 듭니다. 그래서 전경련에서 재단을 설립해주면 그 재단에 저희 정부 예산을 투입해 정부의 일을 추진하려고 합니다'고 했다. 이후 안 수석은 저에게 여러 차례 전화를 주고 하면서 설립되는 재단들의 규모가 각각 300억원 이상은 돼야 하고 기업들과 상의해 재단 설립 준비 작업을 하라는 일방적인 통보를 했다."

안 전 수석도 박 전 대통령이 2015년 여름 대기업 회장들과 면담을 한 뒤 재단 설립을 지시했다고 밝혔다. 안 전 수석이 2016년 11월2일 검찰에서 한 진술을 보자. "대통령께서 15년 7월24일 개별 기업 오너들과 면담을 하고 나서 저에게 '문화 체육 재단 설립에 대한 이야기를 나눴는데 기업당 30억원 정도면 어떻겠느냐는 이야기가 있었다' '10개 (기업) 정도면 300억원 규모의 재단이 만들어질 것 같다'는 이야기를 나눴다고 말씀을 하셨다"고 진술했다.

그러나 전경련은 대기업 총수들과 대통령이 재단 설립에 합의했다는 사실을 확인하는 데 어려움을 겪었던 것으로 보인다. 재단 설립의 실무를 담당한 이 본부장은 "이 부회장이 안 전 수석에게 재단 설립 요청을 받고 이 부회장이 박찬호 (전경련) 전무에게 4대 그룹 부사장이나 전무와 연락을 해 확인할 것을 지시했던 것 같다"며 "그래서 박 전무가 4대 그룹과 연락을 취했는데, 금방 확인이 안 된다는 반응을 보였다고 했다"고 검찰에 진술했다.

청와대는 전경련에 재단 설립을 요구하면서도 청와대의 개입이 있었다는 사실이 알려지는 것은 꺼려했다. 박 전무는 2016년 10월 28일 검찰 조사에서 "미르재단 설립 작업 중이던 25일 일본 출장 중 최 비서관에게 전화를 받았는데 '재단 설립하는데 왜 청와대가 끌어들인 것처럼 보이게 하느냐'면서 질책하듯 한 적이 있다"며 "(최 비서관이) '그렇게 일하시면 큰일난다' '청와대 얘기 안 나오게 일을 좀 매끄럽게 해달라'고 했다"고 말했다.

당시 전경련은 자신들이 만드는 재단에 대해 어떻게 이해하고 있었을까? 이 전 부회장은 10월28일 검찰 조사에서 "예전에 정부가 새마을운동을 할 때 새마을 운동중앙회가 정부를 대신해 새마을운동 사업을 했었는데 정부에서 주는 돈을 각 새마을운동지부로 송금해서 관련 사업을 진행했던 것으로 알고 있다"며 "안 수석이 처음에 '문화체육관광부에서 지급하는 보조금이 문제가 있는 곳으로 지급이 된다'고 하면서 '전경련에서 재단을 만들어 주면 그 재단에 정부 예산을 지급해 정부가 원하는 일을 하는 곳으로 보조금을 지급하도록 하겠다'고 했다"고 말했다.

전경련이 돈을 모아 두 재단을 만들었지만, 정작 재단 이사진은 청와대가 정해서 통보했다. 구체적으론 안 전 수석이 했고, 정확하겐 박 전 대통령이 지시했다. 다음은 안 전 수석이 2016년 11월2일 서울중앙지검 705호 검사실에서 진술한 내용이다.

"미르재단 이사장, 각 임원진에 대한 인적사항을 저에게 대통령께서 주신 것은 맞다. '전화해서 임명된 사실을 통지해주세요'라고 했다. 그래서 제가 그 사람들에게 전화를 해서 제 소개를 하고 '미르재단에 임명이 되셨다 하실 의향이 있느냐'라고 물어봤는데 희한하게 제가 전화를 넣으면 대부분 미리 알고들 있었다. (재단 이름도) 제 기억으로는 그 즈음에 대통령께서 재단 이름은 뭐, 뭐, 뭐 사이에서 '미르가 제일 좋은거 같습니다'라고 말씀을 하셨다. 미르에 대한 로고도 내려주신 것으로 기억한다."

