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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클리

[유동주의 PPL] 독립운동가의 후손, 친일파의 자손

[the L] 백범 후광에 '공직' 중용된 후손들 공적 책임감 부족…정파적 이해에 이용당하는 유명 독립운동가 후손들

편집자주People Politics Law…'국민'이 원하는 건 좋은 '정치'와 바른 '법'일 겁니다. 정치권·법조계에 'PPL'처럼 스며들 이야기를 전합니다.
문재인 대통령이 서울 용산구 백범 김구 기념관에서 열린 국무회의를 주재하고 있다. (청와대 페이스북) 2019.2.26/사진=뉴스1


최근 윤주경 전 독립기념관장이 임기를 2달여 앞두고 청와대 뜻이라며 사표를 내달라는 요구를 받았다고 밝혀 논란이 있었다. 자유한국당의 고발로 검찰수사가 예정된 이 사건이 특히 주목받은 건 윤 전 관장이 윤봉길 의사의 손녀라는 점 때문이다.

윤 전 관장이 지난 2012년 대선 새누리당 박근혜 캠프의 국민대통합위원회 부위원장을 거쳤기 때문에 '친여' 성향 지지자들로부터 정치적으로 '친한국당' 인물로 낙인찍힌 점도 영향을 미쳤다고 볼 수 있다.

그런데 윤 전 관장은 지난 2004년 총선에서 '열린우리당' 양심건국기획단 부단장을 지냈다. 굳이 따지자면 여야 정치권 모두와 인연이 있는 셈이다. 백범 김구의 손자 김양 전 보훈처장이 양심건국기획단장을 맡아 함께 했다. 둘은 '양심건국(良心建國)'이라고 적힌 김구 선생의 휘호를 열린우리당 지역구 후보들에게 전달하며 유세를 도왔다.

◇백범 후광에 우대받아 온 후손들

김양 전 처장은 해군 해상작전 헬기 '와일드캣' 도입 관련 불법 로비로 대법원에서 지난 2016년 징역 4년형을 선고받아 복역 중이다. 그는 2005년 노무현 정부에서 '상하이 총영사'라는 첫 공직을 맡기 전까지 프랑스와 유럽 방산업계를 위해 일해온 '무기브로커' 였다. 이명박 정부도 백범 손자인 그를 중용해 더 높은 자리인 '국가보훈처장'에 임명했다.

김양의 부친이자 백범의 아들 김신도 공직에 있었다. 김신은 공군 장군시절 5·16쿠데타에 참여해 국가재건최고회의 위원, 공군참모총장, 교통부 장관, 주타이완 대사, 유정회 소속 국회의원을 지냈다.

김양의 형 김진도 김대중 정부 대한주택공사 감사를 거쳐, 노무현 정부에선 사장이 됐다. 백범의 장손인 김진 역시 뇌물수수 등의 혐의로 두 차례나 형사처벌을 받았다. 백범 손녀이자 김양의 동생인 김미씨는 한화그룹 김승연 회장의 동생으로 빙그레 회장과 18대 국회의원을 지낸 김호연 전 김구재단 이사장의 부인이다. 

'독립운동을 하면 3대가 망한다'는 말처럼 대부분의 독립유공자 후손은 어렵게 살고 있다. 그러나 백범의 후손들은 예외적으로 상당한 기득권을 누렸다.

역대 정권이 대한민국 임시정부를 상징하는 백범의 후손들을 중용해 정권의 '정통성'을 인정받기 위함이었을 것이다. 독립운동가 후손들을 모두 고루 보살피는 노력을 더 기울인 게 아니라 손쉽게 백범의 후손들을 중용하는 방식으로 '눈요기'에만 신경 쓴 것이다. 

임시정부 100주년을 맞은 현재까지 무결점의 인물로 영웅화 되고 신격화 돼 있는 '백범'의 후광아래 그 후손들은 대접받아 온 것은 분명하다. 

그렇다면 그들은 과연 ‘노블리스 오블리제’를 실천했을까. 나머지 독립유공자 후손의 삶을 돌아봤을까. 

