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고문의 02-724-7792

광장

"평생 '백수'였던 남편이 이혼 앞두자 재산 나눠 달래요"

[the L] [조혜정 변호사의 가정상담소] 경제활동 여부에 상관없이 부부는 '5대5 재산분할'이 원칙

편집자주외부 기고는 머니투데이 'the L'의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기고문은 원작자의 취지를 최대한 살리기 위해 가급적 원문 그대로 게재함을 알려드립니다.

Q) 올해로 남편과 결혼 23년째가 됐어요. 결혼 후 지금까지 내내 저한테 짐덩어리였던 남편이 이혼이 코 앞에 닥치니 저한테 재산을 분할해달라고 하네요. 너무 억울하고 분해서 밤에 잠도 안 옵니다.

남편과 저는 대학생 때 같은 과의 선후배로 만났습니다. 남편은 중견사업체를 운영하시는 시아버지의 외아들이었고, 그 때는 흔치 않던, 자가용을 몰고 다니는 대학생이었습니다. 부잣집 아들로 자라 매사에 여유있어 보이던 모습이 좋아보여 결혼하게 되었지요.

막상 결혼을 하고 보니 시아버지의 사업은 몇 년 전부터 기울어 결혼 당시 거의 망한 상태였는데 저한테는 숨겼던 거였습니다. 결혼 후 얼마 지나지 않아 시아버지 회사가 부도났고, 시댁은 빚더미에 올라앉았습니다. 결혼 전에는 상상도 못했던 상황이라 당황스러웠지만 저는 마음을 굳게 다잡고 취직을 했습니다. 그 와중에 남편은 행정고시를 보겠다고 학교 고시반에 들어가 공부를 했기 때문에 생활비는 제 월급으로 충당했고요. 다행히 제가 좋은 직장에 취직해서 월급을 꽤 받았는데 시댁에서는 급하게 돈 쓸 곳이 있다면서 저한테 5천만원 가까운 돈을 빌려갔습니다. 물론 그 돈은 아직까지 못 받았고요.

남편은 행시준비를 3년 하다가 중도포기했습니다. 연애할 때 좋아보였던 남편의 여유로운 모습은 현실세계에서는 치명적인 단점이더라고요. 공부에 집중을 못하고 놀 건 다 놀아야 하니 시험에 될 리가 없었지요. 남편은 고시준비를 포기한 후 취직을 했지만 그것도 1년이 못 갔습니다. 회사생활이 안 맞고 적은 돈 버느라 고생하기 싫으니 사업을 해보겠다고 하면서 갑자기 회사를 그만두더라고요. 그 다음에는 전업투자자가 되겠다면서 사기꾼 같은 사람들과 어울려다니기 시작하더니 일확천금할 생각만 했습니다. 어쩌다 투자로 돈을 버는 적도 있는 것 같았지만 곧 다시 날려버리는 생활이 계속되었지요. 제가 월급이 적어도 좋으니 아무 데라도 취직해 착실하게 노력해서 돈을 벌라고 했지만 쇠 귀에 경 읽기였습니다.

그러다 5년 전쯤 카페를 하겠다고 해서 이제 정신을 차리나 보다 하고 자금을 대줬는데 알고 보니 그것도 친구한테 속은 거였고 돈은 거의 날렸습니다. 그 때부터는 사람이 변하기 시작하더라고요. 그 전에는 실패를 해도 늘 바로 회복할 거라고 큰 소리를 쳤었는데 사기당한 후부터는 침울하고 말이 없어지더니 술을 마시기 시작했고, 저와는 거의 말을 하지 않았습니다. 그런 남편이 너무 한심했지만 아들이 아빠를 좋아해서 꾹 참아줬습니다. 제가 직장 다니느라 너무 바빴기 때문에 아들은 집에 있는 시간이 많은 남편이 주로 돌봤거든요. 어차피 오래 전에 남편에 대해서는 포기했으니 남편이 사고만 더 안 치면 아들을 위해 이혼은 하지 말자 했던 거지요.

