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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클리

원칙이냐 예외냐…노동사건 '사회통념상 합리성' 기준 논란

[the L][Law&Life-힘빠지는 근기법 ①] '사통합' 법리 확대해석해 불이익변경금지 원칙 예외 인정…"원칙은 원칙"


#지난해 말 외국계 제약회사 A사가 근로기준법 위반 혐의로 검찰 수사를 받았다. 노동조합 동의도 받지 않고 일부 인센티브를 폐지한 혐의였다. 근로기준법 제94조 제1항에 따르면 회사는 취업규칙을 신설·변경하기 전 노조 또는 근로자 과반수의 의견을 청취하는 것이 원칙이다. 취업규칙이 근로자에게 불리하게 변경되는 경우라면 의견 청취 뿐 아니라 동의까지 얻어야 한다. 이를 불이익변경금지 원칙이라고 한다.

A사 측은 혐의를 부인했다. 문제의 인센티브를 폐지하긴 했지만, 다른 인센티브를 추가 지급함으로써 전체 인센티브 금액을 올렸으므로 근로자에게 불이익한 취업규칙 변경이 아니라고 주장했다. 또 해당 인센티브는 제품 판매 촉진을 위해 한시적으로 도입한 것이므로 매출 상황에 따라 얼마든지 바뀔 수 있는 내용이라고 항변했다.

이 사건을 수사한 검찰은 인센티브 폐지에 위법해 보이는 정황이 있다고 판단했다. 검찰은 "전체 지급 금액의 증감은 별론으로 하더라도 일부 근로자에게 불이익하게 적용되는 점에 비춰 볼 때 (근로자에게) 불이익한 취업규칙에는 해당된다고 볼 여지가 있다"고 밝혔다. 그럼에도 검찰은 A사 대표와 임원 등 3명을 재판에 넘기지는 않았다. 위법해 보이는 정황이 있긴 하지만 불이익변경금지 원칙의 예외로 인정할 수 있다는 결론을 냈기 때문이다. 

검찰은 그 근거로 대법원이 2007도3037호 사건 판결문에서 제시한 '사회통념상 합리성'(사통합) 법리를 들었다. 이 사건에서 대법원은 "근로자가 입게 될 불이익의 정도를 고려하더라도 사회통념상 합리성이 있다고 인정될 경우 근로자의 의사결정방법에 대한 동의가 없다는 이유만으로 (사측이 변경한) 새 취업규칙의 적용을 부정할 수는 없다"는 예외를 뒀다.

그러나 2007도3037호 사건을 뜯어보면 검찰이 이 판례를 A사 사례에 적용해 선처한 것은 잘못이라는 견해가 나온다. 2007호3037호 사건은 2004년 부산교통공사가 경영개선을 이유로 열차 기관사들의 운전시간을 30분 연장하면서 빚어졌다. 법대로라면 불이익금지원칙에 따라 노조의 동의를 먼저 받아야 했지만 부산교통공사는 동의 절차를 건너 뛰었다.

대법원은 부산교통공사에 불이익변경금지 원칙의 예외를 인정해 무죄를 선고했다. 그 이유로 △부산교통공사가 누적부채 3조2000억원, 당기순손실 1300억원에 이를 정도로 심각한 경영난에 처해있었던 점 △운전시간이 30분 연장된 만큼 수당과 휴일이 보장됐던 점 △취업규칙 변경 후에도 사측이 노조와 꾸준히 협상 노력을 기울였던 점 등을 들었다. 

이 판결은 취업규칙을 무단 변경하면서까지 급박하게 해결해야 할 문제가 있고, 취업규칙 변경으로 근로자에게 돌아가는 불이익이 크지 않아야 불이익변경금지 원칙의 예외가 될 수 있다는 취지다. 한 노무사는 "이 판결 취지에 따르면 불이익변경금지 원칙의 예외는 아주 좁게 해석하는 것이 옳다"며 "검찰이 2015년 흑자전환 이후 꾸준히 이익을 올리고 있는 A사 사건에 이 판례를 적용한 것은 지나친 해석으로 보인다"고 밝혔다

일본계 제약기업인 B사도 육아휴직에서 복직한 직원을 부당하게 차별한 혐의로 검찰 수사를 받았으나 무혐의 처분을 받았다. 남녀고용평등법 제19조 제4항에 따르면 사업주는 육아휴직을 마친 직원을 휴직 전과 같은 업무 또는 같은 수준의 임금을 지급하는 업무에 복귀시켜야 한다. 같은 조 제3항은 육아휴직을 이유로 해고나 불리한 처우를 해선 안 된다고 규정한다. 이를 위반하면 3년 이하의 징역 또는 20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해질 수 있다.

이 사건을 고발한 한국민주제약노조에 따르면 B사는 직원 C씨가 육아휴직에서 복직한 이후 약 5개월 동안 아무런 지시 없이 C씨를 대기발령 상태로 놔뒀다. 육아휴직 전 맡았던 영업 업무에 빈 자리가 났는데도 복귀할 수 없었다. 이 때문에 C씨는 영업직 인센티브를 받지 못하는 등 경제적 손해를 봤다. 

사측은 C씨를 임금이 비슷한 다른 부서에 배치했다는 이유로 무혐의를 주장했다. 새 부서 배치는 C씨가 5개월간 방치된 이후의 일이었음에도 검찰은 이 주장을 받아들여 무혐의 처분했다. 한국민주제약노조 관계자는 "C씨가 5개월간 방치된 사실은 '없던 일' 취급된 것"이라고 비판했다. 인센티브 폐지 사건에 대해 A사는 입장 표명을 거절했다. B사에도 육아휴직자 건에 대한 입장 표명을 수 회 요청했으나 끝내 듣지 못했다.

법조계에서는 노동 현실에 대한 관심이 부족하다 보니 종종 나타나는 일이라고 진단했다. 노동 사건 경험이 많은 한 변호사는 "불기소 이유서를 보면 법리적으로 납득하기 힘든 내용이 적혀 있는 경우가 종종 있다"며 "수사 단계에서 회사와 근로자 사이의 권력관계 같은 현실적인 내용들에 좀 더 관심을 기울일 필요가 있다"고 했다.

이 변호사는 "그동안 이런 문제 제기와 함께 불기소 이유를 알 수 있도록 수사기록을 복사해달라는 요청이 있었지만 제대로 받아들여지지 않았다"며 "이런 점을 먼저 개선해야 한다"고 제언했다.

한 검찰 출신 변호사는 주로 사측에서 대형로펌이나 전관 변호사들을 선임해 대응한다는 점도 원인일 수 있다고 진단했다. 이 변호사는 "노동 사건을 처리하는 공안부 검사들이 노동현실에 대한 인식이 부족할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며 "사측에서 선임한 법률대리인들이 사건이 법원까지 가지 않도록 수사 초기에 강력히 대응하기 때문에 수사 단계에서 무혐의 처분으로 끝나는 일이 있다고 본다"고 분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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