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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클리

법원이 '선배' 임종헌을 구속시킨 진짜 이유

[the L] [서초동살롱] 특별재판부 설치 등 여론 압박…연내 목표 '시한부 수사' 땐 용두사미 우려도

사법행정권 남용 의혹 중심에 있는 임종헌 전 법원행정처 차장이 26일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방법원에서 구속 전 피의자 심문(영장실질심사)를 받기 위해 출석하고 있다. 임 전 차장은 양승태 대법원장 시절 법원행정처에서 기획조정실장, 차장으로 근무하며 사법행정권 남용 의혹 전반에 개입한 것으로 의심받고 있다. 2018.10.26/뉴스1 <저작권자 © 뉴스1코리아,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30여개 범죄혐의와 230쪽에 달하는 범죄사실. 임종헌 전 법원행정처 차장에 대한 검찰의 구속영장 청구서는 4개월여간 진행된 '사법농단' 수사의 모든 것이 담겨있다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사법부의 독립이 침해되고 재판 과정이나 결과가 권력과 조직 이익에 따라 거래될 때 과연 어떤 일이 벌어질 수 있는지를 모두 모아놓은 범죄백서와도 같은 결과물입니다.

결국 이 구속영장 청구서는 임 전 차장의 구속으로 이어졌습니다. 영장실질심사를 담당했던 서울중앙지법 임민성 부장판사는 "범죄사실 중 상당한 부분에 대해 소명이 있고, 피의자의 지위 및 역할, 현재까지 수집된 증거자료, 수사의 경과 등에 비추어 볼 때 증거인멸의 우려가 있으므로 구속의 필요성과 상당성이 인정된다"며 구속영장 발부 사유를 밝혔습니다.

수사 과정에서 '사법농단' 의혹과 관련된 핵심 인물, 특히 전현직 고위직 판사들에 대한 압수수색 영장이 번번이 기각돼 검찰이 애를 먹었던 터라 과연 임 전 차장에 대한 구속영장이 순순히 발부될 지 의구심을 표하는 목소리도 많았습니다. 앞서 한 차례 법원이 사법농단 수사와 관련해 청구된 구속영장을 기각한 적도 있어 이번에도 같은 일이 반복되는 것 아니냐는 우려에서입니다.

그러나 임 전 차장의 경우에는 구속영장 발부 가능성이 좀더 높을 것이란 예상이 우세했습니다. 우선 임 전 차장이 이번 수사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크다는 점 때문입니다. 사법농단 수사가 급물살을 타게된 것은 무엇보다 임 전 차장의 이동저장장치(USB)에 들어있던 '사법농단 관련 문건'들을 확보하면서입니다. 이 문건을 보고받고 작성을 지시한 정황이 뚜렷한 임 전 차장은 법관 사찰과 재판거래, 검찰·헌법재판소 기밀 유출 등 사법행정권 남용과 재판거래 의혹 전반에 깊이 연루돼 있습니다. 

특히 대법원장과 법원행정처장 등 사법부 '윗선'의 조직적 개입 여부가 이번 사건의 핵심 쟁점인만큼 그 중간 고리 역할을 한 임 전 차장의 신병을 확보할 필요성이 있다는 주장이 보다 설득력을 얻었습니다. 잇따른 압수수색 영장 기각으로 '방탄판사단' 논란이 일어나는 동안에도 법원이 임 전 차장에 대한 압수수색 영장은 가장 먼저 발부해 준 것도 같은 맥락입니다.

'차명폰'을 사용해 법원 관계자들에게 혐의 사실을 부인해달라고 종용하는 등 증거인멸 가능성에 대해 검찰이 정황을 확보해놓은 것도 구속영장 발부에 주요한 사유가 됐습니다. 압수수색에 의한 증거물 확보에 차질을 빚어온 검찰은 수사의 상당 부분을 관계자 진술을 통해 진행했습니다. 만약 임 전 차장이 불구속 상태에서 관계자들이 허위 진술을 하도록 시도한다면 수사에 큰 타격을 줄 수 있습니다.

