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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의 여신은 얼굴을 가리지 않는다"

[the L] [서초동살롱] 전국법관대표회의 '법관탄핵 요구' 절차적 정당성 논란…회의록 공개 ‘비실명’에 그쳐


지난달 19일 경기 고양시 사법연수원에서 진행된 전국법관대표회의./ 사진=뉴스1

지난달 전국법관대표회의(법관회의)가 국회에 '법관탄핵'을 사실상 촉구하는 결의를 한 뒤 법원은 한달째 부글부글 끓고 있습니다. 누가 법관탄핵 발의부터 의결까지 밀어부쳤는지 아직도 공식 공개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법관탄핵 요구를 의결한 것이 문제시되는 이유는 법적, 절차적 정당성 모두 흠집이 생겼기 때문입니다. 법적인 문제는 법관들이 먼저 나서 탄핵소추권을 행사해달라고 국회에 요청하는 것이 맞느냐는 것입니다. 탄핵소추권은 국회의 고유한 권한인데, 법관들이 여기에 관여하려 하는 것은 삼권분립 원칙에 반한다는 것이죠.

일각에선 '일본에서는 법원이 필요하다고 생각되면 담당 기관에 탄핵소추를 의뢰하는 것이 당연하게 여겨진다'고 반박합니다. 그러나 일본의 경우 경력 10년차 미만 법관은 판사가 아닌 판사보로 취급되고, 법관회의에도 포함되지 않는다고 합니다. 지금 전국법관회의 구성을 보면 일본에선 '판사보' 정도 경력의 판사들이 상당수죠. 이들이 법관탄핵을 요구할 권한을 갖는 게 맞느냐는 주장도 나옵니다. 

절차 문제를 놓고도 논란이 일고 있습니다. 법관회의 운영에 관한 대법원 규칙을 보면, 법관회의는 회의에 참석한 구성원 과반수의 찬성이 있어야 어떤 사안을 의결할 수 있습니다. 법관탄핵 요구를 결의한 날 회의에 참석한 구성원은 114명이었는데 이중 9명은 법관탄핵 표결 전 자리를 떴습니다. 표결에는 나머지 105명이 참여했고 결과는 찬성 53명, 반대 43명, 기권 9명이었습니다. 법관회의는 총원을 표결에 참여한 105명으로 잡고 찬성 53명으로 1표 차이로 과반 찬성을 얻은 것으로 처리했습니다. 

그러나 운영규칙대로라면 총원은 105명이 아니라 114명이 돼야 한다는 지적이 있습니다. 중간에 자리를 뜬 9명를 제외해선 안 된다는 것이죠. 한 판사는 "해당 규칙을 보면 '출석한 과반수의 찬성으로'라고 돼 있다"며 "표결에 참여하지 않은 9명도 참석은 한 것인 만큼 '무효'로 처리하더라도 인원 수에서 제외하면 안 된다"고 했습니다. 이런 식으로 계산하면 법관탄핵 요구는 과반에 못 미쳐 부결됐어야 한다는 겁니다.

이런 논란 속에 '문제의 9명' 중 하나인 서경환 서울고법 부장판사(52·사법연수원 21기)가 법원 내부망에 "나중에 한 표 차로 탄핵안건이 가결됐다는 이야기를 전해 듣고 '내가 끝까지 있었으면 결과가 달라졌을 수 있겠다'는 나름의 자책감이 들었다"는 글을 올리기도 했습니다. 

이밖에 일선 판사들 사이에서도 "회의에 참석한 대표 법관이 소속 법원 판사들의 의견을 제대로 대변한 것이 맞느냐" "회의에서 법관탄핵 요구에 반대한 목소리는 사실상 묵살됐다"는 비판이 쏟아져 나왔습니다. 울산지법 대표로 회의에 참여했던 김태규 부장판사(51·28기)는 "법관회의를 탄핵해야 한다"는 글을 올렸습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누가 법관탄핵 발의에 이름을 올렸고, 누가 찬성 표를 던졌는지 공개하라는 요구가 나오는 것도 당연해 보입니다. 판사들 입장에선 우리 법원 판사들의 의견이 제대로 전달됐는지 확인하려면 먼저 우리 법원을 대표해 회의에 참석한 대표법관이 어떤 의사표시를 했는지 알아야 하니까요. 

그러나 법관회의는 대표법관들의 이름이 가려진 '비실명 회의록'을 공개하는 데 그쳤습니다. 근거없이 멋대로 정한 일은 아닙니다. 법관회의 운영규칙을 보면 회의는 원칙적으로 비공개입니다. 회의록에 대해서도 '회의록을 공개해야 하지만 필요한 경우 익명화 조치를 취할 수 있다'고 돼 있습니다.

물론 공개를 요구할 방법이 없는 것은 아닙니다. 국회증언감정법과 국정조사법에 따르면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위원 3분의 1이 요구할 경우 법관회의는 표결 내용과 실명화된 회의록을 공개해야 합니다. 그러나 판사들은 법관회의가 스스로 공개해 '결자해지'하는 것이 가장 바람직하다고 보고 있습니다. 재경지법의 한 부장판사는 "정의의 여신은 얼굴을 가리지 않는다"며 "법관회의는 지금이라도 실명 회의록을 공개해야 한다"고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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