그런데, 시간이 흐를수록 남편의 주량이 늘어가고 얼마 전부터는 술 취하면 저한테 ‘네가 나를 무시해서 내 인생이 안 풀린다’고 원망하고 소리지르면서 물건을 던지기 시작했습니다. 그런 남편이 너무 무섭고 끔찍해서 더 이상은 한 집에 못 살겠더라고요. 그래서 제가 집에서 나가라, 이혼하자 했더니 남편은 ‘그냥은 못 나간다. 나한테도 재산분할을 받을 권리가 있으니 월세보증금으로 5000만원 주면 이혼해준다’고 하더라고요.

사람이 이렇게 염치가 없을 수도 있나요? 저는 결혼기간 내내 무능한 남편 대신 돈을 버느라 죽을 힘을 다해 일했는데 남편은 돈을 벌어오기는커녕 제 돈을 1억 넘게 까먹었거든요. 그런데 결혼기간 내내 먹여살린 저한테 재산분할을 해달라니 어찌 그리 뻔뻔스런 소리를 할 수가 있는지 도저히 이해가 안 갑니다.

현재 남편은 재산이 없고 제 소유의 7억 정도 되는 집과 2억짜리 상가, 1억 정도의 현금이 있습니다. 이 재산은 모두 제가 피땀 흘려 일해서 장만한 거니 제 재산입니다. 남편은 단 1원도 보태준 적이 없으니 단 한 푼도 주기 싫습니다. 만약 이혼하면서 남편에게 재산을 나눠줘야 한다면 차라리 이혼을 포기할까도 생각 중입니다.


A) 그동안 고생 참 많이 하셨네요. 23년이란 긴 세월 동안 무능하고 실패만 거듭하는 남편을 참아주고 가장으로 가족을 먹여살리시느라 정말 힘드셨겠어요. 선생님께서 얼마나 절박한 심정으로 직장을 다니셨을지 충분히 이해가 갑니다. 선생님처럼 무능한 남편을 부양하면서 살아온 아내들을 적지 않게 만났거든요. 혼자서 돈 벌고 아이도 키우면서 경이로운 참을성으로 버텨오다가 어느 순간 인내심의 한계를 느끼고 이혼을 결심하시더라고요. 결혼생활은 인내심만으로는 유지할 수 없는 것인가 봐요.

이혼시 재산분할의 대상은 결혼생활기간 중 부부가 협력하여 이룩한 재산을 말합니다. 우리 민법은 부부가 각자 소유한 재산은 기본적으로 소유자의 재산으로 보지만(부부별산제), 이혼으로 결혼으로 생긴 경제공동체를 해체할 때에는 이 원칙에 변화가 생깁니다. 예를 들어 남편이 직장 다녀서 돈을 벌어오고 아내가 살림하면서 아이를 키웠는데 집을 남편 명의로 산 경우, 남편이 집을 소유하고 유지할 수 있었던 이유는 아내가 남편 몫의 가사와 육아를 담당해주었기 때문이니, 그 집은 실질적으로는 부부가 공동으로 협력하여 이룩한 재산에 해당합니다. 

그 집에는 눈에 보이지는 않지만 아내의 기여로 마련된 지분이 숨어있는 상태라고 할 수 있는데, 이혼하게 되면 각자 따로 경제생활을 해야 하기 때문에 숨어있는 아내의 지분을 드러내서 아내에게 돌려주는 것이 재산분할인 것입니다. 아직까지 우리 사회의 주류가 남편이 경제활동을 하는 것이라 남편이 돈을 버는 예를 들었지만 선생님 사례처럼 부부의 역할이 바뀌어도 마찬가지입니다.

선생님은 남편이 내 재산 모으는 데 협력한 게 어디 있냐, 내가 먹여살렸고 내 돈까지 갖다 썼으니 남편이 기여한 게 없지 않냐고 항변하고 싶으실 겁니다. 그 심정 충분히 이해됩니다. 하지만, 꼭 돈을 보태야만 기여를 하는 건 아닙니다. 결혼은 공동투자계약이 아니니까요. 외부 경제활동 대신 살림을 하고 아이를 키우고 부모형제간의 도리로 경조사와 명절을 챙기고 친구 지인들과의 관계를 유지하는 것 등 우리가 결혼해서 사람노릇을 하기 위해 해야 하는 활동을 나 대신 혹은 나와 같이 해주는 것이 다 기여에 해당됩니다.