법조계에서는 법원이 사법농단 수사에 대한 여론을 의식하지 않을 수 없었다는 점도 이번 구속영장 발부에 큰 영향을 미쳤다는 시각도 있습니다. 검찰은 4개월여간 수사를 진행하는 동안 사법농단 의혹 한가운데 있는 임 전 차장을 부르는 대신 임 전 차장과 직접적으로 맞닿아있는 주변 인물들을 조사하면서 범죄사실 구성을 사실상 완성해놨습니다. 임 전 차장이 혐의 대부분을 부인할 것에 대한 대비로 말입니다. 

여기에 법원이 주요 법원 인사에 대한 압수수색 영장을 잇따라 기각하면서 '제식구 감싸기' 논란이 일었고 법원에 대한 성역없는 수사를 요구하는 여론이 폭발적으로 늘어났습니다. 영장 발부, 나아가 사법농단 관련 재판을 지금의 법원에 맡길 수 없다며 '특별재판부'를 설치해야 한다는 주장으로까지 이어졌습니다. 

이같은 목소리는 이달 들어 국정감사 기간에 집중적으로 쏟아져나왔습니다. 사법농단 수사에 대한 법원의 태도가 연일 도마에 오르는 한편 임 전 차장의 구속수사를 촉구하는 정치권의 압박이 공개적으로 이뤄졌습니다. 검찰은 이러한 분위기 속에서 임 전 차장을 전격 소환하고 네 차례 조사를 거쳐 구속영장을 청구했습니다. 국감 최대 이슈를 임 전 차장 구속 여부가 되도록 만드는 데 성공했습니다.

만일 법원이 임 전 차장의 구속영장을 기각했다면 어떻게 됐을까요?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소속 박지원 민주평화당 의원은 법원이 임 전 차장의 영장을 기각할 것이라며 "기각돼야 사법농단의 불씨를 오히려 더 키울 수 있다"고 강조했습니다. 법원이 영장을 기각하면 사법농단 수사와 관련해 법원은 국민적 저항에 부딪혀 설 자리가 없어진다는 협박 아닌 협박입니다.

법원 내에서도 임 전 차장에 대한 구속영장까지 기각한다면 특별재판부 설치에 더 이상 반대하기 어려워질 것이라며 임 전 차장의 구속을 조심스럽게 점치는 분위기도 감지됐습니다.

임 전 차장의 구속으로 사법농단 수사는 양 전 대법원장을 비롯한 '윗선' 수사로 나아가는 획기적인 전기를 마련했습니다. 사법농단 의혹을 규명하고 책임자를 처벌할 수 있다는 기대가 다시 커진 것도 사실입니다. 당장 고영한·박병대 등 법원행정처장을 지낸 대법관들의 소환이 이어질 것이란 예상이 나옵니다. 헌정 사상 최초로 대법관 출신이 검찰 수사를 받게되는 일이 초읽기에 들어간 셈입니다. 나아가 양 전 대법원장의 소환 조사도 예상보다 빠르게 진행될 것이란 관측도 나옵니다. 이 역시 헌정 사상 초유의 일입니다.

문제는 검찰 수뇌부가 연내 수사를 마무리짓겠다며 사실상 시한을 정해놨다는 점입니다. 자칫 시간 부족으로 수사가 용두사미로 끝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옵니다. 법원 등 법조계 일부에서는 임 전 차장의 구속을 바라보며 "사법농단 사태의 책임은 임 전 차장이 진 것"이란 이야기가 나오고 있다고 합니다. 임 전 차장 선에서 사건이 정리될 수 있다는 바람 섞인 전망일텐데요. 사법농단 수사 초기에 임 전 차장으로 '꼬리자르기'를 할 것이라는 예측과 별반 달라진 것이 없는 결말이라면 사법농단 수사의 빛이 바랠 수밖에 없을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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