다음날 안 전 수석의 진술은 더욱 구체화된다. 안 전 수석이 2016년 11월9일 검찰에 진술한 내용을 보자. 당시 검사는 안 전 수석의 수첩에 적힌 '10월21일자 VIP 관련 기재 내용'에 대해 물었다.

"대통령께서 미르라는 재단명을 처음 말씀하셨고 임원진들 명단도 전화로 알려줬다. 당시 재단명이 미르라는 것을 처음 들은 것 같다. 당시 대통령이 전화 통화로 (재단의) 조직표와 정관을 내려주겠다고 했고, 미르라는 재단 이름을 말씀하셨는데 미르가 용의 순우리말이며 신비롭고 영향력 있는 이라는 뜻도 가지고 있다고 했다. 그리고 이사를 할 사람들 명단을 불러줬다. 제가 이사장 및 이사 내정자들에게 직접 개별적으로 전화 연락을 했는데 이때 사람들 대부분이 자신들이 미르재단 운영진으로 내정돼 있다는 점을 알고 있어 다소 의아했다. K스포츠재단 이사진 명단과 연락처도 대통령이 직접 알려줬다."

그럼 박 전 대통령은 이에 대해 어떻게 진술했을까? 다음은 박 전 대통령이 2017년 3월21일 서울중앙지검 1001호에서 검사와 주고 받은 문답이다.

검: 피의자는 안 수석에게 문화·체육 재단을 설립할 방안을 검토해보라고 언급한 사실이 있나
박 전 대통령: 제가 명시적으로 안 수석에게 재단을 설립하라고 말 한적은 없다. 우리가 재단을 설립하라고 해서 하는 것이 아니라 나의 이야기에 공감을 한 기업들이 전경련과 의논을 하면서 재단 설립을 추진하고 있다는 보고를 받고, 저는 기업들 쪽에서 자발적으로 논의가 되고 있다고 하니 고맙다는 생각을 했다.
검: 안종범 등 경제수석실에 미르재단이 중국 자본을 받아서 할 수 있는 사업을 발굴하라, 미르재단 등과 논의해 박정희 기념관을 재정비하라는 등의 지시를 한 사실이 있나
박 전 대통령: 그런 기억이 있다. 박정희 대통령 기념관과 관련해 리모델링을 한다고 해서 민간에서 참여하게되면 창의적인 아이디어를 얻을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에 미르재단의 의견을 들어보면 좋겠다고 말한 적은 있다.


◇박근혜 "최순실이 지인 추천한 것이라곤 생각 못했다"

'비선실세' 최순실도 그해 여름부터 미르재단 설립에 관여했다고 한다. 다음은 '문화계 황태자' 차은택씨가 11월9일 서울중앙지검 705호 조사실에서 진술한 내용이다.

검: 미르재단에 관해 언제 처음 이야기를 들었나
차: 2015년 여름 정도에 최순실로부터 두세번 문화관련 재단에 관한 이야기를 들었다
검: 어떤 내용으로 들었나
차: 정확하게 다 기억은 못하지만 문화 관련으로 재단이 만들어질 것이다. 문체부에서 일하는 게 너무 느리고 앞으로 민간 재단을 만들어서 한국 문화를 세계화하고 할 것이다. 그런 얘기를 들었다. 그 뒤로도 재단이 생긴다는 얘기를 하다가 15년 가을쯤 실제 재단이 생긴다고 얘기를 했다. 당시 문화창조융합본부에 있었는데 최순실이 문화 관련해서 재단 쪽 일을 많이 도와줬으면 좋겠다고 했다
검: 최순실이 재단 관련 어떤 말을 또 하던가
차: 재단 관련 문화계 사람 등 중에서 믿을 수 있는 사람을 소개시켜달라고 했다. 그 얘기는 재단 설립 두달 전 쯤 들었던거 같다.
검: 사람을 소개시켜 줬나
차: 저와 친한 문화계 사람들을 모았다. 그래서 김모씨 등 5명에게 연락을 해서 며칠 뒤 신라호텔에서 최순실을 만났다.
검: 5명이 최순실을 만난 자리에서 무슨 일이 있었나
차: 최순실이 대한민국 문화도 이제 마케팅을 해야 한다, 대통령께서도 문화융성이라는 것을 국정기조로 처음 내세우신 분이시기도 한데 민간 분야에서 문화융성을 적극적으로 해야되지 않겠느냐고 했다. 최순실이 곧 문화 재단이 만들어질 것이다라는 말을 했다. 약 한 달 정도 지나서 최순실이 이제 재단이 만들었다 또는 만들어질 것 같다고 했다. 그러면서 재단 이사진이 중요하다 이사를 추천해달라고 했다. 그래서 제가 대여섯명을 추천했다.