이렇게 보면 결혼해서 같이 살아주는 것 자체가 기여라고 봐야겠지요. 우리 법원도 드러내놓고 표현하진 않지만 결혼해서 같이 살았으면 잘잘못을 떠나서 기여한 것으로 보는 것 같습니다. 선생님의 남편이 직장일로 바쁜 선생님 대신 아들을 돌봤으니 이 부분은 명백히 기여에 해당되고 어찌 됐건 23년이나 같이 살아주었으니 선생님의 남편도 선생님 명의 재산의 형성과 유지에 기여한 바가 있다고 봐야 합니다. 아무리 억울해도 남편에게 재산분할청구권이 있다는 건 부정할 수가 없는 겁니다.

문제는 얼마나 분할해줘야 하느냐이겠지요. 재산분할의 정도는 기여도에 따라서 법원이 재량으로 결정하는데 이건 구체적인 사례에 따라서 많이 달라질 수 있습니다. 부부 중 한 쪽이 경제활동을 하고 다른 쪽은 가사를 담당하면서 자녀가 성인이 될 때까지 살고 사회평균 정도의 재산을 모은 부부의 경우에는 경제활동 여부에 상관없이 5:5로 분할하는 원칙이 확립된 듯 합니다. 같은 조건이지만 한 쪽이 재산형성에 두드러지게 기여한 경우, 예를 들어 사업해서 돈을 많이 벌었다거나 부모로부터 많은 재산을 물려받은 경우에는 이 비율을 6:4나 7:3 정도로 조정될 수 있습니다. 

대체로 이 정도의 기준을 가지고 혼인기간, 분할대상재산의 액수, 당사자들의 연령, 경제활동 여부 등 구체적인 변수에 따라 분할비율을 가감하게 됩니다. 이렇게 보면 선생님 남편이 요구하는 5000만원은 선생님 재산의 5% 정도이니 분할요구금액이 결코 많지 않습니다. 이혼소송으로 갈 경우 재산분할금액은 이보다 훨씬 늘어날 거니 억울한 심정이 들더라도 지금 남편의 요구를 들어주는 게 현명합니다.

남편에게 재산분할을 해주느니 이혼을 포기할까 한다 하셨는데 저는 그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지금이라도 남편이 반성하고 착실한 삶을 산다면 좋겠지만 23년간 허황되게 살아온 사람이 바뀔 가능성은 별로 없습니다. 반대로 젊은 날을 허랑방탕하게 보냈거나 실패를 거듭한 남자들이 중년에 이르면 상태가 악화될 가능성이 높습니다. 젊었을 때는 그래도 아직 기회가 있다는 생각에 희망을 가졌는데 중년에 이르면 현실을 깨닫고 초조해지게 됩니다. 자리잡은 친구들과 자신을 비교하면서 비관과 우울에 빠져 술에 의존하게 되고 안 그러던 사람도 폭력적으로 될 수 있습니다. 선생님 남편은 이미 그 길에 접어든 것 같고요. 남편의 불행은 남편이 자초한 일, 선생님이 남편을 구제해줄 수 없고, 23년간 부양해온 것만으로도 결혼에 대한 의무는 충분히 하셨습니다. 그만 불행한 결혼을 정리하고 해방되시는 게 맞지 않을까요? 아드님과 평온한 인생을 찾으시길 권합니다.


[2005년부터 10여년 간 가사소송을 수행하면서 우리 사회의 가족이 급격하게 해체되어가고 있음을 현장에서 실감했습니다. 가족해체가 너무 급작스러운 탓에 삶의 위안과 기쁨이 되어야 할 가족이 반대로 고통을 주는 존재가 되어버린 분들이 너무나 많습니다. 이런 분들을 위해 10여년간의 가사소송 수행에서 깨달은 법률적인 지식과 삶의 지혜를 ‘가정상담소’를 통해서 나누려합니다. 가족 때문에 고통받는 분들에게 위로가 되고 해결책을 찾는 단초가 되었으면 합니다.]

페이스북 공유트위터 공유
목록
 
모든 법령정보가 여기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