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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클리

"증거 변조했다"…성폭력 가해자, 그들이 사는 법

[the L] [서초동살롱] 피해자 측에 '보복성 고소'로 반격하는 가해자들


성폭력 피해자의 변호를 맡은 A변호사는 자신이 '피고소인'으로 이름이 오른 고소장을 받았다. 혐의는 증거변조와 변조증거사용죄, 고소인은 성폭력 피고인인 B씨였다.

B씨는 자신이 가해자로 지목된 '업무상 위력에 의한 강제추행' 사건에서 피해자가 법정에 증거로 제출한 녹취록이 변조된 것이라고 주장했다. "녹취 파일 중 피해자가 자신에게 유리한 부분만 글로 적어 녹취록을 만들고 그외 부분은 '중간생략'으로 표시했는데, 이는 증거를 변조한 것에 해당한다"는 것이 B씨 주장이다. 그리고 이같이 증거를 변조하도록 변호사가 공모했다며 피해자와 A변호사를 함께 고소했다.

A변호사는 "속기사가 작성한 녹취록의 성격을 전혀 이해하지 못하는 무지 또는 모르는 척하는 고의에서 비롯된 억지 주장"이라며 황당해했다. 녹취록은 속기사에게 맡겨 작성했는데, 녹취 시간이 얼마나 되는지에 따라 비용이 책정된다. 이 때문에 사건 당사자들은 녹취 파일 중 자신의 입장에서 유의미하다고 판단하는 구간을 정해 녹취록을 만들어달라고 의뢰한다.

A변호사는 "재판부에 녹취록 뿐 아니라 원본 녹취 파일도 함께 증거로 제출했고, 검사가 이를 받아 재판부에 제출했는데 그럼 증거를 최종 재출한 검사 역시 공범이라는 얘기"라며 "재판 과정에서도 녹취록과 녹취파일 모두 증거조사 과정을 통해 인정됐고, B씨 역시 자신의 대화가 맞다고 법정에서 인정했는데, 녹취록을 만들며 중간에 생략한 부분이 있다고 이를 위조 증거라고 하는 것이 말이 되느냐"고 분통을 터뜨렸다.

성폭력 가해자로 지목된 이들이 성폭력 피해를 신고한 이들을 '법적'으로 압박하는 방법이 다양해지고 있다. 피해자들을 무고죄나 명예훼손죄로 역고소하는 것은 성폭력 가해자들에게 일종의 대응 메뉴얼로 자리잡았을 정도다. 이를 넘어 피해자 변호인들이 피해자에게 무고를 하도록 부추겼다거나, 증거를 조작했다는 등 각종 이유를 들어 피해자 뿐 아니라 피해자 변호인까지 고소하는 일도 늘고 있다.

서초동의 한 변호사는 "요즘은 성범죄 혐의로 재판을 받는 피고인들이 '무조건 범행을 부인하면 어차피 증거가 없으니 무죄가 될 것'이라거나 '피해자를 무고죄 등으로 역고소해달라'는 등의 이야기를 많이 한다"며 "인터넷 등을 통해 정보를 찾아보고 각종 법적 대응책을 찾아와 '이렇게 해달라'는 식의 얘기를 해 놀랄 때가 있다"고 말했다. 이어 "피해자를 무조건 무고죄로 역고소해달라는 이들이 적지 않은데, 이 경우에는 오히려 무고죄에 대한 무고에 해당해 역고소 당할 수 있으니 함부로 소송을 내선 안 된다고 조언하고 있지만, 도가 지나치다 싶은 경우가 적지 않다"고 말했다.

일각에선 일부 변호사들이 돈벌이를 위해 이를 교묘하게 이용하고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A변호사는 "녹취록 증거가 변조라고 주장하는 B씨의 소송을 대리하고 있는 변호사가 이 고소가 말이 안 된다는 것을 몰랐겠느냐"고 반문했다.

변호사 입장에선 사건이 많을수록 수익이 늘어나니 각종 논리를 끌어와 성폭력 사건을 또다른 새로운 사건으로 만들어 키우고, 이렇게 만들어진 방법은 가해자들이 '법적'으로 피해자들을 압박하는 수단이 된다. 성범죄 피해자들에게는 2차 피해에 해당하는 일이다.

B씨 측의 고소를 '피해자에 대한 2차 가해로 이뤄진 보복성 고소'로 판단한 A변호사는 B씨와 B씨의 변호인을 무고와 무고 교사·방조 혐의로 고소했다. A변호사는 "B씨 측이 본인을 형사 처벌을 받게 할 목적으로 증거를 변조했다는 허위 사실로 형사고소를 하고, 허위 사실인 것을 알면서도 교사 또는 방조했다"며 "정상적인 변호인이라면 실제 대화의 녹취록을 제출한 것에 대해 고소를 권유할 수는 없다. 무고 과정에 고소 대리를 한 변호사가 개입되지 않을 수 없다. 오히려 적극적으로 유도했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고 주장했다.

A변호사가 '증거변조 및 변조증거사용죄'에 대한 경찰 조사를 받은 지난 7일, 서울중앙지법에서는 단원들을 상습적으로 추행하고 성폭행 한 혐의를 받는 이윤택 전 연희거리단패 예술감독의 결심 재판이 열렸다.

이날 이 전 감독의 변호인들은 "피해자들이 공개된 장소에서 함께 연습하며 다른 배우와 차례대로 추행을 당했다던지, 장례식장에서 피해를 당했다는 등 아무리 비인간적이라도 상식적으로 이런 일이 발생하기 어려운데 이같은 주장을 하고 있다"며 "피해자들의 진술을 믿을 수 없다"고 주장했다.

피해자들의 진술을 '상식'적으로 믿을 수 없다는 변호인은 "(이 전 감독이 연기 지도를 하면서 발생한) '다소 부적절하고 민망한 장면'"에 대해서는 "연극의 특성이라고 봐야지 성추행 행위로 몰아붙여선 안된다"고 주장했다. 이 '다소 부적절하고 민망한 장면'이란 이 전 감독이 피해자의 손을 당겨 성기 주변 부위를 주무르도록 하거나, 아랫배의 단전 부위를 안마하도록 하거나, 연기연습 중 피해자의 음부를 만지거나, 연극 의상을 벗기거나, 입술을 혀로 핥는 것 등이 해당한다.

이 전 감독의 변호인은 이 전 감독이 피해자의 입술을 혀로 핥았다는 혐의에 대해 "피해자가 비염을 앓고 있어서 발성이 제대로 안돼 입술을 깨물어 벌어지지 않게 누른 것"이라며 "메소드 연기 지도를 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피해자의 가슴을 깨문 것은 "(이 전 감독이 피해자의) 가슴을 깨물어 (피해자가) '악' 하는 소리를 내자 그 소리를 기억하라는 방식으로 연기 지도를 한 것"이라고, 피해자의 속옷 안에 손을 넣어 가슴을 잡은 것은 "횡경막을 들어올리는 발성 지도"라고 주장했다.

또 다른 이 전 감독의 변호인은 이 전 감독이 피해자의 옷을 벗겼다는 혐의에 대해 "옷의 특성이 건드리면 자연스럽게 흘러내리는 옷이어서 (건드리기만 했는데 옷이) 벗겨졌다"며 "안마 과정에서도 (피해자 손에) 성기가 살짝 닿을 수도 있는데, 이를 추행이라고 하면 피고인으로서는 이해할 수가 없다"고 주장했다.

올초 서지현 검사의 폭로로 시작된 '미투' 열풍. 그동안 세상은 과연 달라졌을까? 적어도 가해자들은 별로 바뀐 게 없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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