차씨가 추천한 인사들은 실제로 미르재단의 사무총장과 임원 등 핵심 보직에 선임됐다. 미르재단 설립 초기 미르재단 업무를 도운 김모 플레이그라운드커뮤니케이션즈 이사는 2016년 10월24일 검찰 조사에서 "2015년 9월 정도로 기억하는데, 재단 설립 전 차은택이 문화재단을 만든다는 얘기를 했다"며 "차은택이 미르재단의 일을 도우라고 했다"고 진술했다.

K스포츠재단의 임직원들은 재단 입사 전 최순실에게 면접을 본 뒤 얼마 지나지 않아 안 전 수석에게 연락을 받았다고 진술한다. 정현식 K스포츠 사무총장은 10월27일 검찰 조사에서 "최순실에게 면접을 본 후 이틀 후 안 수석이 전화해 재단법인에서 감사직을 맡게 돼 축하한다고 했다"며 "얼마 후 최순실이 재무이사직을 맡아달라고 해서 흔쾌히 승낙했는데, 그때도 하루이틀 뒤 안 수석이 전화해 재무를 맡아달라고 해서 감사하다고 답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최순실이 사무총장도 맡아달라고 했다"고 말했다. 정 사무총장은 또 "(연봉계약은) 구두로 최순실과 했다"며 "최순실에게 면접을 보고 입사했고, 최순실에게 보고하고 지시를 받으면 안 수석이 전화해 최순실이 지시한 내용과 똑같은 내용으로 지시를 하거나 확인했기 때문에 최순실을 재단의 실제 운영자로 생각했다"고 말했다.

검찰 조사 초기, 재단에 대해 '아무 것도 모른다'던 최순실은 조사가 진행되면서 재단 설립에 '자문 역할' 정도만 했다고 입장을 바꾼다.

최씨가 2016년 11월11일 서울중앙지검 604호 검사실에서 한 진술을 보자

검: 미르·K스포츠재단 관련해서도 정호성과 통화를 했는데 어떤 내용에 대해 통화가 이뤄졌나
최: 초반에는 미르나 K스포츠 같은 경우 내용은 공감하고 있었고 초반에 재단이 틀이 잡혀져야 운영이 제대로 된다고 생각하고 있었기 때문에 제가 이사장 등 임원명단 중 일부, 재단 이름, 사업 추진 방향 등에 대해 정호성을 통해 대통령께 의견을 전달한 사실이 있다. 미르재단 같은 경우 차은택이 전체적으로 임원도 추천했고 사업을 정리해서 추진한 것으로 알고 있고 저에게 이에 대하여 이야기는 해서 제가 자문 역할을 해준 적은 있지만, 제가 대통령께 전달한 것은 아니다. 다만 K스포츠재단에 관해서는 대통령께 정호성을 통해 의사를 전달한 사실은 있다. 2대 이사장인 정동춘도 제가 정 비서관에게 전달했다.

청와대 안팎에서 상황이 이렇게 돌아가는 것을 박 전 대통령은 몰랐을까? 박 전 대통령은 검찰 조사에서 거듭 "(재단은) 최씨와 의논할 일도 아니고 최씨에게 재단을 운영해달라고 한 사실이 없다"며 "최순실이 재단에 직접 관여할 이유가 없고 재단 임원이 될 사람들을 직접 면접을 볼 이유도 없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계속되는 검사의 질문에 박 전 대통령은 일부 재단 인사 선임에 최씨의 추천을 받았다는 사실은 인정했다. 다음은 박 전 대통령이 2017년 3월21일 첫번째 검찰 조사에서 한 진술이다.

"최순실로부터 (재단의) 일부 임원의 추천을 받은 사실이 있다. K스포츠재단 임원 중 일부는 최순실이 추천을 했다는 말은 들었는데 정동춘 정도가 기억에 난다. 그러나 최순실이 아는 지인을 추천한 것이라고 생각하지 못했고, 최순실이 저를 돕는다는 마음으로 주변에 알아보고 좋은 사람을 추천해줬다고 생각했다."

(다음 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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