김양은 보훈처장 임기 중 소관 법안인 독립유공자가 일제에 의해 뺏긴 재산을 되돌려주자는 내용의 ‘독립유공자피탈재산 회복 및 보상에 관한 특별법’이 국회에 발의됐는데도 적극 노력하지 않았다. 오히려 전형적인 ‘행정관료’처럼 행동했다. 소급효를 금지하는 실정법 상 어려움과 재원부족을 강조했다. 

보훈처가 소극적이자 오히려 당시 김용태·김영선 새누리당 의원이 보훈처가 독립유공자들을 위한 '보훈'기관임을 상기시키며 질타했다. 그럼에도 김양 보훈처장 시절의 보훈처는 특별법 논의 과정에서 독립유공자 후손 의견을 배제한 채 소극적인 조사로 일관했다는 비판을 받았다. 
1946~1947년경 이승만 대통령 부부(왼쪽 첫 번째와 두 번째)와 ,김구(오른쪽에서 두 번째) 선생이 한 행사에 참석해 함께 관람하고 있다. 이 사진은 노블 목사의 쌍둥이 아들 중 그랜노블(Glenn Noble)의 앨범에 소장되어 있다. (현지시간) 3월 1일 샌프란시스코 대한민국 총영사관(박준용 총영사)에 약 한 달간 전시될 예정이다./사진=뉴시스

◇정파적 '낙인찍기'에 이용되는 '친일·빨갱이'딱지

하시모토 도루 전 일본 오사카 시장은 아버지가 야쿠자였다는 한 주간지 폭로로 곤경에 빠진 바 있다. 그러나 오히려 일본 사회에서 주간지 폭로내용이 부적절하다는 여론이 일었다. '신분 차별적' 폭로에 일본 사회는 동의하지 않았다. 결국 그 주간지는 하시모토를 찾아가 사과했고, 사장은 물러났다. 

'연좌제'는 1894년 갑오개혁때 형사책임개별화 원칙에 의해 공식적으로 없어졌다. 하지만 '비공식' 연좌제가 군사독재 시절에 통용됐고 불이익을 받은 이들이 많다. 이런 반성에서 1980년 헌법 제13조 제3항에 '연좌제 금지'가 규정됐다. "모든 국민은 자기의 행위가 아닌 친족의 행위로 인해 불이익한 처우를 받지 아니한다"란 내용이다.

우리 사회에서 '친일'과 '빨갱이'는 오래된 '낙인'이다. 낙인이 찍히면 누구나 헤어나오기 쉽지 않다. 그런데 여전히 우리 사회는 '친일 매국노','빨갱이'라는 무서운 연좌제를 함부로 상대방 비난에 이용하고 있다.

나치 점령 4년을 겪은 프랑스는 철저히 나치 부역자를 재판에 세워 10만 여명을 숙청했다. 일제강점기 36년은 한 세대를 넘는 세월이다. 남북 모두 좌우 이념 대결 속에서 친일 숙청을 제대로 하지 못했던 '원죄'가 있다.

미국·일본이 정치적 선진국이라고 볼 수는 없다. 다만 무슬림이었던 케냐인 아버지 때문에 이슬람교 논란이 있던 흑인 혼혈 오바마를 대통령으로 당선시키고, 하시모토 사건에서 '연좌제적 신분차별'성 폭로가 뭇매를 맞는 모습은 우리 현실보단 나아 보인다.

언제까지 '아버지의 죄'를 자식에게 물어야 속이 시원할까. '친일파'와 '빨갱이' 후손은 3대를 멸해야 우리 사회가 나아질까.

아버지의 행적으로 자식을 평가하는 사회는 '후진적'이다. 아버지의 책임은 아버지에게만, 자식의 책임은 자식에게만 물을 수 있어야 성숙한 민주주의 국가다.

일제와 6·25를 겪은 우리 역사 현실에서 마음 속 '연좌제'를 버리지 못하는 것은 숙명일 수 있다. 

다만 정파적 공격과 정략적 사고에서 벗어나야만 국민 다수가 원한다는 '친일청산'과 '통일'도 달성 할 수 있을 것이다. 동네 골목 싸움에서도 가장 저열한 것은 '너네 아빠 XXX'라며 부모 욕하는 짓이다.

3·1운동과 임시정부 수립 100주년을 맞이한 올해, 독립유공자와 친일파 후손들을 그들 선조의 삶이 아니라 오로지 그들 자신의 삶으로 평가하기엔 아직 이른 것일까.

유동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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